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우리는 모두 은혜 속의 주인공들입니다/해월스님

2011. 4. 16. 13:2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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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우리는 모두 은혜 속의 주인공들입니다

 

 

 

 

 

해우소에 근심 덜어내려 갔다가

볼일을 보고 두루말이 화장지를 펴 내리는데

문득 아주 오랜동안 아무런 생각없이

화장지를 써왔지만 내가 사용하고자

직접 화장지를 사 보거나

해우소에 걸어 둔적이 없음을 생각합니다

 

근심을 덜어내고 나서

양치와 세안을 하려 물을 트니

청량한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는데

문득 내가 이 물 한 방울이 나오는데 있어서

어떠한 공덕을 지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눈에 보이는 요소만이 아니라

단 한 호흡이라도 결여되면 당장에

생명과도 바꾸어야 하는 공기의 소중함 역시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에 대한

작은 감사의 마음조차

별로 가지지 않고 살아 왔음을 돌아 봅니다

 

밥 한 그릇 옷 한 벌 등등 하여

내가 벼 한 포기 심은 적이 없고

실낱 하나를 만드느라 보탠 일이 없어도

반백을 지나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그때 그때 필요한대로 주어지고

모든 것에 있어 부족함을 모르고 살았음은

이 모두가 작게는 부모와 형제 가족으로부터

크게는 천지 자연에 이르도록 보이지 않는

은혜와 가피 아님이 없음을 생각합니다

 

야운스님께서는 자경문에

금생미명심하면 적수야난소라 하셨는데

지금까지 마신 물을 다 합하면

태평양도 부족할 것이고

지금까지 먹고 내놓은 물건을 생각하면

태산보다 많을 것이니

지금 두 발 디디고 선 자리에서부터

이 한몸 누이고 사는 반평짜리 대지일망정

그 속에 안심입명하고 감사하며 사는

나와 우리는

모두 은혜 속의 주인공들입니다

 

어디 그뿐만이겠습니까

 

어제는 울림 불교 학생회원들과

같이 모여 학생회 법회를 하고

오늘은 원효 유치원 아가들과 만나

도량에 활짝 피어 난 목련꽃 아래서

입학 기념 사진을 같이 찍고

월요 법회를 하면서도

지금 만나고 있는 인연들이

내게 있어서 얼마나 값지고

은혜로운 만남인지를

다시 한번 감사하는 마음으로 상대합니다

 

초가 자기 몸을 살라서 세상을 밝히듯

우리 불자들의 삶도 스스로 밝히는 동시에

세간을 이롭게 하는 자리이타의 정신으로

세상으로부터 받은 크나큰 은혜를

백천억만분지 일이라도 갚아 나가도록

각자 머무는 자리에서 주인공의 역할로

열심히 살아가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도량을 거니노라면 코끝에 스치는

매화의 은은한 향기에 봄은 어느덧

온다 소리 없이 왔구나 하고 고마워하다가

바람에 떨어져 나부끼는 꽃잎을 보며

이제는 간다 소리 없이 어찌 그리 쉽게

떠나려 함을 아쉬워 하는 날입니다

 

내일은 청도를 갔다가 대구에 들러서

사경하는 불자님들의 붓끝에서 피어 난

문자로 된 법신사리를 친견하고

감탄과 공경의 마음으로 돌아 올 예정입니다

 

 

 

 

꽃피고 새우는데 / 추사 김정희

 

 

放處西川十樣錦     방처서천십양금
收時明月印前溪     수시명월인전계
 
收放兩非還兩是     수방양비환양시 
一任花開與鳥啼     일임화개여조제
 
 
펼쳐 두면 서천의 고운 비단 무늬요
거둬 둘 땐 밝은 달이 앞 시내에 떠 있네.
 
펼쳐 두건 거둬 두건 둘 다 옳거나 그르거나  
꽃피고 새우는데 맡겨 두노라.

 

 

 

 

 

추사 김정희는 재가자로 불도를 깊이 닦아 심오한 이치를 터득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초의(草衣)선사나 백파긍선(白坡亘璇)과도 절친한 교분을

나누면서도 한 때 초의와 백파의 선의 논쟁에도 끼어들기도 하였다.

초의와 백파가 각각 <선문사변만어>와 <선문수경>을 지어 논쟁을 벌였을 때

추사는 초의의 의견을 지지하며 백파를 공박한 일도 있었다.

펼치고 거둔다는 것은 본체와 작용을 두고 쓰는 말이다.

 “고요히 앉은 곳에 차는 반쯤 끓었고 향은 처음 꽂았는데 미묘한 작용

일어나니 물이 흐르고 꽃이 핀다(靜坐處茶半香初 妙用時水流花開)”는

황산곡의 시를 추사는 즐겨 쓰기도 하였다.

 
지안스님 / 조계종 승가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