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친구를 만나면 좋은 세상을 살게 된다

2011. 4. 8. 18:02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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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친구를 만나면 좋은 세상을 살게 된다.>>

 

(함께 사는 세상)

 

불자님들

새소리가 유난히 맑고 행복해 보입니다.

사람은 자연과 더불어 살고

또 여러 사람들과 함께 오순도순 잘 사는 것이

행복한 삶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함께 사는 소중함을 모르고

이기심 때문에 자기나 자기자식 또는 자기와 가까운 이들만

일등하고 잘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한 이기심으로 학생들을 교육시킨 결과

우리나라 학생들이 공부는 세계최고수준인데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사회적 능력은

꼴찌라는 연구결과가 나와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함께 사는 세상을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 중에서도 좋은 사람, 좋은 벗이 필요한 이유를 경전을 통해서 알아보도록 합니다.

 

 

◇ 세존께서 장로인 난타와 함께 향을 파는 가게에 가셨다가 난타에게 이르셨다.

“ 저 향이 든 주머니를 집어 보아라.”

난타가 부처님의 분부에 따라 가계에 있는 향을 집자, 부처님께서는 다시 난타에게 이르셨다.

“ 한 시각만 그 향을 잡고 있다가 도로 놓아라.”

난타는 분부하신 대로, 한 시각이 지난 뒤에 향을 놓았다.

부처님께서 난타에게 말씀하셨다.

“ 이제 네 손을 맡아보아라. 그 손에서 어떤 냄새가 나느냐?”

난타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손의 향기가 끝없이 미묘합니다.”

부처님께서 난타에게 이르셨다.

“ 정녕 그럴 것이다. 사람이 모든 선지식(좋은 벗 포함)을 가까이하여 항상 따르는 경우에도, 마치 위 향기가 몸에 배듯이 그 덕에 감화되어 반드시 뛰어난 명예를 얻게 될 것이니라.”

불본행경(佛本行經)

 

◇ 만약 지혜 있는 선우(善友)를 가까이 한다면, 몸과 마음의 안팎이 함께 청정해질 것이다. 이렇게 되어야 참다운 장부라고 할 수 있다.

대장엄경론(大莊嚴經論)

 

 

◇ 벗 사이에는 세 가지 긴요한 일이 있다. 첫째는 과실을 보면 서로 깨우쳐 충고함이요,

둘째는 공덕이 되는 일을 보면 깊이 따라서 기뻐함이요, 셋째는 불행에 있을 때에 서로 버리지 않음이다.

인과경(因果經)

 

 

◇ 그렇습니다.

좋은 벗을 가까이 하면 자신이 잘못된 길을 갈 때, 나쁜 길을 가지 않도록 충고해 줍니다, 또 위험에 빠졌을 때는 구해주고, 힘든 길을 함께 의지하며 갑니다.

이 벗에는 함께 사는 부부도 인생의 벗이 될 수 있고, 형제도 벗이 될 수 있습니다.

이웃 사람도 벗이 될 수 있고, 함께 수행을 하는 불자님은 모두 도우(도반)인 것입니다.

또 자신을 좋은 길로 인도하는 선지식이나 스승도 도반인 것입니다.

그래서 열반경에 이르기를

“만약 사람이 선지식(善知識)을 구하여 가까이 하면, 이 선지식이 그 사람의 탐욕과 노여움과 어리석음과 정신작용 중, 무엇이 많은가를 살펴서, 탐욕이 많은 자에게 부정관법(不淨觀法)을 설하고, 노여움이 많은 자에게는 자비를 설하고, 정신작용이 많은 자에게는 수식(數息)을 설하고, 자아(自我)에 대한 집착이 많은 자에게는 십팔계(육근/육경/육식) 등을 분석해 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 최근 국제교육협의회가 재작년 세계 중학생 14만 6백여 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사회적 상호작용 역량 지표를 계산한 결과입니다. 사회적 상호작용 역량 지표는 사회적 관계형성과 협력, 갈등관리 능력과 관련된 문항을 3개 영역으로 나눠 점수를 매긴 뒤 그 결과를 평균해 낸 것이며 이웃과 더불어 갈등을 조정하고 살 수 있는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우리 청소년의 사회적 상호작용 역량 지표는 1점 만점에 0.31점으로, 조사 대상 36개 나라 가운데 35번째로 나타났습니다. 우리학생들은 특히, 이 지표를 구성하는 항목 중 사회적 협력과 관계 지향성 항목에서 0점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회역량 지표가 가장 높은 곳은 태국이었고, 다음은 인도네시아와 아일랜드 순 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학생들, 공부는 세계최고수준인데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사회적 능력은

