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율사와 금개구리

2011. 4. 16. 13:32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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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율사와 금개구리

<영축산·자장암>

양산 통도사 산내 암자인 자장암 법당 뒤 절벽 바위에는 1천4백 년 전부터 금개구리가 살고 있다고 전한다. 요즘도 자장암에서 정성들여 기도를 잘하면 볼 수 있다는 이 금개구리는 자장율사가 통도사를 세우기 전, 석벽 아래 움집을 짓고 수도하고 있을 때 나타났다.

어느 날 저녁 자장율사는 공양미를 씻으러 암벽 아래 석간수가 흘러나오는 옹달샘으로 나갔다. 바가지로 막 샘물을 뜨려던 스님은 잠시 손을 멈췄다.

『웬 이럴 수가. 아니 그래 어디 가서 못 놀아서 하필이면 부처님 계신 절집 샘물을 흐려놓는고.』

스님은 샘에서 흙탕물을 일으키며 놀고 있는 개구리 한 쌍을 두 손으로 건져 근처 숲속으로 옮겨 놓았다.

다음날 아침. 샘가로 나간 자장 스님은 개구리 두 마리가 다시 와서 놀고 있는 것을 보았다.

『허참, 그 녀석들 말을 안 듣는구먼.』

스님은 다시 오지 못하도록 이번에는 아주 멀리 갖다 버리고 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다음날에도 개구리는 또 와서 놀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상한 일이로구나.』

스님이 개구리를 자세히 살펴보니 여느 개구리와는 달리 입과 눈가에는 금줄이 선명했고 등에는 거북 모양의 무늬가 있었다.

『불연이 있는 개구리로구나.』

자장율사는 개구리를 샘에서 살도록 그냥 놔 두었다.

어느덧 겨울이 왔다. 자장율사는 겨울잠을 자러 갈 줄 알았던 개구리가 눈이 오고 얼음이 얼어도 늘 샘물 속에서 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거 안되겠구나. 살 곳을 마련해 줘야지.』

스님은 절 뒤 깎아 세운 듯한 암벽을 손가락으로 찔러 큰 손가락이 들어갈 만한 구멍을 뚫고 그 안에 개구리를 넣어 주었다.

『언제까지나 죽지 말고 영원토록 이곳에 살면서 자장암을 지켜다오.』

스님은 이렇듯 불가사의한 수기를 내리고는 개구리를 「금와」라고 이름했다.

그 뒤 통도사 스님들은 이 개구리를 금와보살, 바위를 금와석굴이라 불렀다.

금와석굴은 말이 석굴이지 지름이 1.5∼2cm에 깊이 10cm 정도의 바위 구멍이다.

그 속에는 이끼가 파랗게 끼어 있는데 개구리 같기도 하고 큰 벌 같기도 한 것이 살고 있다고 한다.

자장율사의 수기를 받아 오늘까지 살아온다고 전해지는 이 금와보살은 통도사 내에 길조가 생길 때면 나타난다고 한다.

고 경봉 스님이 10세 되던 해였다. 당시 80여 세이신 용익 스님은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좋은 종이에 탁본하여 모실 수 있기를 발원했다. 용익 스님은 통도사 큰법당에서 백일기도를 올렸다.

기도 끝나기 3일 전, 금와보살이 큰법당 탁상 위에 나타났다. 용익 스님은 금개구리를 보는 순간 불사가 원만성취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부처님께 감사드리며 남은 3일간 철야정진을 했다. 기도가 끝나고 며칠 안되어 시주자가 나타나 팔만대장경 3권을 책으로 묶어 통도·해인·송광사에 1부씩 보관하게 됐다고 한다.

얼마 전 태응 스님은 자장암 법당 증축불사를 위해 기도를 올리다가 개구리소리를 들었다. 이상히 여긴 스님이 「관세음보살」을 외우면서 계속 기도를 하다 보니 부처님 옆 탁자 위에 회색 바탕의 몸에 다리가 붉은 금개구리가 기어나와 있었다.

스님은 그 후 사철 동안 굴 속을 들여다보면서 금개구리를 자세히 살폈다. 초봄의 금개구리는 자연석 같은 회색 바탕에 등에는 검은 점이 있고 발끝에는 둥글둥글한 구슬이 달려 있었다. 금테 같은 선을 두른 입은 마치 두꺼비 입을 닮았다. 여름이 되니 몸이 파랗게 변하면서 검음 점이 많이 보이다가 장마가 지자 다시 초봄의 색으로 변하더라는 것이다. 여름 더위가 심할 때는 몸 색이 누렇게 변하고 겨울이면 벌처럼 보였다고 한다.

