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6. 10. 18:43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나는 하루 동안 어떤 수행을 해야 하는가?
월호 스님
“염라대왕이 죽은 사람을 또 죽이네요?”
성지순례 차 옥천사 성보박물관을 방문하였을 때 어떤 불자님이 이런 말을 던져 왔다. 벽 한켠으로 염라대왕 탱화가 걸려 있었는데, 그 그림을 보니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이 머리가 잘리거나 끓는 가마솥에 삶아지거나 하는 등으로 고통 받는 장면이 나타나 있었던 것이다. 그 불자님은 무심코 내던진 말이었지만, 정말 곰곰이 생각해볼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죽은 사람을 다시 죽을 수 있을까?’
이미 죽은 사람이 왜 다시 지옥에 떨어져 ‘죽도록’고생을 하고 있는 걸까? 죽고 나서도 오히려 죽지 않아 그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과연 무엇이 죽어야 하는 걸까? 죽음이란 있는 걸까?
겉보기로 말하자면 우리 모두가 ‘시한부 인생’ 아닌 이가 없다. 혹자는 암이나 불치의 병에 걸려 3개월 내지는 1년짜리 시한부 인생이니 어쩌니 하지만, 실제로 우리 몸뚱이는 아무리 건강한 이라 해도 100년을 넘기기 어렵다. 길이의 다소가 있을지언정 시한부 인생 아닌 이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근래에는 무슨 사고가 그렇게 많은지, 바로 엊그제까지도 멀쩡하던 사람들이 사십구일재의 주인공으로 제사상을 받는 경우도 비일비재한 현실을 감안해볼 때 언제 저승길에 들어설지 누구도 장담하기 힘든 세상이 된 것이다. 스님들도 예외일 수는 없다.
홍주 태안사 주지에게 하룻밤 삼경에 저승사자가 데리러 왔다.
“내가 이제 예순 일곱인데 4년 동안 경론經論을 강講하여 대중들에게 공부하게 하였으나 말다툼만 일삼고 수행을 미처 하지 못했으니, 하루 밤 하루 낮만 말미를 주어 수행케 해주시오.”
“40년 동안 경론을 강의하기를 탐하면서도 수행을 못했다면 이제사 다시 수행을 해서 무엇에 쓰겠는가? 한창 목마른데 우물을 파는 격臨渴掘井이니,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하지만 통사정을 해서 겨우 하루 동안의 말미를 얻은 주지는 생각했다.
“귀신사자는 허락했으나 나는 하루 동안 어떤 수행을 해야 하는가.”
아무 대책도 없었다. 개원사의 마조馬祖 스님께로 가서 목숨을 구제해 주기를 간청하니 마조 스님께서는 그를 곁에 서 있게 하였다. 날이 새자 귀신사자는 태안사로 가서 주지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다시 개원사로 와서 주지를 찾았으나 찾지 못했다. 이때 마조 스님과 주지는 사자를 보았으나 사자는 스님과 주지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어째서 저승사자는 마조 스님과 주지를 보지 못했을까?
과연 무엇이 죽는 걸까?
죽음이란 있는 걸까?
- 휴식 / 해들누리 -
범능스님의 명상음악 2집 관세음보살 제 1악장:http://www.bulmusi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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