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제일의 아나율존자 (天眼 : 阿那律尊子)

2011. 4. 4. 17:18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당신이 주인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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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제일의 아나율존자 (天眼 : 阿那律尊子)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십대제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타제일 가섭 존자    다문제일 아난 존자

해공제일 수보리존자  신통제일 목련 존자

지혜제일 사리불존자  설법제일 부루나존자

논의제일 가전연존자  지계제일 우바리존자

밀행제일 라후라존자  천안제일 아나율존자

 

 

 

그 가운데 아나율 존자의 과거 전생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아주 옛날 한 젊은이가 부처님 회상에서 부처님이 어느 제자에게 천안이 제일이라 수기하는 것을 보고 환희심이 일어나 부처님과 대중들에게 공양청을 하고는 자신의 집에 오신 부처님께 공양 올리고 자신도 미래 부처님이 출현하실 때 천안제일의 제자가 되고 싶다는 원을 세웁니다.

 

부처님은 그대의 서원은 마침내 이루어져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출현하시는 때 출가하여 아나율이라는 이름의 제자가 되고 마침내 “천안제일이라는 이름을 얻을 것이다”라고 수기하십니다.

젊은이는 부처님 말씀에 너무 기쁜 나머지 공부할 생각은 하지 않고 행복해 하다가 부처님이 입멸하시자 너무나 놀라 제자 스님들에게 천안을 얻으려면 어떤 공덕을 쌓아야 되는가를 묻습니다.

 

스님들은 부처님의 사리탑을 돌며 공양을 올리면서 원을 세우도록 말하고 젊은이는 가르치는 대로 열심히 노력을 했다합니다. 그는 훗날 돌아가서 천상에 태어 났다가 다시 사람의 몸으로 태어 났을 때는 아주 어려운 집안에 태어나게 되었으므로 나라안의 이름난 재정관집에서 일을 보아주는 일을 하게 되었다 합니다.

 

그 재정관은 삼보에 귀의하고 승가에 갖가지 공양을 올리며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으므로 그는 비록 남의 집 일을 돌보는 일이었지만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갑니다.

 

어느때 홀로 깨달음을 얻으신 부처님이 깊은 선정에 들어 있다가 나오시면서 자신에게 처음 공양을 올리는 이에게 크나큰 공덕이 됨을 생각하여 누구에게 공덕을 짓도록 할까 살피니 과거 생에 원력을 세웠던 젊은이에게 공덕을 지을 기회를 주고자 그가 일하는 곳으로 발우를 들고 나아갑니다. 젊은이는 자신에게 다가오시는 독각 부처님의 발우가 비었음을 알고 자신이 부처님께 공양 올려도 좋겠는가 묻고는 부처님의 답을 기다려 집으로 뛰어 들어가 부인이 막 지금 짓고 있는 자신의 밥이 다 익기를 기다려발우 가득 공양을 담아다 올립니다.

 

부처님 역시 공양을 받고 나서 젊은이의 소원이 마침내 이루어지리라 축원을 하니 이때 재정관의 집을 지키는 신장들이 좋아라 박수를 칩니다. 재정관이 “그대들은 무엇이 좋아 그렇게 박수를 치는가” 하니 “지금 재정관의 집에 일을 하는 젊은이가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 것이 너무나 훌륭해 박수를 치는 것입니다”라고 답을 합니다.

 

이에 재정관은 “아니 그동안 내가 그렇게 많은 공양을 부처님과 승가에 공양 올려도 박수를 안치더니 이 무슨 조화속인가” 하고는 젊은이를 불러 오늘 누군가에게 공양을 올린적이 있는가 확인을 하고, 그 공덕을 자신이 사겠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에 젊은이는 “주인 어른의 마음을 알지만 이것은 팔수 없습니다.”라고 거절을 하자 재정관이 부르는 금액이 점점 올라가는데 젊은이는 “그럼 내가 오늘 공양 올린 부처님께 가서 이 공덕을 나누어 드려도 되는지 여쭤보고 나서 하라시는대로 하겠습니다” 하고는 부처님께 가서 사실대로 말을 합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그대여 백가구가 사는 마을에서 한집에 호롱을 밝히고 다른 집에서 불을 얻어백개의 집에 호롱을 밝혀간다 해도 처음의 호롱이 꺼지지 않듯 공덕은 나누면 나눌수록 백배 천배 늘어는 나도 없어지지는 않는 것일세 그러니 염려마시게”라는

말씀을 듣고 마침내 그 공덕을 주인에게도 동참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마침내 낮은 신분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으며 다음 생에는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천안제일의 칭호를 들었다는 아나율 존자의 전생 이야기입니다.

