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놈, 부처야! /성수스님

2010. 6. 8. 20:48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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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선스님 달마도(天下皆醉我獨惺 천하개취아독성)

      네 이놈, 부처야! 대자대비 어디다 팔아 먹었느냐? - 성수스님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모든게 달라지는 거여. 사람이 사람짓을 하면 사람이 되고, 사람이라도 소짓을 하면 소가 되는 거여. 원효대사도 말씀하시기를 "소가 물을 먹으면 단 젖이 되고, 뱀이 물을 먹으면 독이 나온다"고 하셨어. 다 같은 땅에서 크는 식물도 고추는 맵고 수박은 달아. 고추 마음을 쓰기 때문에 독하고 매워지고, 수박 마음을 쓰기 때문에 수박은 시원하고 달아. 그러면 우리 사부대중은 어떠냐? 우리 사부대중도 부처의 마음을 스면 부처가 되는 거여. 어떻게 부처의 마음을 써야 되느냐 하면, 애기가 장판바닥에 똥을 탁 싸놨는데 똥 싼 자리를 들고서도 그 애기가 밉다는 생각은 그만두고, 참는다는 생각도 없이 어린애 궁둥이를 톡톡 두드리면서 볼때기를 싸감고 뽀뽀 꺼정하는 엄마의 마음 같은 생활이 바로 부처의 새끼가 되는 거여. 만약에 마음 가운데 조금이라도 불평이 있다든지 원망이 있다든지 하면, 그건 부처 하고는 십만 팔천리여. 여러가지 배울려고 하지말고, 내 자신이 자신을 짓밟지 말고 귀하게 생각해야 하는 거여. 하루 아직(아침)에 화를, 원망을, 불평을 세번만 하면 그날은 마음에 꾸정물이 까라앉지 않해, 머리도 아프고, 배도 아프고, 소화도 안되고 아픈 데가 자꾸 생겨서 필경은 병원에 가야돼. 그 병을 만드는 놈은 누구냐? 바로 나여! 자신이 자신의 병을 만들어서 의사한테 목을 매단다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여. 어린애가 장판바닥에 똥 싼 그 자리를 든 엄마의 모습과 같이 원망, 불평이 뚝 끊어지면 거기에는 병마가 몸에 침범을 못해. 나는 말만 그러는게 아니고 이십오년 동안 병원에 안 갔어도 칠십이 넘어도 요렇게 짱짱하고 분 안 발라도 반들반들 하잖어. 우리 부처님 마음을 가지고 살면 정말 내 좋고 남도 좋고 다 좋은 거여. 얼굴 찡그려 가지고 불평, 원망하며 찌_이하고 살아봐. 어느 누가 좋다고 하는고. 부처님 한테 가서 복은 태산같이 빌어 놓고 빈 복, 있는 복, 준 복도 관리를 못해 진심(화내는 맘)을 한번 팍 내어뿔면 태산같이 빌어놓은 복도 하루 아직에 다 무너지는 거여. 있는 복이라도 자알 관리를 하고 보호,잘해서 자알 가지고 써 보래이, 정말 사는 재미가 오도독 오도독 나는 거여. 모두 사는 거 보면 다 바보여. 바보짓 하고서도 부처님 앞에 가서 복 달라고 엎드려 사정하는 꼴을 보면 내가 부처라도 콱 쥐어박고 싶은 심정일 거여. 그러니까 내가 나를 소중하게 가질줄 알아서 이 몸을 청정하게 해야 하는 거여. 그래서 이 몸을 진여탑이라고 하는 거여. 이 진여탑을 잘 보호하고 가꾸지도 않으면 남의 돌탑, 목탑, 그런데 가서 꾸벅꾸벅 절을 해대는 사람은 참말 어리석은 사람이여. 정신은 산 부처여, 활불이여, 생각은 철학이고 이 몸은 물질과학이여. 몸뚱이만 다듬고 입히고 애껴주는 거 보면 장관이여. 그러면서도 정신은 쉬게 할 줄도 모르고 있는 줄도 몰라. 