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도는 그 성품이 본래 원만하고 청정하여 부족함이 없어
두루 하지만 계를 파한 탐욕심에는 잘 들려나지 않으므로
청정하고 지혜로운 자만이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르므로 현명한 자는 온갖 사소한 일로 번뇌하고 괴로워하는
세상일에 관심이 없어 자식이나 재물이나 나라도 원치 않고
항상 계율과 지혜의 도를 지켜 그릇된 부귀영화를 탐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세상 사람들은 부정한 방법이라 할지라도 재산을
늘려 부유하기를 원하고 권력과 명예와 자식으로 행복을
삼는가?
그것은 세상 사람들의 견해가 무명으로 전도돼 있기 때문이다.
누누이 밝히고 있지만, 본래의 도의 성품을 보지 못하고
무시이래로 무명 속에 빠져 무상함을 유상 함으로 보고 집착
하여 그 생멸 연속 현상에 속아서 살기 때문이다. 즉 눈으로는
항상 하지 않은 온갖 빛을 보고 좋다 나쁘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거나 하는 느낌을 내고 그 느낌에 따라 애증(愛憎)하고
탐착한다.
그 탐착을 성취하기 위해 사랑하고 미워하며 음행하고 도둑질
하고 거짓말하고 살생하게 된다. 이렇게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의 육근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촉과 법의 육진이 서로 짝이
되어 허망하게 작용하여 허망하게 애증에 탐착하므로 청정하고
원만한 본성을 잊어버리고 어리석은 범부로 살며 그 업이 다시
윤전을 받으므로 세세 생생 여기서 나기도 하고 저기서 나기도
하는 것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현재는 잠시도
머물지 않는다. 이것이 무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법
부들은 지나간 과거에 집착하고 회상하며 지나간 과거에 성취와
불성취에 대한 희비에 집착한다.
그때 이 말만 안 해서도 그와 헤어지는 일은 없었을 덴대...,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 저렇게 했더라면 하고 불성취를 성취로
만들어 보기 위해 가상으로 재구성해 보면서...,
또한, 과거의 어떤 모욕감이나 복수심에 집착하여 미래에 어떻게
갚아주겠다고 뜻을 품는다.
이렇게 무상함을 항상 함으로 착각하여 집착하므로 항상 계율과
지혜의 도를 지키지 못하고 그릇된 부귀를 탐하여 청정한 본심을
잊어버리고 오탁에 물들어 정도를 행하는 종교인이 되지 못하고
생사윤회에 빠져 고생하는 것이다.
마치 고향을 떠나 오랫동안 타향살이에 익숙한 사람이 고향이
어딘지를 잊어버리고 타향을 떠돌며 고생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