꼴찌라는 것은 참으로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단군자손이라는 강한 민족정신이 있어 늘 같은 형제 핏줄이라는 의식이 강해 외적의 침입을 함께 막아내고,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고 즐거운 일도 함께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 좋은 예가 동내마다 있던 두레라는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혼자 사는 것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고, 함께 오순도순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당연한 생활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부터 약 65년 전부터 서구의 시장경쟁을 주도하는 물질적 자본주의가 이 땅에 들어오면서 오직 1등 1등을 외치고,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최선이요, 지상 목표라고 국민들을 쇠뇌 시키고 가르쳐 왔던 것입니다. 이와 동시에 타종교는 무시하고 조상도 섬기지 않는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오면서 우리의 미풍양식이요, 좋은 전통은 자취를 감추게 된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있는 모든 생명체와 자연물은 오직 인간을 위해 있다고 가르치는 기독교의 인간이기주의 가르침 때문에 지금 이 지구는 환경오염에 심각한 병을 앓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체에 나쁜 가스를 제일 많이 발생하는 미국은 오히려 지구 환경보전에 제일 소극적입니다. 또한 미국은 세계의 경찰국으로 자처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무역이나 기타 정치 군사 문제 등에서 약소국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미국의 정책이나 문화를 제일 좋은 것으로 알고 배운 지식인들이 해방 후 한국을 지배하여 왔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교육 정책도 일류만을 지향하는 우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천 년 동안 나라 없이 떠돌아도 그 민족이 없어지지 않은 것은 강한

민족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지구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많은 나라들은 그들의 정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단군의 자손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부추기고 있는 사람들이 다름 아닌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많은 정치인 학자 종교인들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 나라를 이스라엘 민족이 숭상하는 여호와 하느님의 나라로 만드는데 앞장서고 있으면서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웃나라 일본이 지진이 일어나 큰 참사를 당하게 된 것은 그들의 하느님을 믿지 않고 미신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부모 없는 자식은 없는 법입니다. 또조상 없는 자손은 없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에 나오는 민족 신인 하느님을 믿고 자신들의 조상은 모두 우상을 숭배한다고 합니다. 도대체 우상이 무엇인가요? 그들이 믿는 하느님이 바로 우상 아닌가요?

 

그들이 금지옥조로 믿는 성경에 보면, 그들 하느님을 믿지 않으면 쳐 죽이고, 임신한 여자의 배를 갈라 그 태아를 멧돌에 갈아 버리고 이교도라는 이름 하나 때문에 사내란 사내는 다 죽여 버리고 씨를 말려 버리도록 명령하는 분노의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인간 들 중에 가장 잔혹한 인간을 가르치고 기르는 하느님이 바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믿는 여호와 하느님입니다. 그래서 이지구상에서 가장 간악한 마음을 심어주는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 바로 제정신을 가진 사람일까요? 십자군은 바로 그 간악한 상징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기독교가 번성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종교가 다르더라도 함께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치지 않고 오직 자신들의 종교를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신성한 법당에 와서 행패를 부리는 종교인이 바로 기독교인들입니다.

