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법연화경 제목해석
妙法蓮華經 題目解釋
온능(溫陵) 개원련사(開元蓮寺) 비구(比丘) 계환(戒環)
실상(實相) 묘법(妙法)을 연꽃(蓮華)에다 교묘(巧妙)히 비유(譬喩) 했으니,
안으로는 일심(一心)을 곧 바로 가리키고(直指)
밖으로는 온갖 경계(境界)에 두루 통(通)한다.
<연꽃은> 바야흐로 꽃이 핌과 동시에 열매가 맺고
항상 물에 있으면서도 젖지 아니하니(處梁常淨)
이는 연꽃(蓮華)의 참 모습(實相)이요,
<마음 속에는> 중생(衆生)과 부처(佛)가 본래(本來)부터 있기 때문에
아무리 윤회(輪廻)를 거듭할지라도 변하여 달라지지 않으니 이는 마음의 실상이다.
온갖 형상은 일시적으로 나타난 허망한 것에 불과하지만
그 정수(精髓)는 진실 하니, 이는 경계(境界)의 실상이다.
이렇게 마음(心)과 경계(境界)와 모든 것(萬類)에 두루 통(通)하므로 이를 법(法)이라 하고,
정교(精巧)하고 조악(粗惡)함이 모두 한뜻이므로
평범한 사람(凡夫)과 성인(聖人)과는 근원(根源)이 하나(一) 이다.
<부처님은> 비록 여러 가지의 세속적인 진리(世諦)로 설하시지만
- 모든 부처님은 두 가지의 진리(二諦)로 중생을 위해 설법을 하시는데,
하나는 세속적인 진리(世俗諦)요, 또 하나는 근원적이며 절대적인 깊고 묘한 이치(第一義體)이다.
그러나 이는 모두가 진리를 설하시므로 가르침을 듣고 깨닫는다.
- 그것은 모두가 진실하니, 진리(眞理)라는 것은 말이나 이야기(言詞)로 나타내 보일 수 없고
자세히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묘(妙)라고 하셨다.
<중생이> 육도(六途) 윤회(輪廻)를 면치 못하는 것도 이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요,
모든 부처님이 닦아 깨달았다는 것도 이 진리를 깨달았다는 것이다.
또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 8만 4천의 가르침을 설하신 것도
모두 이 진리를 알리기 위한 교묘한 수단(方)이다.
그러므로 중생이 번뇌가 많아(後重) 근기(根器)가 순수(純粹)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처님>은 우선 세 가지의 길(三乘)을 설해 일시적으로 인도하셨으니,
근기가 낮은 사람에게 설하신 것이 바로 권대승(權大乘)으로써 진실한 가르침인 실대승(實大乘)이 아니다.
소승(小乘)의 가르침에 머물러 묘(妙)를 나타내지 못하다가
마음이 서로 그 본질을 믿게 됨에 이르자 성기고
거칠은 소승을 버리고 실상을 나타내 보여 삼승을 모아
일승(一乘)으로 가게 하니 묘(大乘)하여 거칠음(小乘)이 없다.
이것으로 모든 부처님께서 능히 하실 일을 마치셨다.
그러나 이른바 묘법(妙法)이란 소승(小乘)을 버리고 대승(大乘)을 취한 것이 아니고
소승으로 곧 대승을 나타낸 것이며
일승(一乘)이란 삼승(三乘)을 떠난 일승이 아니라 셋을 모아 하나로 돌아가게 한 것이다.
소승에 입각하여 대승을 나타낸 것은
연꽃이 물에 있으면서도 물에 젖지 않음과 같고
삼승을 모아 일승으로 되돌아가게 함은
연(蓮)이, 꽃이 핌과 동시에열매가 맺는 것과 같이
가르침(法)과 비유(譬喩)가 둘이 나란히 나타나며
이름과 실상이 아울러 나타나기 때문에 묘법연화(妙法蓮華)라 명명(命名)한 것이다.
이 진리를 깨달으려면 반드시 근본지(根本智)를 체(體)로 삼고
육묘행(六妙行)을 용(用)으로 삼아야 하는 바
지혜(智慧)를 비유한 것이 연(蓮)이요, 행(行)을 비유한 것이 꽃(華)이니
지(智)와 행(行)을 둘 다 온전히 하여야만 마침내 묘(妙)를 다투게 되는 까닭에
경문(經文)의 첫 부분(部分)에 미간 백호(眉間白毫)의 광명(光明)을
동방(東方)으로 일만 팔천국토(1万8千國土)를 비추심으로써
지혜(智慧)와 경계(境界)를 완전하게 나타내시고
사법성취(4法成就)의 법문(法門)으로 결론(結論) 지음으로써 행문(行門)을 갖추어 마치셨다.
정종분(正宗分) 첫 부분에 있는 삼주(3周)의 설법은 모두 체(體)를 밝히신 것이요,
촉루품(囑累品)후의 6품은 용(用)을 밝히심이며
중간법문(中間法門)이 앞과 뒤를 연결(連結)하면서
법륜(法輪)을 온전히 굴리시어 지(智)와 행(行)을 크게 나타내시고
또 체(體)와 용(用 )도 함께 밝히시어 실상(實相)의 대전(大全)으로 삼으셨다.
부처님께선 깨달음의 문(門)을 열어 참된 모범(模範)을 보이시고
중생으로 하여금 지혜종자(智慧種子)를 싹트게(發明)하여 과덕(果德)을 성취케 하였으니,
만일 이를 듣는 사람은 성불(成佛)치 못할 리 없고
깨친이는 모두 수기(授記)를 받을 것이며
낱낱의 일(事)들과 낱낱의 물체(物體)가 묘법(妙法)이 없는 까닭이다.
이로써 미루어 보건대 이 실상(實相)은
산하대지(山河大地)와 밝음(明) 어두움(暗)<물질적 현상(物質的現象)인> 색(色)과
<정신적 현상(精神的現象)인> 공(空)에 이르기까지라도
두루 충만(充滿)치 않은 곳이 없으니,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인> 두두물물(頭頭物物)이
곧 부처님의 지혜(智慧)의 몸(體)이며
행(行)하는 걸음걸음이 바로 보살(菩薩)의 행문(行門)이므로,
이 법(法)에 의해 마음을 밝히면,
그 몸으로써 묘(妙)를 나타내게 되는 바
부처님의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을, 이 한(一) 제목(題目)에서 모두 밝히셨다 하겠다.
나무묘법연화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