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만물과 화해하라.
오랜만에 나선 길이었습니다.
그제는 국도를 따라 진주로 부산으로 돌아 왔습니다.
차 유리창으로 즐비하게 비쳐 들어오는 아카시아 꽃들...
초등학교 시절 숙제과제로 아카시아 씨앗을 따 모아서
학교에 내는 일이 있었습니다.
아카시아는 속성으로 잘 자라고 잘 번지기 때문에,
그렇게 모아서 헐벗은 민둥산을 입히기 위하여
사방(砂防) 공사에 많이 쓰였던 것입니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 밭둑이나 온 산으로,
너무 번진 아카시아 때문에 골치 아픈 수종이 되었지만,
그래도 은은한 그 향기는 일품입니다.
이렇게 흔해빠진 아카시아 숲이 이루어지는 데는
나의 뜻은 아니었다고는 하나 그래도 일조를 했다고 여겨지는데,
정작 한 번도 아키시아 숲 아래에서
여유롭게 아키시아 향기에 젖어 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엊그제는 국도를 따라
만발한 아카시아 꽃바람이 되었습니다.
남강 변을 따라 진양호를 돌아서 광안교의 휘황찬란한 불빛까지
무위(無爲)와 인위(人爲)가 서로 어우러져 교차하는
아름다운 여행이었습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내립니다.
빨리 찾아온 더위로 도시는 벌써 덥다고 호들갑인
변덕심한 사람들도 있던데, 여기는 아직도 쌀쌀한 기운이
더 많은 5월입니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의 좁은 땅덩이 대한민국 안에서도
우리는 이렇게 서로
다른 환경과 느낌과 감정들을 갖고 살아갑니다.
산과 들이 다르고,
마을과 숲이 다르며, 도시와 농촌이 다릅니다.
남녀가 다르고, 노소가 다르며, 나아가 풀포기 하나까지도,
아니, 한그루 나뭇가지위의 잎들도 서로 같은 것은 없습니다.
서로 다르다고 여기는 여기서 시비(是非)는 출발합니다.
길고 짧고, 크고 작고, 넓고 좁고,
무겁고 가볍다는 등등의 분별에서
옳고 그름과 좋음과 싫음 등등의 감정이 생겨나고,
미움과 원망, 근심과 걱정은 그래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천지(天地)만물(萬物)과 화해(和諧)할 줄 아는
지혜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서로 어울리고 조화(造化)하는
이 자리에 자비(慈悲)와 사랑이 충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천삼라(天森羅) 지만상(地萬象), 일체의 존재는
진실로 실재(實在)하는 아(我=나)가 없기 때문에,
천지만물은 처음부터 서로 화해하지 않을 수 없고,
어울리고 조화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 공생(共生)하고,
공존(共存)하기를 꺼려하고, 나만을 앞세워 이익을 쫓아서 사는,
정말 못할 짓도 다하는 이기적 동물이 되어 있습니다.
좀 지나친 표현을 한 것인가요?
지금 우리의, 아니 여러분의 주변에서는 참으로 무시무시하고
끔직하고 섬뜩한 일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어나고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비행기폭파나 테러리스트 등등과 같은
실로 가공할 그런 섬뜩한 일이
아니더라도, 집을 뛰쳐나온 아이들이 얼마가 되며,
이유 되거나 말거나 일으키는 폭력들,
매춘이나 다름없는 온갖 타락된 윤리의식을 가지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고 있는 혼탁한 영혼의 질주...,
우리는, 여러분들은 이 모든 것에 대해서
전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은 것인가요?
우리는 다만 자기 자신의 행복에만, 자기 자신의 문제에만,
자기중심적인 행동에만 관심이 있을 뿐인가요?
이것은 사실 대단히 중요하고 진지한 물음이며,
놀라움이며, 몸부림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을 바라볼 때에,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나요?
이 모든 것과 우리들 자신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요?
고문이라.
세상의 모든 나라가 사람들을 기꺼이 고문하고 있는 겁니다.
내 아내가, 내 어머니가, 내 아들 딸들이 어떤 정보 때문에,
어떤 국가주의적 근거 때문에, 어떤 사회주의적 근거 때문에,
어떤 민주주의적 근거 때문에,
언제 어떻게 고문당할지 모릅니다.
그저 눈물만 흘리면 되는 겁니까?
이 모든 것에 대하여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으며,
더욱 냉소적이 되어가고, 체념만 하면 되는 것인가요?
자, 우리는 이 모든 일들을, 그저 자신의 발전이나,
행복이나, 자기중심적인 일들로만
여기고 살면 되는 그런 것인가요?
아마도 그렇게 하는 것이 보다 즐겁고,
우리의 에너지와 두뇌의 열량을
보다 적게 쓰고, 또 보다 도전적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머리는, 뇌는 비상한 능력과 에너지를 갖고 있습니다.
내과나 외과나, 기술,
컴퓨터들만 보더라도 그걸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저 무시무시한 모험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모험들,
그 모험들은 계속 되풀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데도 우리의 머리는, 뇌의 비상한 능력과 에너지를
저 무시무시한 모험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모험들,
그런 모험들에만 집중하고 있을 뿐, 지금 우리의,
여러분의 주변과 이웃들에게서 일어나고, 벌어지고 있는 문제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나의 문제만 아니면 모든 것이 괜찮아지는,
이런 것이 정말로 우리들이 잘 살고, 행복하고, 좋은 삶이고,
그런 것이겠습니까? 정말로 그런 겁니까?
우리가, 여러분들이 힘 있고,
가지고, 배우고, 알고 하는 모든 능력을
자기 자신의 이익의 수단으로만 여기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미움과 원망과 근심과 걱정들이 따라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러분들은 항상 천지(天地)만물(萬物)과 화해(和諧)하고
공생공존(共生共存)하려는
마음의 지혜가 간절하게 요구되는 것입니다.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나요?
이 사람의 이야기에 아무런 영양가도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또 여러분들 스스로가 생각하고 준비하고 도전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주변에서,
세계의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러한 불행들이
바로 우리들, 또 여러분들 자신의 몫으로 되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아키시아 향기가 싱그러운 5월, 이 5월도 이제 다가고 있습니다.
시간은 잠시도 머무르지 않습니다.
지나간 시간이 우리를 붙들어 둘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시간이 가기 전에 후회 없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자연을,
사람을, 더욱 사랑하기 위한 까닭입니다.
중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