그리고 더욱 무서운 것은 자신들의 생각이나 이기적인 마음도 모두 하느님의 뜻이라고 믿고 따른다는 것입니다. 이성이나 양심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몇몇 비뚤어진 목회자들의 이기적인 말을 듣고 그 말이 하느님의 말이라고 믿는 어리석은 신도들이 집단 광신도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심히 위험한 일이요,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구나 이들이 이 나라의 정치, 교육, 사회, 문화 등 국가의 전 분야에서 가장 핵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공부는 세계최고수준인데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사회적 능력은 꼴찌라는 수치로 나타난 것도 어찌 보면 이러한 문화 속에서 양산된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합니다.

◇ 이 세상은 돌 하나 나무하나 공기하나도 필요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하물며 사람들이야 필요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누구나 존재가치가 다 있는 것입니다. 성을 쌓을 때 보십시오, 모난 돌, 둥근 돌, 큰 돌 작은 돌 다 필요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다른 종교도 필요한 것입니다. 자신들의 눈높이에 맞는 종교가 필요합니다. 기독교가 그들의 교세를 확장하기 위한 방편이기는 하지만, 병원을 짓고, 학교 설립하고 복지시설을 갖추는 것은 본 받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거국적으로 함께 사는 세상을 열어 가는데 모든 국민이 힘을 합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남녀노소, 지역, 직업, 종교의 구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자손들이, 학생들이 이제는 일등 일등만을 목표로 하여 남을 이기고 어렵게 하는 교육보다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치는 교육으로 바꿔야 합니다. 일등도 10등도 꼴지도 모두 멋지게 잘사는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참교육이요, 대한민국이 세계의 정신적인 지도국이 되는 길입니다.

함께 살지 못하고 자신만 잘 살려는 생각과 교육은 이 시대에 반드시 버려야할 나쁜 문화

유산인 것입니다.

 

만일 기독교와 불교와 또 모든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오순도순 잘사는 나라가 된다면

그 땅이 바로 축복의 땅이요, 천국이요, 극락이 될 것입니다.

 

그 땅의 하느님은 자기를 믿지 않는다고 저주하고 분노하는 미성숙 된 하느님이 아니라

이 우주 모두를 다 사랑하는 폭 넓은 자비의 하느님, 사랑의 하느님, 진실한 하느님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주 속에 있는 모든 존재들은 함께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 우리는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갈 좋은 벗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하느님도 부처님도 우리의 좋은 벗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우리도 좋은 벗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자여러분

끝으로 좋은 벗에 대한 경전의 말씀을 듣고 우리 모두 좋은 벗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 벗 사이에는 세 가지 긴요한 일이 있다.

첫째는 과실을 보면 서로 깨우쳐 충고함이요,

둘째는 공덕이 되는 일을 보면 깊이 따라서 기뻐함이요,

셋째는 불행에 있을 때에 서로 버리지 않음이다.”

 

 

 

 

 

비워가며 닦는 마음

  


모름지기 살아간다는 것은
가득 채워져 더 들어갈 수 없는 상태가 아니라
비워가며 닦는 마음이다.

 
언제쯤이면 내 가슴속에
이웃에게 열어 보여도 부끄럽지 않은
수수한 마음이 들어와 앉아 둥지를 틀고

 
바싹 마른 참깨를 거꾸로 들고 털 때
소소소소 쏟아지는 그런 소리 같은

가벼움이 자릴 잡아 평화로울가.

 
그 위에 바스러지는 가녀린 상념은 지줄 대는
산새의 목청으로도 어루만지고 달래주질 못하니

 
한 입 베어 먹었을 때
소리 맑고 단맛 깊은 한겨울 무,
그 아삭거림 같은 맑음이 너무도 그립다.

 
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는 것이, 곧 나다.

 
나를 다스리는 주인도
나를 구박하는 하인도 변함 없는 나다.

 
심금을 울리는 하나의 목소리
하나의 외침, 외침들 그것도 역시 나다.

 
나를 채찍 질 하는 것도 나요,
나를 헹구어 주는 것도 나다.

 
 
아름다운 삶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