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4. 24. 12:51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부처님 공부는 지혜와 더불어서
/ 청화스님
지금 불교를 믿고 있는 분들 가운데서 믿기는 믿는데 별로 얻음이 없다고 하시는 분이 많이 있습니다. 저번에 어느 보살님 한 분이 산에 가서 백일기도를 모시고 왔다는데 아무런 얻음이 없었다고 호소하는 것을보았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고 물어 보니까 그냥 덮어놓고 염불만 하고 절만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도 공부가 되지않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자기 몸과 마음에 공부가
다 스며들어서 그것도 훌륭한 공덕이 됩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는 방편을 떠난 참다운 공부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부처님 공부는 꼭 밝은 지혜(智慧)와 아울러 나아가야 참다운 불법(佛法)의 공부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 불자님들은 각기 인연(因緣) 따라서 가지가지 공부하는 방법을 쓰고 계시겠지요. 그 자
체만도 귀한 공부입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기본적으로우리 인간은 어떠한 존재인가? 철학적으로 존재론적으로 자기 존재 파악을 하고서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과거 전생(前生)에 지어 내려온 번뇌(煩惱), 금생에 태어나서 지은 번뇌, 그런 번뇌에 가려
서 공부가 잘 못나아갑니다.
과거에 조사(祖師) 스님들 말씀에도 '부달성공(不達性空)하면 좌선무악(坐禪無益)' 이라 이것은 우리 마음 즉, 일체성품. 일체존재. 일체현상이 다 비었다는 공의 도리를 모르면 참선(參禪)을 해도 별로 크게 얻음이 없다는 말입니다. 불자님들 꼭 이런 말씀은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인간 존재나 일체 두두물물의 존재를 상식적으로 본다고 생각할 때는 우리 인간이 보는 대로 자타 시비(是非)가 있고 선악 구분이 다 있습니다.
그러나 상식적인 차원을 넘어서 과학적으로 볼 때는, 과학도 전 근대적으로 볼 때는 분명히 상식적인 범주를 못 넘어서 나도 있고 너도 있고, 이 몸뚱이도 내가 생각 한대로 있고, 모든 존재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른바 미시적인 우리 인간의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세계를 취급하는 현대 물리학적인 차원에서 볼 때는 우리 중생이 보는 이대로 있지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적어도 현대 과학적으로 볼 때는 '나'라는 주관도 또 그것에 대립되는 객관도 우리가 상식으로 생각하는 대로 있지가 않는 것입니다.
'제법이 공이'라 제법(諸法)은 모든 만법(萬法)을 말합니다. 제 아무리 공부를 많이 했다 하더라도 제법이 공 이라는 소식을 모르면 불법을 모르는 것입니다. 또 현대 과학인 이른바 상대성 원리에서 오는 참다운 과학도 모르는 것입니다.
현상적인 일체존재는 상대적으로 잠시간 모양을 나툰 것이지 실존적 실상적으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부처님 가르침을 지금까지 상식적으로 믿어 왔기 때문에 별로 얻음이 없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백일 동안 공부를 했다 하더라도 별로 얻음이 없다하는 것은 부처님 가르침을 보다 기본적 본질적으로 공부하신 것이 아니라 상식적으로 공부를 했다는 말이 됩니다.
상식만으로 볼 때는 틀림없이 자기 몸뚱이가 있고, 또 다른 사람 몸뚱이도 있고,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은 물질 세계뿐인 것입니다. 시간 공간 그러한 범위 내에 들어 있는 그런데서 한발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상식적인 우리 중생들의 견해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렇게 밖에 살지 못하는 한에는 항상 상대 유한적인 세계에서 내가 있고, 네가 있고, 나한테 좋게 하면 좋은 것이고, 내 단체나 내 종단에 좋게 하면 반가워서 좋고, 자기한테나 자기 소속 단체한테 누가 조금 언짢게 하면 원수같이 미워지게 됩니다.
이런 상식적인 범주 내에서는 우리 인간의 번뇌(煩惱)를 영원히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
과거 [소크라테스]나 [플라톤]도 우리 중생들이 보고 있는 모든 현상이라 하는 것은 허망한 그림자 같다고 말했습니다. 어떠한 위대한 철인치고 그렇게 말하지 않은 분이 없습니다.
그렇게 무수한 동서철인들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증명한 것을 지금 우리는 진리의 핵심인 부처님 법문 속에 들어와서도 오히려 상식을 못 떠나고 불교를 믿고 있다고들 합니다.
인도의 성웅 [간디] 같은 분도 나는 '그리스도를 좋아한다. 그러나 나는 크리스챤은 싫어한다'고 했습니다. 간디의 말을 우리가 지금 되새겨서 다시 말할 수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의 불교의 상황을 볼 때에 많은 지성인들이 '나는 부처님을 좋아한다.
그러나 나는 불교인은 싫어한다' 이렇게 말할 수밖에는 없는 것도 우리가 뼈아프게 반성하지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과연 우리 불교인들이 상(相)을 떠나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일까?
상을 떠나서 행동과 말을 하지 않으면 자기한테나 자기 단체에 대해서
나 무슨 이익이 될 것인가? 우리는 지금 다시없이 바쁘고 무서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서울서 여기 태안사(泰安寺)까지 오실 때 교통이 막혀 14시간 걸려서 오셨다는 분도 계십니다.
그렇다고 생각할 때에 한편 감사하고 한편 송구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과연 그렇게 오셔 가지고서 무엇을 얼마나 얻어 가지고 가실 것인가? 이렇게 생각 할 때는 저 같은 사람은 자신이없습니다. 무엇을 드려야 할 지 자신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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