 

그처럼 누군가 지은 공덕은 아무도 다른 이가 가져갈 수 없지만 지은 사람이 나누려 한다면 그 공덕은 줄어 들지도 않으면서 무한대로 쓰일수 있는 허공같은 공덕이 되므로 공덕을 지을수 있는 기회를 만나면 기쁜 마음으로 동참하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짧게 보면 지금 한생이 전부이지만 길게 보면 세세생생 중중무진의 인연이 모여 지금의 나와 현재를 만들고 있는 것 아닌가 합니다. 언제나 부처님 전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비희사등 공덕에 있어 사무량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생을 살아가야 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아나율존자'는 출가 초기에 수행에 별 뜻이 없었던 아나율존자는 늘 게으름을 피우고 잠자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어느날 부처님께 호된 꾸지람을 듣게 됐다. 정신이 번쩍든 아나율존자는 그 날이후로 밤낮없이 자지않고 수행정진에 매달렸다고 한다. 지나친 수행으로 아나율존자는 결국 실명까지하게 됐는데, 그 덕분에 천리를 꿰뚫어보는 천안통의 신통력을 얻게 됐다. 하지만 그의 깨달음에 대한 갈망은 여전했다.

 

그래서 어느날 사리불존자를 찾아가 물었다.

 

"제가 천안통을 얻어서 하늘의 일가지 꿰뚫어 보고 선정을 닦는 노력을 쉬지않고 밤낮으로 하는데,어째서 이제껏 깨닫지를 못하는 겁니까?"

 

그러자 사리불 존자가 가르침을 주었다.

"스스로 신통력이 있다고 말하는 그대의 교만과 스스로 노력한다고 말하는 그대의 자만심이 번뇌를 만드니, 그 까닦으로 깨닫지 못한는 것이다."

 

이말을 들은 아나율존자는 크게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내가안다'는 생각과 '나만옳다'는 집착. 교만은 이런 어리석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진실로 세상과 교감하고 소통하려고 한다면, 이 '안다'는 교만함부터 내려 놓아야 할 것이다.

 

"마음에 자취를 두지 말고 마음에 도사린 교만을 버려라.교만을 없애면 고요한 평안을 얻게 되리라."

-초기경전 숫타니파타에서-

 

눈먼 장애인 아나율존자.

 

아니율존자는 출가하여 부처님에게 잠이 많다는 지적을 받고는 밤낮 가리지 않고 정진하다가 실명失明하였다고 합니다.

정진하다가 비록 실명하였지만 천안天眼을 얻어 천안 제일이라는 칭호稱號를 얻은 눈먼 장애인 이었습니다.

하루는 바느질 하려고 실을 바늘에 꿰려다 쉽사리 바늘구멍으로 실을 넣지 못해서, "누군가 나를 위해 바늘에 실을 꿰어 주고 공덕을 쌓을 사람 없을까?"라고 혼자 말로 하니,

그때 부처님께서, "벗이여, 내가 그 공덕을 쌓으리라."고 하니,

아나율존자는 깜짝 놀라 "더 이상 행복을 추구할 필요가 없으신 성자께서 왜 공덕을 쌓으려고 하십니까?"

부처님께서, "아나율이여, 나도 그대들과 마찬가지로 공덕을 쌓으며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 내가 쌓는 공덕은 내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만 중생을 위한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지혜와 복덕을 원만히 갖추신 부처님께서 후학들을 위하여 복 쌓는데 게을리 하지 않으셨습니다.

 

복 쌓는 일 멀리서 찾는 것 보다 가까운 곳에서 찾아보십시다.

 

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천안제일 아나율존자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떠한 삶의 형태(수행자, 교육자, 정치가, 가정주부, 사업가 등)를 살아가더라도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자유와 행복이다. 부처님께서도 제자가 60명이 되었을 때 ‘모든 생명들의 자유와 평안과 행복을 위하여 전도를 떠나라’고 전도 선언을 하였다. 

 

 잘못 생각하면 수행자는 행복의 추구와 관계가 없는 철저한 자기 희생만을 요구하는 삶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근본적으로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수행자의 길을 걷고 있는 것임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부처님과 아나율 사이에 있었던 일화가 아직도 우리들에게 잔잔한 감동으로 울려오고 있다.

 

 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육신의 눈을 가지고 눈으로 볼 수 있는 경계안에 들어오는 형상이 있는 모든 것을 볼 수 있으며, 하늘의 눈을 가지고 멀리 떨어져 있어 눈의 경계 안에 들어오지 않는 보이지 않는 영역의 형상까지도 볼 수 있다.

 부처님의 십대제자 중에서 천안제일 아나율은 너무 열심히 수행하다가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수행을 멈추지 않고 계속하여 결국 하늘의 눈을 얻게 되었다.