물질이 소중하냐 정신이 소중하냐, 정신이 없으면 생각할 수 없고 생각지도 못하는 물건. 이 팔, 다리는 암만 있어도 무용지물이야. 팔이나 다리가 떨어져도 이 몸뚱이는 살 수 있지만 정신은 5초만 없어도 송장 되는 거여. 이 내 정신이 내 한테 얼마만치 가치가 있는지 소중한지, 이것도 모르면서 부처님께 와서 절을 꼬박꼬박 하는 걸 보면 우스운 거여. 사람은 자기의 가치를 스스로 찾고 살아야 되여. 신라 때 선덕여왕은 자기 관리를 참말 제대로 해 낸 여자였어요. 우리나라 여자들은 누구나 한번 쯤 선덕여왕 능에 가서 "어떻게 해야 자기 분수에 맞게 자기 자리를 찾고 살 수 있습니까?" 하고 물어봐야 되여. 맨날 남자한테 찔찔 끌려가지고, 허덕허덕 사는 여자는 여자 될 자격이 하나도 없어. 왜 자기 가치를 못 찾아 먹고 사느냐 이거여. 또 시집을 가서는 남편이 잘해 주느니 못해주느니 하면서 원망, 불평하고 사는 꼴을 보면 그 또한 우스운 거여. 남자를 위해서 시집가는게 아녀. 지가 여자니께 남자를 따라간거지. 여자 아니면 남자를 뭐하러 따라가겠어. 지를 위해서 시집을 갔으면 불평할 필요도 없고 원망할 필요도 없는 거여. 남자는 또 돈 몇냥 벌어와 놓고는 "당신을 위해서 돈 벌어왔다"고 유세를 떨거든 그것도 싱거운 짓이여. 지가 남자니까 여자가 필요해서 모셔다 놓고 끙끙 벌어다 먹이면서도 당신을 위해서 한다는 건 싱거운 사람이여. 둘 다 결혼 시작할 때부터 자기를 위해서 결혼한다는 생각을 갖고 하면 원망, 불평이 뚝 끊어지고 거기가 바로 극락이 되는 거여. 이처럼 자기 정신이 소중한 줄 알고 제대로 한번 살아 보래이. 제법 사는 법을 알고 턱 살면 죽을 때 죽을 줄 알고 척 죽는 거야. 불법(佛法)은 살 때 멋지게 살다가, 갈 때 아들딸 척 불러 ?貂?. 손 턱턱 흔들고 말야, 싱긋이 웃고 가는 생사자재법(生死自在法)이여. 부처님께서는 회향을 잘하셨기 때문에 삼천년을 존경받는다는 것을 잘 알고 절해야 하는거여. 이 세상 인류 가운데 죽을 때 부처님처럼 "내가 간다"하고 웃고 가신 분이 얼마나 되여 생사 자재법을 제대로 이루고 가신 어른이기 때문에 우리가 존경하는 거여.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절 하지도 안 할끼고 당신도 절 받을 자격이 없어. 그럼 우리는 절에 뭐 하러 가느냐. 안 늙고 안 아프고 안 죽는 걸 배우러 가는 거야. 그래서 절에 오면 이 어른한테 그걸 물어서 가르쳐주면 고맙다고 절을 해야 되는데, 이것도 저것도 안 가르쳐 주는데도 절을 꾸벅꾸벅 해대는거 보면 참 싱거운 사람들이여. 목적과 희망과 원하는 것이 있어서 절에 왔으면 반드시 물어보는 거여. 아는지 모르는지 맨날 그러면 다 소용없어. 우리 부처님은 확실히 모르고, 크게 모르는 것을 분명히 깨달으셨어. 안 늙고 안 죽는 것을 깨달으신 거여. 그걸 물으러 절에 간다는 개념만이라도 분명히 갖고 가르쳐 달라고 졸라야 되여. 상주설법(常住說法)이야. 부처님은 그걸 가르쳐주고 싶어서 앉아 계신거여. 그 양반이 밥만 똑똑 따 먹는 양반이 아녀. 물으러 오는 사람이 없어 밤낮 가만히 앉아 계시니 그냥 심심한 거여. 가르쳐 달라고 사정사정하다 안되면, 눈물로 사정하고 알고 싶은 심정이 간절하면 저절로 눈물이 나오는 거여. 애원하다 안되면 저절로 항의가 나와. "네 이놈, 부처야! 대자대비 어디다 팔아 먹었느냐?"고 벽력같이 항의하면 부처님이 입장 곤란해서 말없이 알려주고 소리없이 들려주고, 그대로 보여주는 거여 그래서'상주설법'이라 하는 거야. 그것을 배우겠다는 생각없이 절에 오는 사람들은 전부 헛걸음이여. 