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의 일곱가지 비유

2010. 7. 19. 21:4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법화경·관세음보문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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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의 일곱가지 비유

 

“三乘은 방편이요, 一佛乘만이 진실하다”

 
 

사람들은 보통 수행을 하려면 세간을 떠나야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법화경〉에 의하면 그렇지가 않다. 세간 속에서도 얼마든지 수행은 가능하다. 왜 그런가? 그것은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일대사인연은 무엇인가? 우리 모두에게 불지견(佛知見)을 열어보이고 깨달아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그렇다면, 불지견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부처로서의 지견, 즉 깨달음의 지견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서, 나도 이미 부처님과 같은 깨달음의 성품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직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이제부터 닦아나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이미 갖추고 있음을 확신하고 무한대로 써나가면 될 따름이다. 이것이야말로 삼승(三乘)은 방편이요, 일불승(一佛乘)만이 진실이라고 하는 ‘방편품’의 핵심이다. 〈법화경〉의 일곱 가지 비유, 즉 법화 7유는 모두 이러한 내용을 부연설명해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본래 구족한 불성 확신하고

깨달음의 가능성 닦아가야

첫 번째, ‘불난 집의 비유’는 불타는 집에서 놀이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아이들을 구해내기 위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온갖 수레를 준다고 해서 밖으로 끌어내지만, 모든 아이들에게 한결 같이 가장 훌륭한 수레를 주게 된다. 이것은 처음에는 소원성취나 마음의 평화 등을 얻기 위해 불도에 입문하지만 결국은 모두가 부처님 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가난한 아들의 비유’는 자신이 본래 장자의 아들임에도 이를 모르고 궁핍한 거지생활을 하는 사나이를 다시 집안으로 끌어들여 가업을 잇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도 본래 부처님의 아들로서 가업을 잇는다고 하는 것이다.

세 번째, ‘초목의 비유’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저 단 비와 같이 한 맛이지만, 나무는 나무대로 풀은 풀대로 각각 빗물을 받아들이듯이 중생들도 근기에 따라 부처님 가르침을 다르게 받아들인다고 하는 것이다. 결국에는 한 맛인 일불승에 돌아간다고 하는 것이다.

네 번째, ‘가짜 도성의 비유’ 역시 성불의 길에 지레 겁먹는 이들을 위해서 방편으로 중간에 가짜 도성을 만들어 용기와 희망을 준다고 하는 것이다.

다섯 번째, ‘옷 속 보석의 비유’는 자기 옷 속에 천금이나 되는 보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궁핍하기 짝이 없는 생활을 하는 자와 마찬가지로, 우리 중생들이 스스로 불성을 이미 간직하고 있음에도 다만 중생지견(衆生知見)에 머물러 있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여섯 번째, ‘상투보석의 비유’는 전륜성왕이 오직 자신의 후계자에게만 상투 속의 단 하나 밖에 없는 보석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부처님께서 우리를 후계자로 생각하고 모든 가르침을 베푼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의사 아들의 비유’ 또한 뛰어난 의사인 아버지만 믿고 약을 복용하지 않는 아들들을 위해서 짐짓 다른 나라에 가서 머물며 죽었다는 말을 전해 약을 복용토록 하는 것처럼, 부처님께서도 열반의 모습을 보여주시지만 여래의 수량은 본래 한량이 없다는 것이다. 여래께서는 이미 오래 전에 성불하셨으며, 다만 중생제도를 위해서 이 땅에 오시고 가시는 모습을 보이실 따름이지 실로 오고감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다만 우리 모두를 부처님으로 만들고자 오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일대사인연이다.

 
 
- 월호스님의 불교란 무엇인가 / 불교신문 -
 

[道 명상음악] 꽃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