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7. 6. 19:18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無門關] 74. 도솔의 수수께끼(도솔삼관兜率三關)
-사대 흩어질때 가는곳 어디인가-
-부처 지옥 만나더라도 무심하라-
* 도솔열 화상이 세 가지 빗장을 걸어 학자들에게 물었다
“풀을 헤치고 그윽함을 찾는 것은 다만 견성하고자 함인데,
대체 지금 당신의 본성은 어디 있소?
자성을 알면 생사를 벗는다 하는데,
눈의 광채를 땅에 떨굴 때 어떻게 허물을 벗으려오?
생사를 벗으면 가는 곳을 안다 했는데,
사대(四大)가 흩어질 때, 우리는 어디로 가오?”
* 나 혜개가 말한다.
“이 세 물음에 제대로 대답할 수 있다면 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되고,
처하는 곳마다 도리를 얻을지니.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말하리라)
거친 음식은 금방 배가 부르고, 꼭꼭 씹어서 먹으면 쉬 꺼지지 않는다.”
* 송하여 가로되,
“한 생각이 두루 무량겁을 관(觀)하나니,
무량겁의 일이 지금 여기에 있구나.
이 한 생각을 뚫어볼 수 있다면,
바로 그 뚫어보는 사람까지 꿰뚫어 볼 수 있을 터.
兜率三關:
兜率悅和尙, 設三關, 問學者. 撥草參玄, 只圖見性,
卽今上人性在甚處. 識得自性, 方脫生死, 眼光落時,
作마生脫. 脫得生死, 便知去處, 四大分離, 向甚處去.
無門曰, 若能下得此三轉語, 便可以隨處作主,
遇緣卽宗. 其或未然, 序飡易飽, 細嚼難飢.
頌曰, 一念普觀無量劫, 無量劫事卽如今.
如今 破箇一念, 破如今 底人.
송대의 선은 임제의 종풍에서 갈라진 황룡(1002~1069)과 양기(992~1049)가
이끌었다. 오조법연(?~1104)이 양기파의 종장이라면, 지금 이 화두의 주인공인
도솔종열(兜率從悅1044~1091)은 황룡파의 기걸이다.
아깝게도 마흔 여덟의 나이에 요절했다. 도솔은 세 가지 수수께끼를 남기고 갔다.
1) 선의 궁극은 견성, 즉 자신의 본질(性)을 보는 것이다.
그럼 너의 그 본질이란 게 지금 어디 있느냐.
2) 자신의 본질을 자각하고 나면 질긴 생사의 굴레를 벗는다.
그렇지 않고 미적대다가 정작 죽음이 닥칠 때 어떻게 생사의 고통을 벗어나려는가.
3) 생사의 굴레를 벗고 나면, 인간이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지를 알게 된다.
어디 물어보자. 육신이 흩어지고 명줄이 끊길 때 그때 네가 향하는 곳은 어디인가.
세 물음은 얽혀 있다.
1)이 실제라면, 2)는 계기이고, 3)은 효과라 할 수 있다.
그동안 1)의 관문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말을 많이 했다.
2) 두번째 관문인 불도의 ‘계기’는 섬뜩하다.
‘이 일’이 한가한 지적 유희가 아니라
급박한 실존적 관심임을 충격적으로 일깨우고 있다.
지눌은 고려말 세속화된 불교의 타락과 소외를 질타하며 이렇게 말했다.
“목숨이 가물거리고 사대가 흩어지려 할 때 정신은 타들어가고
소견은 혼미하여 하늘에 오를 수도 땅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두렵고 막막한 길을 쓸쓸한 혼이 홀로 떠날지니
창고에 그득한 재화가 무슨 소용이며,
늘어선 친척과 권속들이 무슨 힘이 되겠는가.
자업자득(自業自得), 대신 고통을 짊어질 사람도 없고,
인도해줄 지팡이도 없다.
아무도 너를 환난으로부터 건져줄 수 없다(<結社文>).”
이런 경고에도 겁을 내지 않는 사람은 불교와 별 인연이 없다.
불교는 세상의 고통, 인간의 허위와 기만에 상처받기 쉬운 사람들에게
열려있는 가르침이다.
놀란 여린 영혼은 삶의 비밀과 자신의 본질을 찾아 순례를 떠난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난과 장애의 “풀숲을 헤쳐나가(撥草) 비밀을 열었다(參玄).”
여기서 풀숲은 길(道)을 덮고 있는 장애물들이다.
치고 또 쳐내도 앞을 막고 발을 감는 그 끈질김은 인간의 욕망과 무지와 꼭 닮았다.
그 길을 헤쳐 그윽한 비밀을 장악한 사람들은 얼마나 좋겠는가.
“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되고, 처하는 곳마다 도리를 얻는다니”
선은 늘 육신이 영성이 되고, 실존이 곧 본질이 되는그 축복과 희망을 노래한다.
그러나 구경(究竟)은 멀리 있고 현실은 가깝다.
물질에 속박되고 욕망에 눈먼 우리네 범부들에게는 저너머의 꿈일 뿐인저.
무명(無明)의 종자(種子)와 망상(妄想)의 습기(習氣)가 한데 어울려
역순(逆順)에 희로(喜怒)하고, 시비(是非)에 애락(哀樂)하는
사람들은 기댈 언덕과 다독일 위로가 필요하다.
그래서 관음과 미륵과 지장 등의 불보살들이 있다.
그 자비와 공덕으로 수많은 대중들이 고통과 절망으로부터 구원받았다.
한 생을 마감할 때 나귀의 뱃 속에 끌려들지 않고, 지옥의 끓는 가마 솥에도
들어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경전은 마음을 가다듬고 이렇게 관(觀)해 보라고 권한다.
“오온(五蘊)이 모두 공(空)한 것이어서 육신에는 내가 없다.
자성(自性)은 태어난다고 생기는 것도, 죽는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지극히 맑고 두렷하고 고요해,
마음의 본질 또한 무상(無相)이라 가지도 오지도 않는다.
마음과 경계 사이엔 틈이 없다. 이렇게만 투철하면
사바에 매이지 않고 대자유를 얻을 것이다.
혹 부처를 만나더라도 따라가려 하지 말고,
지옥을 보더라도 두려워 하지 말라.
놀라거나 흔들리지 말고 무심하라, 이것이 비결이다”
음악: 초심님
그대 발길이 머무는 곳에
숨결이 느껴진 곳에
내 마음 머물게 하여 주오
그대 긴 밤을 지샌 별처럼
사랑의 그림자되어 그곁에 살리라
아~ 내 곁에 있는 모든 것들이
정녕 기쁨이 되게 하여 주오
그리고 사랑의 그림자 되어
끝없이 머물게 하여 주오
한순간 스쳐가는 그 세월을
내곁에 머물도록 하여 주오
(음~) 꿈이 꿈으로 끝나지 않을
사랑은 영원히 남아 언제나 내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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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사도 좋고 <용필 오빠ㅎ> 노래도 좋습니다
사랑은 그런 것인가 봅니다.
사랑으로 가득한 여름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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