달마대사가 9년을 면벽(面壁)한 것은 9년을 수도한게 아니여 이미 인도에서 인정받은 달마가 왜 앉아 있었느냐? 사람을 기다린 거여. 당시 천하의 멋쟁이, 중국의 한량들이 다 와서 2년, 3년만에 다 떨어져 나갓는데 혜가대사 만은 9년동안 사정한 거야. 그랫더니 9년 만에 한마디 턱 일러주는 것이 "일언지하 돈망생사(一言之下 頓忘生死)"여 생사 밖의 도리를 잘 알라는 거야. 이 한마디 일러준 걸 가지고 '동토불교(凍土佛敎)를 살린거여. 불교는 이처럼 잘 안 일러주는데 매력이 있는 거야. 부처님이 절에 앉아서 알려 줄 사람을 기다리시는데, 맨날 절만 꾸벅꾸벅 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 한번 생각해 봐야 되여. 오늘부텀 여러분들도 집에 가서 스물네시간 가운데 오분 만이라도 내 정신을 뺏기지 말고 놓치지 말고, 잃어버리지 않는 연습을 해야돼. 오분도 자기가 자기를 지배하지 못하면 부처님 앞에 합장할 자격이 없어 . 흐리멍텅한게 부처님법이 아녀. 가장 정확하고 가장 밝고 가장 현명한 것이 부처님 법이라. 절이 뭐하는 곳인지 자기가 뭐하러 가는지 이것도 모르고 간다는건 불교인이 아니여. 예전에 내가 조계사 주지할 때. 외국에서 신부나 수녀들이 오면 조계사 구경시키러 우리나라 신부들이 데려오거던, 들어오라고 하면 안 들어 올라고 해. 그럼 "이 집 문턱에 발 들여놨으면 집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해!" 하고 억지로 끌고 들어가서 차 한잔 대접하지. 그리고는 "종교인간의 장벽을 트자"고 제안해서 종교협의회를 만들기로 했어요. 종교협의회를 갖기 전에 신부. 목사. 수녀 오십여 명이 조계사 법당으로 내한테 그 이유를 물으러 왔어. 그런데 머리속엔 '우리가 물으러 오긴 왔지만 부처 자랑 되게 할거다'라는 생각을 칠십프로는 갖고 있더라고 . 저 칠십프로를 비워내야 내 말이 백프로 들어갈 것 같어. 그래서 내가 턱 나가서 '내가 열아홉살에 중이 됐는데 내 부모보다 부처님이 너무 좋아서 중이 됐다"고 했더니 '저거 봐라. 부처 자랑 시작했다'고 생각하더라고. 그렇게 삼십프로를 모아 백프로를 꽉 채워놓고는 "45년. 그렇게 좋아하며 믿고 살아온 45년을, 오늘에 와서 가슴에 손을 얹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저 부처한테 몽땅 속았다"고 했더니 그 사람들이 그냥 놀라 자빠지는 거야. 그래 나도 가만히 좀 안정하고 있다가, "아담과 이브가,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굳이 먹어서 천당과 지옥으로 떨어졌다고 했는데 선악과 먹기 전에는 거기가 어디냐?"하고 물었더니 아무 말도 못하고 땅에 탁 엎드리는 거야. 그래서,"그거를 모르면 나처럼 속는 놈이 된다." 고 내 속았다고 한 것까지 보태가지고 그들한테 폭 덮어 씌어버린거야. 그러니 꼼짝 못하고 당하는 거여. 종교인이라면 '종(宗)'자가 뭔지 '교(敎)' 자가 뭔지 잘 알고 믿어야지. 그것도 모르면 바보 온달이여. 원효대사의 그 좋은 '활구'법어는 어디다 팔아먹고, '제대보살 마하살 하사오니' 어짜고 저짜고 중국말만 할게 아니라 모르면 스님들께 물어가지고서라도 똑바로 믿어야 하는겨. 물에 물탄 것처럼 시브적시브적 살지말고 하나라도 똑똑히 묻고 배워서 믿어주기를 바라며 좀 알고 사는 불자가 되기를 부탁합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공짜를 너무 좋아해...

