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믿는 사람의 말과 표정

2011. 6. 18. 23:07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화엄경·보현행원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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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믿는 사람의 말과 표정

 

 

광덕 스님

 

 

 

 

우리는 불행을 모르는, 어둠을 모르는, 부덕을 모르는, 무능을 모르는, 그런 절대적인 권능자입니다. 언제나 밝은 얼굴로 크고 밝은 웃음으로 크게 밝은 기쁨으로 항상 말하고 행동하는 그곳에 불법을 믿는 사람의 표정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밝음을 강조하는 것은 밝으면 기쁘니까, 밝으면 좋은 일이 오니까, 그래서 밝게 한다. 밝게 살면 서로가 좋으니까 밝게 한다. 그래서 밝게 살자.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본성이 본래 태양인 까닭에, 본래 진리인 까닭에, 본래 어두울 수없는 태양인 까닭에, 그 진리의 본모습대로 자기의 진실, 그대로를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밝게 사는 것이고, 그것은 기쁘게 사는 것이고, 그것이 희망으로 사는 것이고, 그것이 용기로 사는 것이고, 그것이 성취를 꿈꾸는 삶입니다. 우리의 표정이 원래 밝을 수밖에 없고, 기쁠 수밖에 없고, 환희에 넘치는 모습일 수밖에 없다 하는 이유를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해둬야 하겠습니다.

 

만인은 동일자다

우리 본성이 일체만법이 불리자성(不離自成)이라 우리 본성이 일체 만법과 더불어 여윈 바가 없다. 일체 만법이 나의 본성품이요, 나의 본성품이 일체 만법이라, 여기에서 “만인은 동일자다”하는 원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언제나 제가 항상 외치고 있는 이 동일자 의식, 이 동일자의식의 제고를 항상 주장하고, 이 동일자 의식의 개인적 사회적 역사적 구현을 항상 주장합니다. 그래서 평화, 번영을 주장합니다. 동일자, 본자성에서 우리는 동일자입니다. 너와 나는 비록 겉모습이 다르고, 각각 남남인 듯 보이고 너와 나는 이해를 달리하는 각각 남인 듯 보여도 실로 진리의 눈, 지혜의 눈으로 볼 것 같으면 그 본자성이 하나 .즉 한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모두는 한몸이고 서로 한 몸입니다. 어쩌면 이것을 어떤 특정한 사람이 본 세계관이라고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로 특별한 어떤 사람이 본 지견이 아닙니다. 우리들 만인이 실상입니다. 진실 존재의 원모습이며 동일자입니다.

 

만약 동일자인 것이 믿어지지 않으면 반야바라밀을 염하십시오. 반야바라밀을 일심으로 염하면 마침내 염하는 자와 염해지는 대상과 염하는 세계가 다 없어집니다. 없어지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염하는 자와 염해지는 대상과 염하는 세계가 보고 듣는 일체가 바로 염하는 자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혜능 조사가 말씀하신 일체만법이 불리자성이다. 일체만법이 자성을 여의지 않았다는 이 사실을 각자가 보고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서로는 남남인 듯 보이고, 서로를 싸늘하게 대하고 이익의 흥정으로만 서로 거래를 갖는 그러한 존재인 듯 싶어도 사실은 진리의 눈으로 보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같이 훈훈한 가슴을 맞대고, 따뜻한 입김이 서로 통하고, 서로 큰 원을 뜨거운 피를 함께 이루어 가는 서로의 공동의 생명입니다. 부부를 서로가 반신(半身)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반야바라밀의 눈으로 볼 때 일체가 동일신입니다. 내 손가락이 내 몸이요. 내 발이 내 몸이요, 내 코, 내 눈, 내 혀, 내 입, 내 몸의 부분 하나하나가 내 몸이고 남이 아니 듯이 모두가 남이 아니고, 대립자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 대해서 더욱 확신을 가져야 하고 오늘의 시대에는 이것이 더욱 강조되어야합니다.

