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놓아라 2/한마음 선원

2011. 4. 29. 20:03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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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없는 무(無)가 아니라 꽉찬 무(無).

 

22)
마음의 중심을 튼튼하게 다지기 위해서

다른 종교의 성전(聖殿)에 가볼 수도 있을 것이다. 교회든, 성당이든...
몸이 어디로 가든 그것은 상관없는 일이다.

다만 내면의 자기 자신을 잃어서는 안 된다.

문제는 껍질이 아니라 알맹이이며, 그 알맹이는 곧 자기 자신이다.

  

23)
믿음은 불가사의한 힘을 가지고 있다.

어떠한 어려움에 봉착하더라도 완전한 믿음은

그 어려움의 얽힌 실타래를 깨끗이 녹여버린다.

믿음은 믿음만큼 보답한다.

일체를 믿는 이에게는 일체를 되돌려주고,

절반만 믿는 사람에게는 절반만 되돌려준다.
주인공에 대한 철저한 믿음이 강조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24)
당신은 체(體, 肉體)없는 존재다.

그러므로 육체가 고통에 끄달린다는 따위는 있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육신이 나라고 믿고 사는 사람의 인생은 고(苦)이지만,

육신 아닌 하나--그 모습없는 나로서 사는 사람의 삶은 자유라고 하는 것이다.

 

25)
살다보면 앞뒤 좌우가 모두 꽉 막혀서 어떻게도 해볼 수 없는 때가 있다.

이럴 때 믿음이 흔들리고 공부가 뒷걸음질치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하면 이럴 때일수록 더더욱 정진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경우 생각해야 할 점은 언제 어디서나 당신을 이끄는 것은

다 주인공일 수밖에 없다는 그 점이다.
그러므로 그런 어려움조차도 주인공이 당신을 위하여 주는 공부의 기회인 것이다.

그러니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염려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어려움을 준 쪽에서 스스로 풀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26)
비구는 250계, 비구니는 348계라고 한다.

그런데 그 모든 계율은

'나' 하나를 뚝 떼어던지고 나면 다 저절로 지켜지게 되는 것이다.

 

27)
지금 이 자리에서 죽게 된다고 해도

여한이 없는 마음으로 부처님께 귀의했다면

생활에 있어서의 잡다한 걱정이나 불안이 어찌 있을 수 있겠는가?

  

28)
경전이란 이 세계를 말한 것이다.

그러나 경전이 나타나자 사람들은 경전을 보느라고 세상을 보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예전의 선사 중에는 수좌들에게 처음에는

오히려 경전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29)
난을 피한다고[避難] 자리를 옮기지만 그 자리가 이 자리와 다르지 않다.

오직 자기 마음이 당당하고 도도한 그것이 피난처일 뿐이다.

  

30)
짐승들도 미래를 아는 능력이 있다. 하물며 인간이겠는가.
인간이 짐승들보다 더 나은 점이 없다면

그것은 스스로 자신을 등한히 여기기 때문일 뿐이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굳게 믿으라.

그러면 미래를 아는 능력뿐이 아니라 더 크나큰 지혜에 눈뜨게 될 것이다.

 

31)
수억 겁 쌓인 죄업이라도 한생각에 다 녹일 수가 있다.
왜냐하면 그 죄업도 본래는 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컴컴한 동굴 속에 수억 년 동안 빛이 들지 않아 어둠이 있었다 하더라도

한번 빛이 들면 그것으로 어둠은 사라지고 마는 것과 같다.

빛이 어둠을 몰아내는 것은 그 어둠이 얼마나 오래되었느냐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32)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하고 물으면 당연하게 부모로부터 왔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겠다.

오히려 본래의 내가 부모의 몸을 빌어 태어난 것이다.

 

33)
본래의 나(참나, 주인공)는 내 육신을 형성시켜 놓고

깊숙이 안에 있으면서 삼천대천세계와 상응하며 진리로써 회전하고 있다.

그러면 그 나는 어디에 있는가?

팔도 다리도 머리도 그 어디도 아니다.

어느 곳에 있는 것이 아니면서도 깊숙이 안에 있으니 참으로 미묘한 것이 그인 것이다.

  

34)
글자는 백지 위에 쓰여진다.

학문도 그 무엇 위에서 이룩된다.
그러면 '그 무엇'은 어떤 것인가. 그것이 곧 진리이다.
그러므로 백지를 알지 못하고서는 아무리 찬란한 학문도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35)
중생은 노비문서에 매인 몸과 같다.

그 노비문서란 애착과 탐욕의 습이며, 중생은 그것을 즐기고 있다.

노비가 노비문서를 사랑한다면 아마 누구나 웃을 것이다.

그러나 애착과 탐욕을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웃는 사람은 적다.
 

36)
누구나 자가발전소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그 발전소를 쓰지 못하고 온갖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다.

그것은 물질에 눈이 어두워 자기 본래의 모습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기 본래의 모습은 온갖 고통을 떠나 청정할 뿐 아니라

무한한 능력이 샘솟는 자가발전소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자기 본래 모습--자가발전소를 믿고

모든 경계를 되돌려 그곳에 놓으라고 하는 것이다 

  

37)
주인공! 하면

그 안에 일체제불과 일체선망조상들이 다 포함되는 것이다.

그런데 왜 따로이 밖으로 부처를 찾고 조상을 부른단 말인가.

 

38)
과거의 모든 행위가 잠재의식이라는 카세트 테이프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가 현재 틀려나오는 것이 곧 당신이 겪는 이 세상 현실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고통을 겪든 즐거움을 느끼든

그것이 모두 당신 자신이 스스로 만든 것들이다.

그런데 바로 이 시점에서 풀려나오는

모든 과거의 결과들을 놓아 나간다면 그것들은 모두 공(空)이 된다.

바로 그것이 팔자, 업보, 운명을 넘어서는 방법인 것이며,

거기에서 자유인으로서의 창조적 인생이 열린다.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의 핵심인 것이다. 

 

39)
무언가 잘 되지 않을 때 생각을 잘 내야 한다.

이 어려움은 나를 다지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라.

그것이 참된 수행자의 마음가짐이다.

  

40)
한군데로 마음을 몰아 일심으로 가다보면

마침내 그것이 화산이 되어 터지는 때가 온다.

이것이 마음 공부의 비결이다.

  

 

- 한마음 선원

 

 

 

 

 

가슴 벅찬 행복이 손에 들어 와도

 


가슴 벅찬 행복이 손에 들어 와도
함께 나눌사람이 없으면 불행한 법입니다.
행복을 나누는 사람은
아무리 많아도 상관 없습니다.

만약에 당신에게
원하는 만큼의 재산이 손에 들어 온다면
그 재산을 누구와 함께 나누겠습니까?

만약에 당신에게
그토록 바라던 행복이 찾아 온다면
그 행복을 누구와 함께 나누겠습니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나누어 가질수 있는 상대 입니다.

아무리 막대한 재산이 손에 들어와도
아무리 가슴벅찬 행복이 손에 들어와도
함께 나눌수 있는 상대가 없다면
그렇게 허무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인생의 행복은 한 개인이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 주어지는 법입니다.

커다란 행복을 혼자서 차지 하기보다는
작은 행복을 여러 사람이 나누어 갖는 것이
훨씬 더 기쁘지 않을까요?

행복을 함께 나누는 사람은
아무리 많아도 상관 없습니다.
당신 옆에는 지금
행복을 나누어 가질 사람이 있나요?


ㅡ 내 영혼의 비타민 중에서 ㅡ

 

♬배경음악:아름다운그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