큰 스님 말씀

 

두 손 모은 채 아무것도 하려고는 하지 않으면서

무언가 손에 다 쥐어지기만 바래...

큰 스님 말씀

 

남이 많이 가진 거 보면

그냥 얻어진 거 마냥 여기고 자신도 그냥 얻어지길 바래...

큰 스님 말씀

 

다른 사람 잘 되는 거 보면

왜 나는 저 사람처럼 되지 않을까 심술만 내고 통 움직이려고 하질 않아...

큰 스님 말씀

 

잘 되는 사람 잘 되는 이유 있고

안 되는 사람 안 되는 이유 있어...

큰 스님 말씀

 

하지 않아서 안되는 것이지

본래부터 안되는 것은 없어...

큰 스님 말씀

 

밥이 먹고 싶으면 밥을 지어야 하고

재물이 갖고 싶으면 일을 해야하는 거야...

큰 스님 말씀

 

나는 노력해도 안돼...라는 것은 없어

조금 모자라서 아직 안되는 것이니 더 노력해야 하는 것이지...

노력의 양이란 것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것은 아니니까...

큰 스님 말씀

 

밥을 두그릇 먹어야 배부른 사람 있고

반 그릇만 먹어도 배부른 사람 있듯이

노력이라 하는 것도 자신에게 맞추는 것이지 남하고 비교하는 것이 아니야...

큰 스님 말씀

 

될 때까지 하면 돼

이만큼이면 되겠지 하는 것은 없어

그냥 늘 하다 보면 어느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이쯤이다 하는 것은 본디 없는거야...

큰 스님 말씀

 

복이 없다, 해도 안된다, 그런 불평을 하기 전에

과연 그렇게 드러내어 자랑할 만큼 노력을 했는지 자신을 돌아볼 일이야...

큰 스님 말씀

 

새해에는 불평만 하지 말고 자신을 살펴봐

얼마나 내가 베풀면서 살고 있는지

하는 거 없이 그저 바라기만 하면서 살고 있는건 아닌지

어찌하면 복을 더  많이 받을까 하는 생각은 그만 하고 어찌하면 더 많이 복을 지을까를 생각해

한 것도 없이 복을 받으려 한다는건 과욕일 뿐이야

과욕은 갈증만 더 하고 불평만 더하게 하지

그러면 괴롭잖아?....

큰 스님 말씀

      망설이다 가버린 나날들 그 첫 한 마디를 시작하지 못해 머뭇거리다 지나간 어떤 저녁이 있습니다. 그 첫 한 마디를 꺼내지 못해 망설이다 가버린 어떤 사랑이 있습니다. 따뜻한 물 한 대야 발 밑에 준비하여 무릎 꿇고 누군가의 발을 씻겨 줘야 할 저녁이 있습니다. 무언가 용서를 청해야 할 저녁이 있습니다. 나지막히 무언가 고백해야 할 어떤 저녁이 있습니다. 흰 발과 떨리는 손의 물살의 울림에 실어 누군가에게 사랑을 전해야 할 설레이는 저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저녁이 다 가도록 첫 한 마디를 시작하지 못했습니다. 누군가의 마음의 맨발을 차고 맑은 물로 씻어주지 못했습니다. 어떤 용서도 청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런 사랑도 전하지 못했습니다. 아, 그 저녁은 두 번 오지 않습니다. 그 저녁은, 단 한 번밖에 없으므로... 한번 가버린 시간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 떠나버린 사람처럼 떠나버린 옛 그림자처럼 오늘 저녁이 바로 그 저녁이길 바랍니다. 맑고 따뜻한 물 한 대야 발 밑에 준비하여 무릎 꿇고 누군가의 거친 발을 오래오래 씻겨 주는 행복한 저녁 만들어 가시길 바랍니다. 다시오지 않는 시간들을 요긴하게 사용 하세요 - 혜인스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