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해야 출가인/반산보적선사

2010. 10. 21. 21:31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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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산보적 선사

수행 공덕에 무심해야 출가인

삼계도 결국은 마음으로 인한 것 그 마음이 없다면 삼계도 사라져”

 

師示衆云 心月孤圓 光呑萬相 光非照境 境亦非存

光境俱忘 復是何物 洞山云 光境未亡 復是何物

 

반산보적 선사가 대중들에게 말씀하였다.

 “마음달이 홀로 둥글어 그 빛이 온 세상을 다 삼켰네.

 빛은 경계를 비추는 것이 아니며 경계도 또한 존재하지 않네.

빛과 경계가 함께 없어지고 나니 다시 무슨 물건인가?”

 

동산스님이 말하였다.

“빛과 경계가 아직 없어지지 아니하면 다시 무슨 물건인가?”

 

해설 : 반산보적 선사는 이 멋진 시를 남겨 그 이후 수많은 사람들의

칭송을 받는다. 예로부터 사람들의 마음을 태양에다 비유하기도 하고

허공에다 비유하기도 하지만 달에다 비유한 것이 가장 운치가 있고

시적이다. 그 달은 곧 내 마음이다. 마음의 빛은 산하대지를 온통 다

삼키고 만다.

마음의 빛 뿐이다. 곧 너도 없고 나도 없고, 성인도 없고 범부도 없고,

중생도 없고 부처도 없고, 동서남북도 없는 오로지 이 한 마음뿐인

정경을 그렇게 외로운 달이 온 천지를 비치는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동산스님은 따진다. “빛과 경계가 함께 다 사라지면 아무 것도 없다고

하지만, 빛과 경계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한들 또한 도대체 무엇이

존재한단 말인가?”라고 하여 반산선사의 뜻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확실하게 밝히고 있다.

 

 

 

■ 이것이 참 출가다

 

師示衆云 似地擎山 不知山之高峻 如石含玉 不知玉之無瑕 若能如是 是眞出家

 

반산보적 선사가 대중들에게 말씀하였다.

“땅이 산을 들어 받치고 있으나 산의 높음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이하고,

돌이 옥을 머금고 있으나 옥에 티가 없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아야 한다.

만약 능히 이와 같으면 이것이 참다운 출가니라.”

 

해설 : 산이 아무리 높다 해도 그것은 땅이 받쳐주기 때문에 높다.

그러나 땅은 산을 그토록 높게 한 그 공을 아예 모른다.

옥이 아무리 티가 없는 명옥(名玉)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돌이 옥을

머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이 이와 같은 공이 있더라도 돌은

그것을 모른다. 출가하여 수행하는 사람도 이와 같이 아무리 큰 공덕이

있고 수행을 많이 쌓았더라도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이

없어야 한다. 공부를 많이 하고 계행을 청정하게 갖고 대중들을 위한

공이 아무리 크더라도 저 땅과 같고 저 돌과 같이 무심하여야 한다.

 

 

 

■  마음을 구할 데가 없다

 

師垂語云 三界無法 何處求心 四大本空 佛依何住

法眞一 頌云 三界本因心所現 無心三界自平

 

반산보적 선사가 말씀하였다.

 “삼계가 법이 없거니 어느 곳에서 마음을 구하며,

사대가 본래 공하거니 부처가 무엇에 의지하여 머물겠는가?”

 

법진일 선사가 게송으로 말하였다.

 “삼계가 본래 마음을 인하여 나타난 것이거니

마음이 없으니 삼계가 저절로 없어지도다.”

 

해설 : 마음, 마음, 마음이라 해도 그 마음은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고정되어

있는 존재가 아니다. 부처님, 부처님, 부처님이라고 하지만 그것마저 이

사대육신으로 만들어진 사람의 모습을 두고 하는 말이다. 만약 사대육신이

본래로 텅 비어 공한 것이라면 부처님인들 어디에 있으랴.

이 말에 대해서 법진일(法眞一)이라는 스님이 게송으로 거들었다.

“그래, 삼계란 것도 결국은 이 마음이라는 것을 인해서 나타난 바다.

이 마음이 없다면 삼계는 저절로 사라지리라”라고 하였다.

한 사람은 “삼계가 없는데 마음이 어디에 있겠는가?”라고 하였고, 한 사람은

“마음이 없는데 삼계가 어디에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즉 “닭이 없는데 계란이 어디에 있겠는가?”

“계란이 없는데 닭이 어디에 있겠는가?” 무엇보다 “이 사대육신이 없는데

부처님인들 어디에 있겠는가?”라고 한 사실에 착안하여야 하리라. 

 

 

무비스님 / 동국역경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