 

밝음을 잃을 수 없는 진실한 우리의 생명

이 지혜스럽고 덕스럽고 능력에 넘치고 그리고 영원히 밝음을 잃을 수 없는 진실한 우리의 생명, 만인과 더불어 동일생명으로 존재하는 동일자로 존재하는 우리 인간들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이 사실을 깨끗이 몰각하고 너는 너, 나는 나, 너는 무능자, 너는 악당, 너는 불행이나 가져가라는 식으로 대립관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대립 가운데서 행원이 오느냐? 행복이 오느냐? 성취가 있느냐? 대립 가운데 서는 대립밖에 오는 것이 없습니다. 파괴밖에 오는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진실한 모습을 몰각한 상태에서는 지혜가 나올 리 없고 덕행이 나올 여지가 없습니다. 끊임없이 어둠과 불행과 재난과 우울한 일들만이 용솟음쳐 나오는 것입니다. 절대로 대립하지 말 것이며, 절대로 증오하지 말 것이며, 결코 미워하지 말 것입니다. “모두는 동일자며 동일 생명이다”하는 이 원리를 첫째로 알아야 하겠습니다. 한 가정에서 “한 가족이 한 몸이다. 한 가족이 동일자다.”이렇게 알 때는 그 가정이 따뜻하고 행복하고 번성하는 가정이 될 것입니다.

 

한 사업체의 노사간 모두가 “우리는 서로가 한몸이다. 우리는 동일자다.”라고 생각하고 이 동일자 의식이 뜨거워질 때 그 사업체, 그 기업체는 더욱더 번성하며 번창하는 사회에 크게 기여하는 기업이 될 것입니다. 한나라 백성에게 “서로가 동일 생명이다.”하는 이식이 솟아날 때 그 나라는 번창하고 .세계평화를 가꾸어가는 뛰어난 힘을 거기서 길러 낼 것입니다. 그렇지 않는 한 개인이든지. 사회이든. 어떤 기업체든. 어떤 단체이든. 어떤 국가이든 대립의식을 가지고는 망하는 것밖에 올 것이 없습니다. 파괴밖에 없습니다. 파괴, 멸망, 이것이 대립의식입니다. 왜냐하면 본래 서로가 동일자인데, 한 몸인데 함께 번성하고 함께 기뻐하고 함께 성공을 거둘 수 있는 동일 생명인데 그것을 외면하고 파괴하기 때문에 파괴 앞에는 파괴하는 결과밖에 오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반야바라밀 생명의 구체적 표현 -보현행원

반야바라밀 가르침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성공이나 한 가정의 행복에 그치지 아니하고, 우리 사회와 우리나라와 우리 세계, 온 인류, 온 역사를 빛낼 위대한 가르침이라는 사실을 다시 깊이 생각하십시다. 하루하루 이 반야바라밀 생명의 굳센 광명과 굳센 지혜와 굳센 용기와 힘을 더욱 크게 믿고 행해서 바로 이 땅에 번영과 평화와 행복을 가득 심는 불자가 되십시오.

 

보현행원, 이것이 바로 반야바라밀 생명의 구체적인 표현입니다. 우선 맨 처음에 나오는 보현행원의 예경, 예경 이 한 가지만 바르게 배우면 바로 지금 말씀드린 반야바라밀 생명을 진실 되게 사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이 예경 하나가 이웃을 찬탄하게 되고, 만인을 공양하게 되고, 일체 제불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강조할 것은 언어의 활용입니다.