 

 낡아 헤어진 옷을 기워 입어야 하는 것이 장님인 아나율에게는 제일 큰 걱정거리였다. 이날도 혼자 앉아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오늘따라 아무리 애를 써도 실이 바늘에 잘 꿰어지지 않았다.

 “눈 먼 나를 위하여 바늘에 실을 꿰어 주는 공덕을 쌓지 않으시렵니까?”

 그의 곁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실과 바늘을 건네 받으면서 그는 말했다.

 “그럼 내가 공덕을 쌓도록 하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부처님이었다. 깜짝 놀란 아나율이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말했다.

 “부처님께서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 초월하여 깨달음을 성취하신 성자이십니다. 이제 공덕을 쌓아 행복을 추구할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아나율이여, 그렇지 않다. 나도 여러 벗들과 마찬가지로 행복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우주의 모든 것이 존재하고 있는 관계성을 볼 수 있는 법의 눈이 있으며, 법의 눈이 사무쳐 자신이 존재의 본질이 되어버리는 깨달음의 눈이 있는 것이다. 아나율이여, 부처는 깨달음의 눈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부처에게는 함께 괴로워할 줄 아는 육신의 눈도 있으며, 신통조화를 마음대로 부릴 줄 아는 하늘의 눈도 있으며, 고요한 절에서 풍경이 혼자 울릴 때 왜 풍경이 울리는지 아는 지혜의 눈도 있으며, 물이 온도가 내려가면 얼음이 되고 열을 가하면 수증기가 될 때도 본질은 같은 것임을 아는 법의 눈도 있어서 세상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이다....


 우리가 존재의 본질을 추구하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것도 결국은 진정한, 최상의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를 거머쥐려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행복은 내면의 자유에 비례하는 것이며, 자신의 삶에 대한 확신으로부터 가능한 것이다.

 ‘나’에 대한 철저한 인식이 없이는 자유의 나라에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간혹 ‘나’에게로의 여행을 떠나다 보면 바닥도 보이지 않는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지기도 한다. 새 봄이 돌아오면 언제 그랬느냐? 하면서 의기양양하게 따사로운 봄기운에 흠뻑 젖기도 한다.

 

자신이 갖고 있는 절망의 구렁텅이가 존재의 허상에서 주어지는 인식이라면 자유는 허상을 타파하면서 터져 나오는 자신의 내면의 소리인 것이다. 삶으로부터 자유로운 자만이 진정한 행복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음을 깊이 인식하자.

 

나무아나율존자

 

천안제일 아니룻다

부처님의 십대제자로서 지헤의 눈이 밝아 천안제일(天眼第一)로 불렸다. 육체의 시력은 잃었으나 정신이 맑고 밝아 지헤의 큰 눈을 얻었다 한다.

그의 출신에 대하여는 샤카족의 가난한 요리사 였다는 설과 샤카족 마하마나(摩訶男)의 사촌 동생이라는 설이 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뒤 카필라성에 돌와왔을 때 바드리카(拔提), 아난다(阿難陀). 난다(難陀). 데바닷타(提婆達多). 파아샤(婆娑). 금비라(金毘羅) 등의 왕족과 함께 출가하여 입적하기까지 55년 동안이나 수행을 계속했다.

부처님이 코살라국의 수도 사밧티에 있는 기원정사에서 많은 제자와 신자들에게 가르침을 설할 때, 그가 졸았던 일이 있다. 이때 부처님께서 조용히 꾸짖었다.

"아니룻다야, 너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불제자가 되었느냐?"

"오늘 이후부터 저는 설사 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부처님 앞에서 졸지 않겠습니다."

아니룻다는 부처님께 참회하고 다짐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밤이 깊고 아침이 되어도 결코 잠을 자지 않았다. 부처님은 염려의 말로 타일렀다.

"수행을 게을리 하는 것은 잘못이나 그대처럼 지나쳐도 잘못이다."

더욱이 그의 시력이 나빠짐을 걱정하여 명의(名醫) 지바카(耆婆)를ㅇ 시켜 그의 눈을 보살펴 주도록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부처님의 누차에 걸친 설득에도 불구하고 결심을 바꾸지 않아 실명하고 말았다. 대신 그러한 철저한 수행 끝에 지혜의 눈을 얻었다. 이를 인정한 부처님은 그를 천안제일이라고 칭찬하였다.

그 뒤 역시 기원정사에 있을 때 자신의 옷을 꿰매려는데 도저히 바늘 구멍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 모습을 본 부처님은 손수 그의 옷을 꿰매어 주었다. 그리고 수행의 바른 길을 제시하였다.

"내가 쌓는 공덕은 내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중생을 위한 것이다."

그는 수행을 계속하다가 밧지족이 살던 베루바 마을에서 입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