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사 박경철의 불교 이야기

2011. 8. 31. 21:48일반/금융·경제·사회

728x90

 

 

 

 

 

있잖아요…“스님과 보리밥도 먹고 좋은 가르침도 받아요”

시골의사 박경철 / 한국사회의 아이콘…대한민국 청춘멘토

 

불교신문 2011.08.22 10:09:22 하정은 기자 김형주 기자 

 

 

 

 

 

 

시골의사 박경철의 서글서글한 웃음은 편안하다. 2년여전 건강을 위해 20kg을 감량했다. 인터넷에 ‘박경철 다이어트’를 검색하면 과학적인 다이어트법이 공개돼 있다.

 

 

 

 

시골의사 박경철(안동 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 48)의 이메일 아이디는 ‘donodonsu’. 발음하면 ‘돈오돈수’다. 사연도 다르고 아픔도 제각각인 숱한 환자를 치유하고, 대한민국 청년을 대상으로 전국 순회강연을 펼치면서 이 시대 ‘아픈 청춘’을 위로하는 그에게, ‘돈오돈수’는 깨치고 닦는 마음자리에 새겨진 ‘희망 주소’다. 종교적 이치와 거리가 있지만, 그에게 불교는 어떤 수술이나 약보다 탁월한 효능을 발휘한다.

 

 

불교 자비사상…이 시대 아픈 청춘 병든 사회 껴안고 치유할 수 있어

 

불자는 아니다. 신도증과 수계이력이 없을 뿐, 시골의사 박경철의 가치관과 사고방식 저변에는 불교적 사유체계가 넉넉하게 깔려 있다. 그래서 불자보다 더 불자답다.

 

지난 10일 청주 문화예술의전당서 열린 청춘콘서트에서 안철수 서울대 교수와 무대에 오른 박 원장을 처음 봤고, 다음날 서울 여의도의 한 찻집에서 두 번째로 만나 인터뷰를 했다.

 

 

● 의과대 시절 금강경 대승기신론 섭렵

 

박경철 원장은 의과대학 시절부터 혼자서 불교를 공부했다. 지적 호기심이 유독 많은데다 인문학과 동양철학에 관심이 쏠리다보니 불교사상에 매료됐다. 의학 심리학을 연구할 무렵, 불교의 유식사상에 눈떴다. <금강경>과 <대승기신론>도 그 때 만났다.

 

“오직 마음뿐이며, 마음 밖에는 달리 대상이 있지 않다는 이치에 이끌렸습니다. 의학 역시 고장난 육체만 다뤄서는 완벽한 치유가 불가능합니다. 의사든 환자든 마음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불교공부를 할수록 알쏭달쏭한 궁금증도 쌓일 터, 박 원장의 가려운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대상은 단연 스님들이다.

 

어떤 스님들? 안동에서 가까운 문경 대승사 선방 스님들이다. “이거 말씀드리면 안되는데…”하면서 박 원장은 다 말했다. “선방 수좌 스님들이 안거 때마다 수행정진하느라 오랜 시간 앉아 계시다보면 항문질환이 생기는 확률이 높거든요. 우리 병원에서 가까운 문경 대승사 스님 몇 분이 찾아오셨는데, 제가 정성을 다해 치료해드렸더니, 입소문이 나서 이후로 이 근처 많은 스님들이 오시더군요.”

 

기자가 웃음을 애써 참을 무렵 박 원장은 말을 이어갔다. “그런 인연이라 얼마나 금방 친해지는지 몰라요. 스님들 다 좋으시잖아요.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니까, 그동안 몰랐던 불교이야기도 허물없이 여쭙게 되고, 스님들과 공양도 함께 하면서 좋은 가르침을 많이 받았지요.”

 

 

● 대승사 봉정사 스님들과 친분 두터워

 

안동 봉정사의 한 젊은 스님과의 남다른 인연은 한때 인터넷을 달구기도 했다. 박 원장과 연배가 비슷했던 그 스님을 그는 “가끔은 친구처럼 혹은 정신적 서포터스로 참 정겹게 지냈다”고 소개했다.

 

“주말이면 스님을 따라서 좋은 글씨가 있는 곳을 찾아서 탁본을 배우기도 하고, 유식이나 화엄과 같은 난해한 불교이론을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기도 했죠. 토론이라기보다 사사(師事)란 표현이 맞겠네요. 불교철학은 물론 스트레스 안받고 즐기는 다도, 기분나쁜 사람 보고도 기분좋게 웃는 법도 배웠고 참선에 대한 지도도 받았답니다.”

 

박 원장은 그 스님이 3년의 인연을 끝으로 봉정사를 떠나는 날, 스님과 보리밥 뷔페식당에서 3500원짜리 뷔페를 먹고 작별인사를 나눴다고 회고했다.

