2010. 5. 21. 21:08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경인년(庚寅年) 부처님 오신 날!
보현사 무공스님
오늘은 불기(佛紀) 2554년 경인년(庚寅年)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부처님의 자비광명(慈悲光明)하심이 온 세상 방방곡곡(坊坊曲曲)에 함께 하시길 발원합니다.
오늘은 우리 법우님들께서 부처님 도량에 오셔서 연등도 달으시고, 등 공양, 꽃 공양, 향공양 등을 정성들여 올리시면서 각자 소망하시는 소원성취(所願成就)를 발원하시는 뜻 깊은 날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554년 전 사바세계에 오신 부처님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고자 합니다.
오늘 법문은 “무상(無常) 무아(無我)의 가르침?”이라는 주제로 시작합니다.
경전을 봉독(奉讀) 하시겠습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욱까타의 수바가 숲의 황제 사라나무 아래 계셨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셨다.
“그대들에게‘ 모든 현상(現象)의 뿌리’에 관하여 설할 것이다.
여기에 부처님의 가르침에 익숙하지 않은 가르침을 듣지 못한 범부(凡夫)들이 있다. 이들은 지(地), 수(水), 화(火), 풍(風)으로 이루어진 이 육신(肉身)에 집착(執着)하여 육신을 영원한‘자아(自我)’라고 생각하고,‘나의 것’이라고 애착(愛着)하고, 육신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사람들은 (그 현상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각각의 현상에 집착하여 찰라 생멸(生滅) 변화(變化)하는 본성(本性)을 보지 못하고, 그것들을 영원한 ‘자아(自我)’라고 생각하고, ‘나의 것’이라고 집착하여 거기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사람들은 (그 현상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아직(수행의) 목표에는 도달하지 않았지만 속박에서 벗어나 최상의 평온을 구하려고 최선의 정진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이루어진 이 육신에 집착하지 않으며, 육신을 육신으로 있는 그대로 알며, 육신을 영원한‘자아(自我)’라고 생각하지 않으며,‘나의 것’이라고 애착하지 않으며, 육신에서 즐거움을 찾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사람들은 (그 현상을) 온전히 이해하기 때문이다.
또한 각각의 현상의 생멸 변화하는 현상을 보며 거기에 집착하지 않으며, 그것들을 영원한‘자아(自我)’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나의 것’이라고 집착하지 않으며, 거기에서 즐거움을 찾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사람들은 (그 현상을) 온전히 이해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아라한이 있다.
그는 번뇌를 부수고 청정한 삶을 살고, 해야 할 일을 다 해 마치고, 짐을 내려놓고, 최상의 목표를 성취하고, 존재의 속박을 부수어 버리고, 완전하고도 심오한 지혜에 의하여 해탈한 사람이다.
그는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이루어진 이 육신에 집착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 알며, 육신을 영원한‘자아(自我)’라고 생각자 않으며, ‘나의 것’이라고 애착하자 않으며, 육신에서 즐거움을 찾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이런 현상을) 온전히 이해하기 때문이며,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쳐부수어 이것들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이다.
여기 여래(如來)가 있다.
그는 온전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이루어진 이 육신에 집착하지 않으며, 육신을 육신으로 있는 그대로 알며, 육신을 영원한‘자아(自我)’라고 생각지 않으며,‘나의 것’이라고 애착하지 않으며, 육신에서 즐거움을 찾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이런 현상을) 온전히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는 즐거움이란 괴로움의 뿌리임을 알며, 존재에서 태어남이 있으며,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늙고 죽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래는 갈애를 완전히 부수고, 사라지게 하고, 소멸하고, 버림으로써 최상의 완전한 깨달음을 얻었다.” -맛지마 니까야 :1 몰라빠리야야경-
해마다 우리들은 부처님 오신 날을 봉축하고 있습니다.
일상적인 연례행사로 여기시고 당연히 봉축법회에 참석하시는데 그 의의를 두고 계시지는 않으십니까?
먹고 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오늘만이라도 집에서 푹 잠이나 자면 좋겠다고, 다른 종교인들은 이 날 다들 놀러가던데 왜 불자라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해야 되는가? 우리는 한번쯤 불평을 할 수가 있습니다.
또한 그러한 불평은 당연히 한번쯤 해보셔야 한다고 여겨집니다.
오늘 법문은 ‘모든 현상(現象)의 뿌리’에 관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날들이 지(地), 수(水), 화(火), 풍(風)으로 이루어진 이 육신(肉身)에 집착(執着)하여 육신을 영원한‘자아(自我)’라고 생각하고,‘나의 것’이라고 애착(愛着)하고, 육신에서 즐거움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래께서는 즐거움이란 괴로움의 뿌리임을 아시고, 존재에서 태어남이 있으면,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늙고 죽는다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여래는 갈애를 완전히 부수고, 사라지게 하고, 소멸하고, 버림으로써 최상의 완전한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우리들은 이러한 깨달음을 얻으신 붓다께 귀의(佛)하고, 가르침에 귀의(法)하고, 청정함에 귀의(僧)하고자 이 땅에 오신 의미를 되새기는 날이 바로 오늘 입니다.
내가 이제 삼계(三界)의 몸을 받으려 함은 세간(世間)의 일체(一切) 돈과 재물과 오욕(汚辱)의 쾌락(快樂)을 위함이 아니요, 인간계(人間界)에 내려가서 이 한 생(生)을 받음은 오직 모든 중생(衆生)을 안락(安樂)하게 하고자함이며, 모든 고뇌(苦惱)의 중생(衆生)을 어여삐 여기는 까닭이니라. -불본행집경 6권-
사랑하는 법우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각자 주어진 상황과 여건들은 다를지는 몰라도 고민스럽고 걱정되는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오늘 부처님께서 삼계에 나투신 이유를 이 시대를 고뇌하며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안락을 주고자 하시기 위하여 인간 세계에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불교(佛敎)는 운명(運命)을 뛰어 넘는 가르침이지
운명(運命)에 지배 받도록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 오신 날에 우리는 정성스러운 공양물들을 올리고 복덕도 쌓으시면서, 부처님의 말씀에 따라 살기를 서원(誓願)하며 정진(精進)하고자 우리들에 결의를 새롭게 다지는 날이 부처님 오신 날을 제정(制定)한 진정한 의미(意味)일 것입니다.
시대(時代)가 변하고 세태(世態)가 변해도 진리(眞理)의 가르침은 오늘도 우리 곁에 살아 숨 쉬고 계십니다.
어렵고 고통스러운 우리네 삶의 여정이지만 나보다 더 어려운 내 이웃들에 대한 배려(配慮)가 그 마음이 곧 부처님에 마음 이십니다.
불기(佛紀) 2554년 경인년(庚寅年) 부처님 오신 날!
깨달음(佛)과 밝음(法)과 청정함(僧)에 귀의(歸依)하시며
살아가는 날들이 밝고, 아름답게 가꾸어 나아가시는
부처님에 참다운 불제자 되시길 발원합니다.
불기 2554년 5월 21일 부처님 오신 날에 무공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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