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법과 관법(觀法,;위빠사나)의 차이점 - 下/송담스님

2010. 11. 14. 13:16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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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참선법과 관법(觀法,;위빠사나)의 차이점 - 下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이뭣고 해갈수록 꽉 맥혀서 알 수가 없어. 알수가 없는 의심 그래야 옳게 되는거야. 처음에는 이뭣고 해도 망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지만 망상이 일어나도 따라가지 않으면 그만이여. 따라가지 말고 일어나는데로 고대로 놔둔체 이뭣고. 좋은 생각이 나도 이뭣고, 슬픈 생각이 일어나도 이뭣고 뿐이여.

 

그래서 이뭣고 한마디는 바로 8만대장경을 읽은 공덕이 다 그 속에 들어있고, 관세음보살 6백만번 부른 공덕이 화두 한번 드는 속에 다 들어있다. 활구참선법을 그래서 용궁에 부처님께서 설하신 모든 경전이 다 보관이 되어있는데, 그 용궁에도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마삼근(麻三斤) 이러한 것은 없다고 어느 조사는 말씀하셨어.

이 활구참선은 교외별전이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교밖에 따로 전하신 것이다. 교밖에 따로 전한 문자를 세우지 아니하고 바로 마음자리를 가르켜 견성성불케 하는 최상승법니다.

 

 최상승에 의지해 공부하는 사람은 경을 보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염불을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닙니다. 때에 따라 <금강경>을 읽을 수도 있고 <법화경>을 읽을 수도 있습니다. 또 관세음보살을 부를 수도 있고 아미타불을 부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활구참선 속에는 그러한 여러가지 방편법이 다 포함되어 있고 그거보다 한걸음 더 나간 최상승법이라고 하는 깊은 신심은 흔들려선 안돼. 뭔 말 들으면 그리 확 쏠리고. 말세중생은 근기가 하열해서 화두참선해봤자 되지 않는다는 소리를 듣고 중심이 흔들려서 이것 조금 하고 저것 조금 하고 이래서는 안된다 그 말이에요.

 

활구참선이 말세중생에 맞지 않고 하근기에 맞지 아니하면 무엇 때문에 역대조사가 이 법을 그토록 강조하셨겠느냐. 열심히 믿고 철저한 신심과 큰 분심과 큰 의심을 가지고 해나가면 그렇게 알뜰히 3년을 해서 아니되면 내가 여러 대중을 위해서 대신 지옥에 가겠다. 오조(五祖)스님도 대중한테 그런 서약을 하셨고, 몽산(蒙山)화상도 그런 맹세를 하셨습니다.

 

(게송은 녹음이 안들려 생략합니다.)

 

우리가 깨달랐거나 안깨달았거나 진여불성은 언제나 그대로인 것입니다. 삼라만상 티끌 속에도 다 들어 있습니다. 그 속에 들어있어서 티끌 속에도 한량없는 중생과 삼세제불이 다 계셔서 상주설법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이 태양계, 우주만이 비로자나 법신불의 세계가 아니고 그 세계 속에 있는 조그만한 티끌 속에도 또 삼천대천세계가 들어있고 삼세제불이 들어있고 그 속에도 끊임없는 육도윤회 세계가 들어있습니다.

 

이러한 도리, 한 생각 그놈으로 인해 온 세계가 벌어지고 그놈을 깨달라 부러서 우리의 자신의 본래면목을 깨닫게 되는 법신불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뭣고, 얼마나 간단하고 간결하고 누구나 할 수 있고 얼마나 좋은 방법이냐 그 말이여. 하나도 어렵게 생각할 게 없어.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걸어가면서도 이뭣고? 일할 때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어떤 분이 "산승이 <선가구감>이나 그밖에 어떤 어록이나 경서를 의지해서 차례차례 설교를 하는 것이 좋겠다. 그러한 일정한 경책이나 어록을 의지하지 않고 올라와서 내키는데로 말을 하니까, 밤낮 한 얘기 도로하고 도로하고 그러니 그것보담 어느 한 경책에 의지해서 주욱하면 중복되지 않고 좋지 아니하냐"는 충고를 받았습니다. 대단히 고맙게 생각합니다.

 

산승이 설해야 할 법이 있어서 설하는 것이 아닙니다. 법은 우리 법보선원의 조실스님이신 전강대선사의 법문 한 편 들으면 더이상 법문 들을 것이 없고 설할 법이 없습니다.

산승은 원장으로서 조실스님 법문을 여러분과 같이 듣고 마음 깊이 감동된 바를 여러분께 말씀드려서 여러분과 같이 더 큰 신심을 내고 분심을 내고 의심을 일으켜서 올바른 방법으로 이 활구참선을 열심히 해서 결정코 금생에 확철대오를 해가지고 중생을 제도하는데 나서자 그러한 말씀을 해드릴 뿐인 것입니다.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그 말 밖에 할 말이 없어요. 간혹 조사어록이나 경전 속에 있는 설화나 그런 것을 인용하기는 하지만 듣고 보면 이뭣고 열심히 하라 그 소리 뿐인 거여. 백번 가야 그 소리 할 바에는 가지 말자 해서 오지 않고 여행 가고, 골프치러 가고, 수영장 가고, 등산 가고, 철철이 기후따라 그런 분도 없지 않아 있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가봤자 밤낮 한 생각 단속하고 밤낮 이뭣고 하란 거 그 소리 들으러 용화사까지 교통지옥 속에 어렵게 갈 것 없이 집안에 가만히 앉아서 있으면 되는 것 뭐하러 또 가.

 

그런 생각을 가지신다면 안오셔도 무방할 것입니다만, 그래도 추우나 더우나 그 어려운 교통혼잡 속에서 이른 아침부터 쉬지않고 이렇게 사부대중이 운집을 해서 서울, 인천 뿐만 아니라 지방에서도 오시고 그 오시는 신심 속에 그 분은 반드시 대도를 성취할 씨를 심었다고 할까. 아주 그 표를 이미 끊어놓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런 신심을 가진 분이 이뭣고를 열심히 아니할 수 없고, 와서 조실스님 법문 듣고 산승의 말도 들어보면 한마디 쯤은 마음에 와서 닿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여러분과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같이 법문을 듣고 산승의 경책 말씀도 듣고 같이 부처님께 삼정례를 올리고 축원발원을 하고 이리함으로써 자칫하면 풀어지고 해태하려다가도 채찍을 가하는 좋은 계기를 삼게하기 위해서 이렇게 다달이 법회를 여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왕궁의 부귀를 버리시고 설산에 들어가서 고행하시고 삼세제불과 팔만사천 보살과 역대 조사들이 인생의 오욕락과 모든 것을 버리고 일대사를 위해서 출가하신 거룩한 뜻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 1989년 5월 7일, 첫째 일요법회 >

 
    생각할 것, 생각하지 말 것 오늘 하룻동안에는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만 생각하겠습니다. 슬픔을 주는 것들은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하룻동안에는 나의 장점과 진실만을 생각하겠습니다. 단점과 거짓은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하룻동안에는 내 주위의 축복들만 생각 하겠습니다. 거절당한 것이나 불행은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하룻동안에는 우정과 미덕을 생각 하겠습니다. 잘못과 헛점은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하룻동안에는 기분 좋았던 날들만 생각하겠습니다. 한숨과 고통은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하룻동안에는 내 앞에 있는 소망들을 생각하겠습니다. 뒤에 남은 찌꺼기는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하룻동안에는 내가 베풀수 있는 친절만 생각 하겠습니다. 나 자신만 돌아보려는 생각은 하지 하겠습니다. (좋은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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