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8. 1. 21:26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오매일여
법정스님의 수필집 ‘버리고 떠나기’에서 나오는 법정스님과 안거 수행중인 한 스님이 주고받은 편지의 내용입니다. 많은 분들이 읽어 보셨겠지만 그 담백한 이야기가 불성(佛性)을 온전히 身證心悟하려는 우리 도반들에게 글은 짧지만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는 듯하여 올려 봅니다.
산승의 편지
편지는 다음과 같이 서술된다.
『 큰 스님의 제자가 되었으면서도 공부에 대한 감도 잡지 못하고 15년 세월을 보내왔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부처님이 곁에 계실지라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생각을 요즘 합니다.
처음 맞이한 여름 안거, 축복 속에서 두 달이 지나고 사흘이 지났습니다. 저에게 있어서는 이제까지 모든 삶의 과정들이 금년 여름 안거를 위해서 준비되어 왔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요가난다의 말에 따르면, 구도자에게 첫번째 축복은 허리를 통해서 온다고 했는데, 그 이치를 요즘 느끼고 있습니다. 좌선 중 척추에 흐르는 미묘한 기운을 느끼면서부터 기쁨과 기운이 솟아납니다. 기쁨과 기운이 넘쳐나니 음식에 대한 욕구가 사라지고, 음식에 대한 욕구에서 벗어나니 온갖 물질세계와 세속적인 갈망이 녹아버리는 것을 느낍니다.
반결제부터 일종식을 해오다가 열흘 전부터 단식을 시작했는데 3일 만에 숙변이 빠지면서 몸과 마음의 기운이 하나로 통하고, 몸의 무게를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입니다. 흰죽만을 하루 반 그릇 정도 4일간 보식하고 요즘 다시 일종식으로 살아갑니다. 찬도 김, 버섯, 찌개, 고추 등은 몸이 받아들이지 않고 밥 한 공기 정도와 나물 몇 가지, 국물 조금이면 하루 양식으로 넉넉합니다.
기쁨과 광명의 세계를 설핏 들여다보고 나니 인간의 양식은 빛과 기쁨임을 알겠습니다.
고요와 기쁨과 광명이 함께하니 피곤함과 졸음과 배고픔이 사라집니다. 이것이 선열위식(禪悅爲食)인가 싶으니 눈물이 한번씩 솟기도 합니다. 』
그는 올 여름 안거 동안 귀한 체험을 하고 있다. 진실하게 정진하는 수행자들이 거치는 원초적인 체험이다. 먹는 일에 동물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선열위식, 즉 선정(禪定)의 기쁨으로 음식을 삼는다는 말이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살과 뼈로 된 육체만이 아니라 영혼의 부분도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 인간의 양식은 빛과 기쁨임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람이 가장 순수하고 맑아질 때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솟는 것은 사랑과 감사의 넘침이다. 현대인에게 눈물이 사라지고 있음은 이 맑고 순수함이 사라져간다는 뜻이고, 사랑과 감사함이 고갈되어 있다는 소식이기도 하다.
그의 편지는 계속된다.
『 좌선을 위한 좌선, 오로지 좌선에만 전념함(只管打坐), 몸과 마음이 함께 자유로워짐(心身脫落), 큰 안락의 법문 등의 이치를 하루하루 체득해 가는 기쁨이 있습니다.
공부하는 사람은 계율을 깨뜨리는 일이 참으로 어렵다는 법문에 크게 공감합니다. 충만감과 자비심으로 계율을 파할 수가 없지요. 그래서 수도 생활을 기쁨의 길, 축복의 길이라고 부르는가 봅니다.
우리 수좌들의 현상을 보면 깨달음과 견성에 대한 갈망이 도리어 ‘본래부터 열려 있고 지금 넘쳐나는’ 엄연한 원래의 모습에 눈멀게 하는 것 같습니다. 마치 잠들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잠을 이룰 수 없듯이 부처를 구하고 신을 찾는 일이 갈망과 욕구의 응어리가 되어 벽을 만듭니다. 구도자를 인도에서는 산야신(sanyasin)이라고 하는데, 그 뜻은 ‘포기한자’라고 합니다. 몸과 마음과 호흡이 가장 자유롭고 자연스러워 인위적인 요소가 개입하지 않을 때 몸과 마음이 사라짐을 보았습니다.
한번 찾아뵙고 싶지만 해제 때까지 잘 지내겠습니다. 제게 있어서는 도원선사의 가르침이 가장 확연하게 다가옴을 느낌입니다.
이제부터는 저는 수도(서울)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수도(修道)생활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이제 출가하고, 이제사 불법을 만난 느낌입니다. 당분간 이곳에 머물면서 선정과 자비를 키워가겠습니다.
해제일에 찾아뵙겠습니다. 법체 청안하심을 빕니다. 000삼배 』
이 편지을 받고 이튿날 아침 나는 맑은 정신으로 그에게 다음과 같은 회신을 써 보냈다.
『 편지를 받아 두 번 기쁘게 읽었소. 선열(禪悅)로써 음식을 삼는 것 같아 전해 듣는 마음도 함께 기쁩니다. 몸은 출가했으면서도 마음으로 선정의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면 어찌 출가 장부가 될 수 있겠소.
출가수행자는 모든 기존의 틀에서 거듭거듭 털고 일어서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세속의 집을 등지고 출가를 했는지 시시로 되돌아본다면, 부질없이 허송세월하면서 꿈속에서 지낼 수가 없을 것이오.