이렇게 일기와 계절에 따라 변하는 금개구리는 먹이가 무엇이며 언제 밖으로 나오는지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궁금히 여긴 자장암 스님들은 어느 날 밤낮없이 교대로 석굴을 지켜봤다.

영축산에 어둠이 깃드니 금개구리 두 마리는 밖으로 나와 석굴이 있는 절벽 바위 위로 올라갔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빨랐던지 순식간에 4∼5m를 뛰어올랐다고 한다.

그러나 언제 굴 속으로 다시 들어갔는지 본 사람이 없는데 스님들은 아마 새벽 2∼3시경인 듯 싶다고 추측하고 있다.

여름철 바위가 태양열에 파열되어 뜨겁기가 달구어진 무쇠솥 같아도 금개구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뛰어다닌다고 한다.

옛날 어떤 관리가 금개구리 이야기를 듣고 자장암을 찾았다.

『이 절에 금개구리가 있다면서요?』

『예, 있습니다. 자장율사 이후 한 번도 산문 밖을 나간 일이 없이 자장암을 지키면서 석굴 속에 살고 있지요.』

스님이 금개구리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자 관리는 믿으려 하지 않았다.

『내 그 개구리를 잡아 시험을 해볼 것이오.』

『아니됩니다. 그 개구리는 불연이 깊은 불가사의한 생물입니다.』

그러나 그 관리는 스님의 만류를 뿌리치고 개구리를 잡아 함 속에 넣어 밀폐한 뒤 산문을 나와 함을 열어보았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분명히 잡아 넣은 개구리는 보이지 않고 함은 비어 있었다.

그 후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 금개구리들ㅇ느 자장율사의 신통력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지금도 통도사 자장암을 참배하는 불자들은 으레 금와보살을 친견하려 한다. 그러나 신심이 돈독한 사람에게만 보이므로 친견 못하고 돌아서는 불자들이 더 많다고 한다.

금개구리 친견으로 자신의 신심을 한 번쯤 측량해 보아도 좋을 것 같다.

 

 


공은 닦은대로 간다 


어느 날. 한 보살이 찾아와 묻기를

저는 그동안 세상을 살아가면서
별로 죄지은 일도 없이 열심히 살아온다고 왔는데
일년 열두달 365일.단 하루도 빼지 않고 편한 날이 없어
자고 일어나면 근심걱정과 속상한 일 뿐이오니
대체 어이된 까닭입니까?

하였습니다.
그래서 답하기를

사람마다 근심걱정과 속상한 일들이 그치지 않는 것은
그 첫째가 욕심 때문이니라.
더 많은 재산, 더 커다란 집, 더 넓은 방, 더 높은 벼슬,

더 맛있는 음식, 더 좋은 의복 등을 끝없이 욕심내어 왔으니
그 욕심이 채워지지 않으면 속이 상하고

근심걱정이 그치지 아니할 것은 자명한 일이 아니겠는가 ?

또 그 두번째 까닭은 성냄에 있으니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하여 화를내고 성질을 내고
자기말을 듣지 않는다 하여 미워하고 원한을 품으니
그 근심걱정에 이 어찌 하루인들 편하겠는가?

또 그 세번째 까닭은 어리석음이니
사람이 겨우 백년도 제대로 못살거늘 천년,만년 살 것으로

착각하여 끝없는 욕심과 성냄으로 제 명을 재촉하고 있으니
이 어찌 심신에 편함이 있겠는가?

이 모든 것을 깨달아 오늘부터 욕심한가지를 줄이면
근심걱정은 반으로 줄어들 것이요.
오늘부터 성냄한가지를 줄이면
나머지 근심걱정이 또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요.

오늘부터 이러한 어리섞음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지혜를 얻으면
나머지 근심걱정 또한 씻은듯이 사라질 것이니라.
그리되면 그 무엇이 근심되며 그 무엇이 속상하겠는가?

하루 속히 이러한 이치를 깨달아 번뇌를 지우고
선업공덕을 쌓아가야 하리라.
세상의 이치가 죄라 하는 것은 지은 대로 가는 것이요
공이라 하는 것은 닦은대로 간다 하였거늘
어차피 제손으로 지어서 제손으로 받는다면
기왕이면 죄를지어 업보를 받느니
공을 닦아 복을 받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그러기 위해선 공닦음에 부지런 해야 하느니
예로부터 부지런한 바보는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지만
영리한 게으름뱅이는 거렁뱅이 신세를 면치 못한다 하였느니라.

살아있을 때, 선행하기를 멈추지 말라.
좋은일 착한일을 쌓은 공덕은 다 네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