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6. 13. 19:49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無門關] 51.마조의 딱지돈(5)
-부처를 말했다면 사흘동안 입 씻어라 -
-팔만언설은 우는 아이 달래는 딱지돈-
마조는 탁월한 지도자였다.
제자들을 가르치는 솜씨 또한 다양하고 직절했다.
그의 대에 이르러 선종은 실질적인 세력을 얻고 번성을 기약한다.
문하에 8백의 제자가 있었다고 한다. 이름이 전해지고 있는 인물만도 130명,
가히 선종사의 장관을 연출했다.
대매법상(大梅法常 752~839)도 그 기라성 가운데 하나이다.
속성은 정씨. 호북의 양양사람으로 어려서 형주의 옥천사에서 출가했다.
그의 전기는 <송고승전> 권11에 자세하다. 그가 마조를 찾았을 때의 이야기이다.
“부처란 무엇입니까.”
“마음이 곧 부처이다(卽心是佛)”
이 말에 대매가 문득 깨달았다. 그후 정원 12년(796) 절강의 대매산(大梅山)에
들어가 자취를 감추었다. 마조는 그런 그가 궁금하여 사람을 보냈다.
“마조스님한테서 무슨 가르침을 들었기에 이런 산속에 숨어 지내십니까.”
“마음이 곧 부처라는 말을 들었지.”
“요즈음은 좀 달리 가르치시고 계십니다.”
“뭐라고 말인가.”
“마음도 부처도 아니라(非心非佛)고 하십니다.”
“그 늙은이가 언제쯤이면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 망발을 그치실꼬.
설사 그리 한다 해도 나는 ‘마음은 부처다’를 지키겠다.”
경위를 듣고 난 마조가 말했다.
“매실이 익었다!”
이 일화에 대해서는 군 설명을 삼간다.
“마음은 부처이다”와 “마음은 부처가 아니다”는 결국 같은 곳을 가리킨다.
“마음도 부처도 아니다”는 더욱 직절하고 상쾌하다.
팔만삼장(八萬三藏)의 모든 언설은 망집을 부수기 위한 방편이다!
불교를 수놓고 있는 변증이나 상호모순적 발언들이 그런 점에서
‘반쪽의’ 동일한 진리치를 갖는다.
“마음이 곧 부처이다”가 겁약과 비관에 빠진 자들을 독려하는 약이라면,
“마음은 부처가 아니다”는 자만과 낙관에 부푼 자들을 향한 경고이다.
이 모두는 그러나 “열매가 익은” 대매에게는 옛이야기일 뿐이다.
방편을 넘어 실제(實際)의 세계를 임운(任運)하고 있는 그에게
‘우는 아이 달래는 딱지돈’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어른이 된 대매의 웃음소리가 아직도 천지를 울리고 있는 듯하다.
마조는 대매가 본래의 건강을 되찾았음을 인가했다.
그러니 더 이상 약을 투여할 필요가 없다(病盡藥除, 還是本人).
아니, 이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약을 투여할 필요가 없다
(病盡藥除, 還是本人). 아니, 이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약을 투여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라 약을 투여해서는 아니 된다!
건강한 몸에 약이란 바로 독이기 때문이다.
불교의 역설적 권유, 양가적 태도의 진원지가 바로 여기이다.
혜개는 그래서 “부처를 말했다면 사흘동안 입을 씻으라”고 권한다.
또 “진정한 대장부라면 마음이 곧 부처라는 따위의 소리에 귀를
막고 도망갈 것”이라고도 했다.
이런 저간의 소식을 마조는 다음과 같이 직절하게 일러주고 있다.
한 승려가 마조에게 물었다.
“어째서 마음이 곧 부처라 하십니까.”
“아이 울음을 그치게 하기 위해서다.”
“울음을 그치면 어떡하시렵니까.”
“마음도 부처도 아니라 하련다.”
“울지도 않고 울다가 그치지도 않은 사람을 만나면 뭐라 하겠습니까.”
“대도(大道)를 통째로 안게 하지.”
끝으로 별 중요하지 않은 객담 하나:
대매에게 사람을 보낸 것은 마조가 아니라 염관이라는 설이 있다.
<마조어록> 부록에 실려 있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대매가 마조에게 물었다.
“부처란 무엇입니까.”
“네 마음이 바로 그것이다.”
“법이란 무엇입니까.”
“네 마음이 바로 그것이다.
“조사가 이리 온 뜻이 무엇입니까.”
“네 마음이 바로 그것이다.“
“그럼, 아무런 뜻도 없단 말씀입니까.”
“네 마음은 모든 것을 갖추고 있음을 알라.”
이 말에 대매는 문득 깨달았다.
그후 대매는 석장을 짚고,
구름이 걸린 대매산을 올라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는 두번 다시 세상으로 내려오지 않았다.
염관의 제자 하나가 나무를 구해 산을 올랐다가 산 속에서 길을 잃었다.
문득 보니 풀잎을 엮어 걸치고 꽁지머리를 한 남자 하나가
너와 오두막에 살고 있었다. 인사를 건네는데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 가운데 “나도 마조스님을 뵌 적이 있지!”라는 말은 알아들었다.
“여기서 사신지 얼마나 되십니까.”
“몇년이나 됐을까. 산색이 푸르렀다가 누래지고,
다시 그러기를 글쎄, 한 서른 번?”
“마조스님 밑에서 무엇을 깨달으셨습니까.”
“마음이 곧 부처라는 것.”
문답이 있고 난 후, 염관의 제자는 내려가는 길을 물었고,
대매는 골짜기의 물을 따라 내려가라 일러 주었다.
자초지종을 듣고난 염관은
“강서에 있을 때 마조스님이 어느 스님의 질문에
‘네 마음이 곧 그것이다’라고 대답해 주었다고 들은 적이 있네.
그 후 30년동안 그 중의 행방을 아는 사람이 없었는데,
아마 그 사람인 듯하구만. 혹 그를 다시 보거든 요즘 마조스님은
‘마음도 부처도 아니라’고 말씀하신다고 해 보게.”
제자 하나가 산 속에서 대매를 만났고, 예의 스승이 시킨 대로 했다.
대매는 아랑곳않고 “그렇다고 해도 나는 마음이 곧 부처일 뿐”
이라고 잘랐다. 소식을 들은 염관이 감탄하며 말했다.
“서산의 매실이 익었다. 가서들 마음대로 따먹어라.”
이리하여 2,3년 사이에 대매산으로 수백의 대중이 모여들었다.
저녁무렵/도종환
열정이 식은 뒤에도
사랑 해야 할 날들은 있다
벅찬 감동 사라진 뒤에도
부등켜 안고 가야할 사람이 있다
끓어 오르는 체온을 식히며
고요히 눈감기 시작하는 저녁 하늘로
쓸쓸히 날아가는 트럼펫 소리
사라지는 것들은
다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풀이란 풀 다 시들고
잎이란 잎 다 진 뒤에도
떠나야 할 길이 있고
이정표 잃은 뒤에도
찾아가야 할 땅이 있다
뜨겁던 날들은 다시 오지 않지만
거기서부터도 또 시작해야 할 사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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