 

‘보현행자의 서원’ 찬양분에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말이란 단순히 목의 성대가 진동해 나와 일정한 법칙대로 소리가 나서 우리의 공동의 약속에 의해서 의미해석을 하는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말은 이것이 자기 생명깊이 깃든 진리의 파동입니다. 그런 까닭에 신념이 담겨진 말은 성취력을 지닙니다. 말은 진리의 직접파동입니다. 말은 진리의 직접파동으로서 말은 성취력을 가집니다. 신념이 담긴 말일수록 성취력이 강하고, 신념이 없는 가벼운 말도 역시 성취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라밀 서원을 수행하는 불자들은 각자가 소원을 가지고. 희망을 가지고. 기원을 가지고 수행하는 사람이나 또 그밖에 어떤 사람이든 말을 중요시해야합니다. 말은 바로 끝나는 그러한 공허한 것이 아닙니다. 말은 성취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말은 바로 내 마음 깊이에 깃든 진리 자체의 파동과 연결되기 때문에 진리의 파동이 내 환경을 만듭니다.

 

‘나는 불행하다. 내 사업이 캄캄하다. 앞날이 어둡다.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이렇게 불안한 상태에 있을 때 그 불안한 생각을 가지고 그것을 인정하고 있는 한, 그것으로부터 탈피하지 않는 한, 불행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도 끊임없이 그 말을 바꾸어야합니다.

 

그 불행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자기가 하고 있는 이 사업이 일시 지나가는 구름에 가리웠을 뿐 구름은 마침내 사라진다는 것을 확신하고 그 배후에는 “밝은 태양이 빛나고 있다. 끊임없이 부처님의 진리공덕이 빛나고 있다.” 하는 것을 생각하며 그 맑은 진리에 의해서 자기의 생각하는 것이 밝게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을 마음속에서 깊이 알아야합니다.

 

말이 가지는 창조적 힘

그리고 말을 하더라도 “요즘 어떻게 지내나?”할 때 “형편없네.”하고 부정적 비관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거기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그것보다도 “지금약간 어렵지마는 잘 되게 돼있어.”하고 낙관적 긍적적 용어를 쓰고, 그렇게 생각을 하고, 그렇게 믿고 움직이는 사람에게는 그러한 긍정의 상태가 앞에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이 단순한 말로 끝나지 않고, 말이 창조의 힘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생각한다면 말은 더욱 중요합니다. 마음속깊이 반야바라밀 부처님 진리광명이 빛나고 있는 것을 생각하고, 자기 자신 가운데서 그러한 사실을 마음의 눈으로 지켜보며 반야바라밀을 일심 염송합시다.

 

염송할 때와 관(觀)할 때에 어떻게 하느냐 하면 염송할 때 염송만하고 그 외에 관할 때에는 관을 하는 것입니다. 관이라고 하면 다른 것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지켜보고 마음의 눈으로 확신하는 것을 관이라 합니다. 말이 단순한 빈말로 끝나지 않고 자기 환경을 만들어 내고. 자기운명을 만들어 내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서 언제든지 밝고 긍정적이며, 적극적이고 성취를 가져오는 그러한 긍정적인 말, 밝은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을 거듭 말씀을 드립니다. 또 한 가지 바라밀 행자의 필수적인 지혜행이 있습니다.

 

그것은 긍정의 신념에 따른 성취, 긍정의 언어입니다. 반야바라밀의 현전하는 무량공덕을 깊이 믿고 서원하는 바가 원만성취되고 있음을 마음의 눈으로 관하며, 바라밀 기원이 성취하고 있음을 생각과 말로 긍정하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믿음과 관과 확정적 선언이 환경을 바꾸고 국토를 원만히 실현하는 창조적 결실을 가져오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말은 어둡고 불행스럽고, 고난스럽고, 답답한 상태에 빠져 있을수록 더욱 밝은 말, 밝은 마음, 밝은 생각을 지킬 것을 노력하고, 만약 그것이 어려우면 반야바라밀을 끊임없이 염하고 또는 반야심경을 일심독송해서 자기 마음 가운데서 어둠을 제거하고 불행을 제거하고 우울한 것을 제거해야 합니다.