 

 

● 법륜스님 ‘3시간 법문’ 듣고 자신 돌아봐

 

시골의사로 살면서 스님들과 도탑게 든 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평화재단 이사장 법륜스님을 만나면서 불연(佛緣)의 볼륨은 점점 두께를 더해갔다. 2009년 평화재단측 요청으로 대중강연을 했던 박 원장에게, 평화재단은 그 해 연말 앵콜강연을 부탁했다.

 

“첫 강연 때 다소 긴장은 했지만 강연 내내 기분이 좋았어요. 저혼자 좋았던 것만은 아니었으니 앵콜이 왔겠지요. 연말이라 상당히 바빴지만 앵콜 요청에 저는 조건을 달았지요. 밥 한번 사주면 하겠다고. 당일날 강연이 저녁 8시부턴데 오후 5시부터 법륜스님을 만나 3시간동안 저녁을 먹으면서 법문 아닌 법문을 듣게 됐죠.”

 

박 원장은 그날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법륜스님의 이 한마디였다. “당신은 그토록 많은 이들을 위해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하루 중에서 얼마큼이나 주인으로 살고 있는가?” “가슴을 강하게 두드리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덕담이야 흔하지만, 그 순간 심장이 뛰면서 나를 다시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박 원장은 그 날 들은 법륜스님의 ‘120분 법문’을 스마트폰에 녹취해서 그날 밤 부인에게 들려줬고, 지금도 아끼는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로 보내주곤 한단다. 제일 가까운 도반이나 다름없는 안철수 교수에게도 전했고, 이후 평화재단의 ‘청춘콘서트’의 태동으로 인연은 이어졌다.

 

어렵사리 입시 관문을 뚫고 대학에 들어가봤자 또다시 취업의 난관에 부딪쳐 희망을 잃고 좌절과 소외감 속에 허덕이는 이 시대 젊은 청춘들에게 ‘마음 처방’을 내려주는 청춘콘서트. 의사 신분으로 라디오 방송하랴 강연 다니랴 연예인처럼 바쁜 나날이지만, “그저 나의 지혜가 필요한 세상을 찾아가 도움을 주고 싶을 뿐”이라며 흐뭇해했다.

 

지난 10일 청주서 열린 청춘콘서트서도 그는 어김없이 희망을 심어줬다. “무엇이든지 존재 이유가 있습니다. 존재의 목적에 충실하면 문제가 없죠. 학교는 가르치고 키우는 역할을 다해야 하고, 군대는 국민을 보호해야 하고, 법관은 정의를, 의사는 인간의 존엄을 생각하면 아무런 탈이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가진 수많은 재능을 몽땅 무시하고 공부 잘하는 사람만 뽑아내는 사회이다보니 문제를 일으키는 거죠. 박지성을 아이스링크에 데려다놓고 넌 왜 김연아처럼 못하느냐고 다그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요?”

 

박 원장은 한국사회의 본질적 문제를 ‘불공정 구조’에서 찾았다. “불공정 구조의 핵심에는 재벌이라는 상징적 키워드가 깔려 있습니다. 재벌기업을 보면 큰 딸이 광고회사를 차려 순식간에 국내 1,2위 광고회사로 성장시키고 돈을 법니다. 그 과정에 광고를 꿈꾸는 젊은 청년들의 기회는 사라지고 말죠. 둘째딸이 캐피탈 회사를, 셋째 아들은 탁송사업으로 전체사업을 독점하면 중소기업이나 벤처는 희망없이 주저앉을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 정주영 이병철이 주도하는 재벌사회에서 이제 그들의 자녀와 일가친척들이 죄다 아버지와 할아버지처럼 재벌이 되고야 말겠다는 것인데, 그런 백이 없는 이들은 큰 덩어리의 일원이 되고자 하고, 재벌은 스펙을 순위로 그들을 줄세우는 셈이죠. 이것이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거대한 독점의 구조입니다.”

 

 

● 젊은 청년에 희망 심어주는 ‘진짜 의사’

 

박 원장은 청년들의 태도와 가치관에도 일침을 가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부조리한 사회 때문에 이 지경이 됐다고들 합니다. 최선이란 말을 완벽하게 표현한 분은 소설가 조정래 선생님입니다. ‘이 순간 나 자신의 노력이 스스로를 감동시킬 수 있을 때 쓸 수 있는 말이 최선이다.’ 돌아보죠. 내 노력이 나를 감동시킨 적이 얼마나 있나요? 내가 잘할 자신이 없는 걸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위선을 떨지는 않았는지 자문해 봐야 합니다. 막연히 하고싶은 거랑 실제로 해서 잘할 수 있는 건 다릅니다. 고민만 하지 말고 시간을 내서 다양하게 경험하고 도전해 보십시오.”

