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9. 23. 23:49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가을 노래 / 이해인 님
가을엔 물이 되고 싶어요 소리를 내면 비어 오는 사랑한다는 말을 흐르며 속삭이는 물이 되고 싶어요
가을엔 바람이고 싶어요 서걱이는 풀잎의 의미를 쓰다듬다
깔깔대는 꽃 웃음에 취해도 보는 연한 바람으로 살고 싶어요
가을엔 풀벌레이고 싶어요 별빛을 등에 업고 푸른 목청 뽑아 노래하는 숨은 풀벌레로 살고 싶어요
가을엔 감이 되고 싶어요 가지 끝에 매달린 그리움 익혀 당신의 것으로 바쳐 드리는 불을 먹은 감이 되고 싶어요
나 그대에게 고운 향기가 되리라 / 이해인 님
초승달이 노니는 호수로 사랑하는 이여! 함께 가자
찰랑이는 물결위에 사무쳤던 그리움 던져두고 꽃내음 번져오는 전원의 초록에 조그만 초가 짓고 호롱불 밝혀 사랑꽃을 피워보자구나
거기 고요히 평안의 날개를 펴고 동이 트는 아침 햇살타고 울어주는 방울새 노래 기쁨의 이슬로 내리는 소리를 듣자구나
사랑하는 이여! 일어나 함께 가자
착한 마음 한아름 가득 안고서 나 그대에게 황혼의 아름다운 만추의 날까지 빛나는 가을의 고운 향기가 되리라
낙엽 / 이해인 님
낙엽은 나에게 살아 있는 고마움을 새롭게 해주고,
주어진 시간들을 얼마나 알뜰하게 써야 할지 깨우쳐준다.
낙엽은 나에게 날마다 죽음을 예비하며 살라고 넌지시 일러준다.
이승의 큰 가지 끝에서 내가 한 장 낙엽으로 떨어져 누울 날은 언제일까 헤아려 보게 한다.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내 사랑의 나무에서 날마다 조금씩 떨어져나가는 나의 시간들을 좀 더 의식하고 살아야겠다
내일이면 오늘 되는 우리의 내일/이해인 님
꽃이 진 자리마다 열매가 익어가네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도 익어가네
익어가는 날들은 행복하여라
말이 필요 없는 조용한 기도 가을엔 너도 나도 익어서 사랑이 되네
- <익어가는 가을> 중에서
낙엽빛깔 닮은 커피 / 이해인 님
하늘이 맑으니 바람도 맑고 내 마음도 맑습니다
오랜 세월 사랑으로 잘 익은 그대의 목소리가 노래로 펼쳐지고 들꽃으로 피어나는 가을
한잎 두잎 나뭇잎이 물들어 떨어질 때마다 그대를 향한 나의 그리움도 한잎 두잎 익어서 떨어집니다
사랑하는 이여 내 마음의 가을 숲으로 어서 조용히 웃으며 걸어 오십시오
낙엽빛깔 닮은 커피 한잔 마시면서 우리 사랑의 첫마음을 향기롭게 피어 올려요
쓴맛도 달게 변한 우리 사랑을 자축해요
지금껏 살아온 날들이 힘들고 고달팠어도 함께 고마워하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조금은 불안해도
새롭게 기뻐하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부담없이 서늘한 가을바람 가을하늘 같은 사람이 되기로 해요..
사랑도 나무처럼 / 이해인 님
사랑도 나무처럼 사계절을 타는 것일까 물오른 설레임이 연두빛 새싹으로 가슴에 돋아나는 희망의 봄이 있고
태양을 머리에 인 잎새들이 마음껏 쏟아내는 언어들로 누구나 초록의 시인이 되는 눈부신 여름이 있고
열매 하나 얻기 위해 모두를 버리는 아픔으로 눈물겹게 아름다운 충만의 가을이 있고
눈 속에 발을 묻고 홀로 서서 침묵하며 기다리는 인고(忍苦)의 겨울이 있네
사랑도 나무처럼 그런 것일까 다른 이에겐 들키고 싶지 않은 그리움의 무게를 바람에 실어 보내며 오늘도 태연한 척 눈을 감는 나무여 사랑이여
가을에 밤(栗)을 받고 / 이해인 님
'내년 가을이 제게 다시 올지 몰라 가을이 들어 있는 작은 열매 밤 한 상자 보내니 맛있게 드세요'
암으로 투병 중인 그대의 편지를 받고 마음이 아픕니다.
밤을 깍으며 하얗게 들어나는 가을의 속살
얼마나 더 깍아야 고통은 마침내 기도가 되는걸까요?
모든 것을 마지막으로 여기며 최선을 다하는 그대의 겸손을 모든 사람을 마지막인 듯 정성껏 만나는 그 간절한 사랑을 눈물겨워하며 밤 한 톨 깍아 가을을 먹습니다
삶을 사랑하는 그 웃음 아끼지 마시고 이 가을 언덕에 하얀 들국화로 날마다 새롭게 피어나십시오.
마음의 기도 ... / 이해인 님
늘 푸른 소나무처럼 한결같은 마음을 지니게 해 주십사고 기도합니다.
숲속의 호수처럼 고요한 마음을 지니게 해 주십사고 기도합니다.
하늘을 담은 바다처럼 넓은 마음을 지니게 해 주십사고 기도합니다.
밤새 내린 첫눈처럼 순결한 마음을 지니게 해 주십사고 기도합니다.
사랑의 심지를 깊이 묻어둔 등불처럼 따뜻한 마음을 지니게 해 주십사하고 기도합니다.
가을 들녘의 볏단처럼 익을수록 고개 숙이는 겸손한 마음을 주십사고 기도합니다.
살아있는 동안은 나이에 상관없이 능금처럼 풋풋하고 설레는 마음을 주십사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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