출가수행자에게는 내일이 없어야 합니다. 그 ‘내일’ 때문에 얼마나 많은 세월을 미루면서 허송해왔는지 내 자신도 이따금 후회합니다. 늘 ‘지금 이 자리에서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꽃처럼 날마다 새롭게 피어나야 합니다. 가난과 고요와 평안과 정진이 수행자의 몫이 되어야 합니다.
도원선사의 법문에 공감한다니 반갑습니다. 본증묘수(本證妙修), 불염오(不染汚)의 정진을 명심하시오. 새삼스럽게 깨닫기 위해서 닦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밝음을 드러내기 위해서 닦음이고, 닦지 않으면 더럽히니까 항상 정진하는 것이오. 그래서 좌선을 일러 큰 안락의 법문이라고 한 것이오. 휴정선사도 말씀 했듯이 자기 자신의 근본인 진심(眞心)을 지키는 것으로서 첫째가는 정진을 삼아야 합니다.
한때의 기쁨과 축복의 체험에 만족하지 말고 더욱 분발하기를 바랍니다. 더 멀리 내다보려면 다시 한층 높이 올라가야 합니다. 될 수 있는 한, 말 적게 하고, 잠 덜 자고, 음식을 덜 먹는 것이 수도생활을 기쁨과 축복의 길로 이끌어갈 것입니다.
진정한 수행은 새로운 이해에로 나아가는 자아교육의 과정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우리들의 삶은 보다 풍요로워지고 더 이상 방황하거나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게 됩니다. 진실한 수행은 스스로 발견해가는 내밀한 행위이며 눈뜸(開眼)입니다.
올 여름 안거중에 모처럼 기쁜 소식 받으니 내게도 기운이 솟는 것 같습니다. 해제의 기쁨을 함께 누립시다. 탈없이 일념으로 정진하길 바랍니다. 』
떠나기 싫은 여행 -죽음
대다수 사람들은 여행을 좋아 합니다.
허나 떠나기 싫은 여행이 있습니다.
그 여행길은 누구라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아는 유일한 존재가 사람입니다.
죽음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1969년 사망학 개척자인 스위스 출신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1926-2004)’는
'사망과 임종에 대하여(On Death and Dying)'에서
죽음의 과정의 정신 상태(말기 환자)를 분석한 5단계 모형을
영어 첫 글자를 따서 ‘다브다(DABDA)’ 모델을 제시합니다.
1. 부인(denial)
첫 번째 단계에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죽게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말기 환자는 "아니야, 나는 아니야"라고 불치병에 걸린 사실을
부인함과 동시에 고립되는 듯한 감정을 느낀답니다.
2. 분노(anger)
두 번째 단계에서 분노나 원망으로 바뀐답니다.
"왜 하필 나야? 왜 이렇게 재수가 없지"라고 투덜대며
정서 불안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가족과 의사는 인내심을 갖고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환자를 보살펴야 한다고 합니다
3. 거래(bargaining)
죽음을 지연시키는 방법을 찾으려고 온갖 궁리를 한다고 합니다..
천주교 신자라면 하느님과 담판을 시도한답니다.
하느님에게 자신의 생명을 연장시켜 달라고 애원하고 자신의 부탁을
들어준다면 "천주님의 영광을 빛낼 일에 여생을 바치겠다."고 하거나
"새 사람으로 태어나겠다."고 약속한답니다.
거래는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는 단계는 아니지만 죽음을 앞둔
환자의 절박한 심정을 잘 보여 준답니다.
4. 우울 (depression))
병세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음을 깨닫게 되면서
절망 상태에 빠진 환자는 우울증에 시달린답니다.
우울증의 빌미는 다양합니다.
죽은 뒤 남겨질 배우자나 자식에 대한 걱정,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는
상실감 등을 들 수 있습니다.
5. 수용(acceptance)
마지막 단계는 죽음에 임박하여 이 세상과 결별하려는 순간입니다.
마침내 죽음이 피할 수 없는 자연현상임을 인정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된답니다.
이승의 모든 굴레를 벗어던지고 긴 여행을 떠나기 전
마지막 휴식을 즐기는 것처럼
평온한 마음으로 죽음을 기꺼이 수용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죽음을 자연스럽게 맞이하는 것은 아니랍니다.
최후의 순간까지 죽음의 그림자로부터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치는 사람은 존엄한 임종을 맞이할 수 없기 때문에
가족의 이해와 도움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합니다.
사람마다 살아가는 과정이 제각각인 것처럼 죽어가는
과정 역시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5단계 ‘다브다(DABDA)’
과정을 똑같이 밟게 된다고 볼 수는 없을 겁니다.
열외가 없는 떠나기 싫은 여행,
삶의 마지막 순간에 존엄성을 잃지 않고
세상을 하직하는 방법을 살아 생전에 한 번쯤
모색해 보는 것도 소중한 지혜가 아닐까 싶습니다
~* 옮긴 글 *~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길 !!
- 죽음
당연히 가야할 우리의 고향입니다.
때가 되면 가야지요.
"생사가 둘이 아니라 하나다" 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믿습니까?
<생멸生滅이 없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믿고
열심히 수행정진합시다.
평안한 그날의 여행을 위하여 . . .
주어도 주어도 모자람이 없고,
담아도 담아도 걸림이 없는 밑빠진 바루를 들고
그림자 없고 메아리 없는 산속을 거니는 수행자는
생사를 여위었다네 !
- 유당
옮겨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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