 

시골의사 박경철은 ‘대한민국 청춘멘토’로 손색이 없다. 그런 그의 멘토는 누구일까. 그는 일평생 평범한 경찰공무원으로 살다간 아버지를 들었다. 1986년 아시안게임이 열리던 해,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대구를 방문했다. 대통령이 지방 순시를 하며 묵는 장소는 도지사 관저였고, 당시 관저 주변은 삼엄한 경비가 이뤄졌다.

 

말단 경찰공무원이었던 박 원장의 부친은 대통령이 묵는 도지사 관저 주변에서 사흘밤에 걸쳐 경비 근무를 서야 했다. 대통령은 그렇게 하루를 묵고 떠났지만, 거기에 동원되어 며칠 밤을 새웠던 아버지는 과로로 쓰러졌고, 뇌졸중으로 3일만에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가 떠나간 뒤, 박 원장의 삶은 혹독했다. 어머니가 초인적인 희생으로 홀로 가정을 꾸려나가며 3남매를 건사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종합병원 월급으로는 턱도 없었고 개업을 준비할 자금도 없었고 돈을 빌리기는커녕 빚을 갚아야 할 처지였다.

 

그때 죽마고우와 같은 두 친구가 적금을 깨고 심지어 자신의 의사면허증을 담보로 빌린 돈을 보태줘 어렵사리 병원을 개원했다. 첫날 20명의 환자. 박 원장은 “그때 나를 찾는 환자들은 나를 살리는 분이었다”며 “의사인 내가 그분들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이 허름한 병원에 나를 믿고 찾아온 그 분들이 나를 살리는 셈”이었다고 회고했다.

 

의사라는 ‘사(師)’자 신분에다 전 국민들의 신뢰를 받는 경제평론가인데다, 한국사회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한 시골의사 박경철의 50여년 삶도 그리 녹록치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제 고난과 아픔을 딛고 삶을 진단하고 사회를 치유하는 ‘진정한 의사’로 우리 앞에 당당히 서 있다. 나혼자 가는 천걸음보다 천명이 함께 가는 한걸음의 소중함을 그는 입버릇처럼 말한다.

 

내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박 원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뉴스도 들린다. “남에게 권력을 행사하지 않고, ‘갑’에게 종속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는 그의 바람이, 가랑비에 옷 젖듯 천천히, 하지만 깊숙이 실현되길 바랄 뿐이다.

 

 

 

지난 10일 청주 문화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청춘콘서트에서, 박경철 원장(사진 맨 왼쪽)과 안철수 교수(맨 오른쪽)가 이 날 게스트로 나온 인명진 목사와 함께 ‘젊은 그대’를 열창하고 있다. 김형주 기자

 

 

■ 박경철은?

 

영남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과 대전의 종합병원에서 외과의사로 근무했다. 어릴적 고향친구와, 마흔 전에 고향에 내려가 병원을 열자는 약속대로 지금은 안동에서 ‘신세계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현직 의사보다 ‘시골의사’라는 필명으로 더 많이 알려진 경제평론가이기도 하다.

 

고향에서 의사 

인기 라디오 DJ  

신뢰받는 경제평론가

 

의사로서 병원에서 겪은 사연을 담은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에 이어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쟁쟁한 글쟁이들을 제끼고 여러 매체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한 분야의 스페셜리스트가 되기도 힘든데 그는 외과의사, 칼럼니스트, 경제전문가, 방송인, 작가 등 그야말로 팔방미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하고 있는 다양한 일 중 하나만 택하라면 당연히 외과의사를 하겠다고 할 만큼, ‘의사’로서 삶에 애착을 갖고 있다. 지난 2007년에 발간된 <착한 인생, 당신에게 배웁니다>는 시골의사로 살아가면서 만난 ‘힘들고 고달프지만, 착한 인생들’의 진솔한 삶을 담아 최근 23쇄까지 찍어내면서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그림자와 메아리

 

 

 

 

深觀能禮所禮 皆從眞性緣起
(심관능례소례가 개종진성연기하고)

深信感應不虛 影響相從
(심신감응불허하야 영향상종이라)

 


예배 하는 자신과 예배 받는 부처가 본래 둘이 아니요

모두 참된 성품으로 부터 인연따라 일어난 줄을 깊이 관찰하라.

 

중생과 부처간에  서로  감응함이  

물체에 그림자 따르고 소리에 메아리가 좇아 오는 것과 같음을

깊이 믿을지어다.

 

 

 

- 초발심 자경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