 

마음이 일체를 이룬다

“마음이 일체를 이룬다. 마음이 이룬 대로 국토가 이루어지고, 마음이 청정한 대로 국토가 청정해진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을 생각한다면 바로 생각을 지속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되풀이 말하지만 말은 능동적이며 적극적인 용어, 밝고 성취하는 용어를 갖도록 특별히 유의해야 합니다. 그래서 올해는 결코 우울한 얼굴, 어두운 말, 실패를 가져오는 것 같은 답답한 생각, 그 모두를 버리고 태양같이 밝은 얼굴, 밝은 웃음, 밝은 말, 밝은 얼굴, 밝은 웃음, 밝은 말, 밝은 행동으로써 한 해를 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형제 여러분은 모두가 이미 그런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마는 오늘 마침 이 부분을 다시 강조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부처님의 크신 위덕, 부처님의 절대 위신력이 함께하고 있음을 확신하고 크신 성취력을 기약합니다.

 

 

 

좋은 친구가 되라 / 무불스님

 

 

인간은 육체의 요구로 살아가는 축생이 아니라.

정신의 요구로 살아가는 지성의 동물이다.

 

먹고 입고 잠자는 곳에 목을 매 살아 가는가.?

무엇을 생각 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은 확연이 다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존재인가.?

철학은 지식이고 종교는 생명임을 먼저 간파 할줄 알아야 한다.

 

어떤 학승이 마조 도일 스님에게 물었다.

불법이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너 눈앞에 있느니라.

눈앞에 있다면 보이지 않은 것은 무슨 까닭 입니까.?

 

너는 너라는 것이 있어서 못 보느니라.!

 

그렇다.

모두가 내라는 것 때문에 고통과 괴로움  불만 비교로 인해 집착이 따른다.

내가 시어머니라는 아상 때문에 늘 며느리가 불만이다.

나라는 자존심 때문에 친구와 동료 명예 직분으로 인해 다투며 원수간이 된다.

그 왜? 큰 시비가 있든가.?

 

불교 공부는 비우는 공부다

조실스님 방 입구나 총림의 불이문 입구에 방하착 이란 문구가 그렇다.

자기의 식견이나 알음 알이를 모두 놓아 버리고 들어 오라는 말씀이다.

 

높은산 흰구름이 자유로운 것은 무심이기 때문이다.

꽃이 떨어저 새 잎이 돋아나는 푸르름도 무심이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길은 도반과 함께가는 바라밀의 길이다.

누구나 행복하고 즐겁고 보람된 인생길을 가고 싶어하니 그 길이 바라밀 길이다.

인생은 도반과 함께가는 나그네이다.

인생은 벗과 더불어 동료와 함께 끼리끼리 맞추어 살아간다.

 

벗에는 꽃과 같은 벗, 저울대 같은 벗(몸무게 다는 저울)

산과 같은 벗. 땅과 같은 벗이 있다.

 

꽃과 같은 벗은 향기가 다하고 잎이 시들면 버리는 벗이다.

저울대 같은 벗은 직위가 올라가면 찾아오고

직위가 떨어지면 찾지 않은 벗이다.

산과 같은 벗은 새나 짐승이 산을 의지해서 살듯이

감싸주는 안식처 같은 벗이다.

땅과 같은 벗은 온갓 곡식을 다 성장 시키며 좋은 열매를 얻기위해

희노애락을 같이 나누는 벗이다.

 

인생은 유턴되지 않은 직선 길이다.

좌회전 할까.? 우회전 할까.?

가로질러 저혼자만 빨리 가려는 약삭 빠른 생각이 사고를  부른다.

정직하게 직진하며 살아갈 일이다.

 

다리를 건너 가는데.

다리는 흘러가고 물은 그대로 제자리 인가.?

 

전도몽상"

"정신 차려 인생을 바로 보라".

 

 

*스님의 쾌유를 빕니다 _()()()_

 

 

나훈아;홍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