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 없는 ‘별처럼 . . ./ 맹난자

2010. 10. 17. 22:0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오매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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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욕 없는 ‘별처럼 . . ./ 맹난자

 

별을 별답게 처음 본 것은 6.25 피난지인 어느 초등학교 마당에서였다. 놀라운 경이였다. 아홉 살 이후로 두번째의 충격은 지난달 피지에 갔을 때였다. 그곳 원주민들이 모여 사는 나발라의 민속촌을 찾았다. 300채의 부레(초가)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었다. 관습에 따라 술루라는 치마를 구해 입고 카바가루와 빵을 사 들고 현지인의 안내를 받으며 그들을 예방했다. ‘마마누카’라는 전통의식을 치른 뒤 추장이 내어준 방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전기도 없는 오지의 산간 마을, 뒷간 볼 일로 남편을 깨워 더듬더듬 밖으로 나왔다.




 탐욕 없는 별의 삶 닮길 


  별의 탄생과 윤회, 인간의 일생 대비

“욕심.집착 없는 그들을 배워라” 교훈


   맹 난 자 / 한국수필문학진흥회 회장



칠흑 같은 밤에 대체 누구의 마련이던가.
온 하늘에 금강석을 뿌려놓은 듯 찬란하게 펼쳐진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 손을 뻗치면 금방이라도 닿을 듯한 공간에 주먹만 한 별들이 숨쉬는 게 느껴졌고 눈을 깜박이는 별들의 촉광도 감지될 듯했다. 연이어 소리없는 폭죽이 사방에서 터지고, 길게 꼬리를 물며 땅으로 내리꽂히는 유성들의 낙하. 그 장관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린왕자와 윤동주가 보았던 별도 이처럼 장엄하였을까?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을 외치던 윤동주 시인도 하늘에 올라가 별이 되었을까?

나는 별의 탄생과 윤회를 생각하다가 문득 서울에 두고 온 이시우 선생의 저서 <별처럼 사는 법>이 생각났다.

선생은 별과 인간의 일생을 비교하면서 왜 우리가 별처럼 살아야 하는가를 이렇게 역설한다.

별은 우리 인간과 달리 태어날 때,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양식(질량)을 갖고 태어난다. 그러므로 그들에겐 탐욕이 없으며 탐진치가 없다. 어떠한 집착심도 없이 여여한 무아의 경지를 이루고 있다. 이미 수행도 필요치 않으며 후세에서 과보 또한 받지 않는다.

별은 잘났다는 자아의식도 없으며, 남과 다투며 남을 무시하는 인상(人相)도, 다른 별들을 무조건 따라가는 중생상(衆生相)도 없고 오래 살고자 하는 수자상(壽者相)도 없다. 별은 오직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화학적 및 물리적 집단 무의식만을 지니고 있으며 이것을 다음 세대에 물려줄 뿐이라는 것이다.

별은 언제나 가장 낮은 에너지 상태에서 가장 적은 에너지를 쓰면서 외부 반응에 순응하며 이웃과 조화롭게 관계를 맺고 있다는 대목에 나는 연필을 깎아 밑줄을 그었다.

전기도 없이, 문명의 혜택도 없이 온 식구가 방 하나에 거처하면서 손으로 빵을 뜯어먹고 소박하게 웃으며 맨발로 걸어다니는 간소하기 이를 데 없는 그곳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그날 밤하늘의 별이 왜 그토록 영롱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