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풍(家風)-수행이념(修行理念) / 효봉선사

2011. 10. 9. 11:20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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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풍(家風)-수행이념(修行理念) / 효봉선사

 

 

 

계(戒) · 정(定) · 혜(彗) 삼학(三學)은 불도수행(佛道修行)의 근본이념이다. 스님은 자신이 이를 갖추어 닦았고 후학들에게도 이 삼학(三學)에 대해서 많이 말씀하였다. 삼학(三學)으로 공부하는 것을 곧잘 집짓는 일에 비유하였다. 계(戒)는 집 지을 터와 같고, 정(定)은 그 재료(材料)이고, 혜(彗)는 그 기술과 같다고. 재료가 아무리 좋아도 터가 시원찮으면 집을 세울 수 없고, 또 기술이 없으면 터와 재료도 쓸모가 없게 된다고 하였다.

세 가지를 두루 갖추어야 집을 지을 수 있듯이, 삼학(三學)을 함께 닦아야만 생사(生死)를 면하고 불조(佛祖)의 혜명(慧命)을 잇는다고 하였다. 털끝만한 것도 부처님 계율에 어긋난 일은 하지 않으려 했다.

시간관념은 너무도 엄격했다. 지리산(智異山) 탑전(塔殿)에서 안거(安居)할 때 동구(洞口)에 찬거리를 구하러 내려갔다가 공양 지을 시간 단 십분이 늦어 돌아오니, “오늘은 공양을 짓지 말라, 단식(斷食)이다. 수행자가 그렇게 시간관념이 없어 되겠니?"하며 용납하지 않았다. 그날 준엄하게 시간에 대한 교훈을 받은 이래 시봉으로서의 필자는 시간을 어기는 일이 거의 없게 되었다.

스님은 또 시물(施物)에 대해서도 인색할 만큼 아끼었고 시은(施恩)을 무섭게 생각했다. 우물가에 어쩌다 밥알 하나만 흘려도 평소에 그토록 자비하신 분이 화를 내곤 하였다. 초 심지가 다 타서 내려앉기 전에 새 초를 갈아 끼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생활은 지극히 검박할 수밖에 없었다. 수도인은 가난하게 사는게 부자(富者)살림이라고 말씀하였다.

참선(參禪)은 스님이 닦아야 할 업(業)인 양했다. 젊었을 때나 늙었을 때나 하는 일이라고는 한결같이 참선뿐이었다. 따라서 결제(結制)(공부기간)에 대한관념은 철저했다. 다른 절에 있다가 정초(正初) 같은 때 스님을 찾아뵈러 가면, 뭣하러 살림 중(결제 중)에 왔느냐고 달갑지 않게 여기었다. “어디 가 있든지 정진 잘하면 내 곁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나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과 늘 함께 있다" 몇해 전 스님은 영양실조에다 신장이 약해져 대구 대학병원(大學病院)에 삼주일 가까이 입원한 적이 있었다. 겨울 결제일(結制日)을 하루 앞두고, 공부하는 중이 어찌 병원에서 결제를 할까보냐고 며칠만 더 머물라는 의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굳이 퇴원하고 말았다.

(10) 생불생 사불사(生不生 死不死)

1954년 정화운동(淨化運動)으로 인해서 스님은 발딛기를 그토록 꺼려하던 시정(市井)에 나와 머물렀다[安國洞 禪學院에서]. 어지러운 종단 일을 수습하기 위해 수도인(修道人)의 신분에는 당치도 않은 감투를 쓰기도 했다. 종회의장과 총무원장, 그리고 宗正의 자리에도. 1956년에는 네팔에서 열린 세계불교도대회에 한국대표로 참석하기도 했었다. 스님은 평소에 국가원수(國家元首)나 관리들에 대해서 경원하였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대했을 때 하고싶은 말을 주저하지도 않았다.

서울에 머물러 있을 무렵 당시 대통령이던 이승만(李承晩)박사의 생일 초대를 받고 종단을 대표해서 경무대(景武臺)로 축하인사를 가게 되었다. 여러 사람들이 즐비하게 옹위한 가운데서 고관대작들이 드리는 인사를 턱 끝으로 받고 있던 李박사는 스님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 벌떡 일어나 손을 마주 잡고 앉을 자리를 권했다. 그리고 李박사가 스님에게 물었다.

스님의 생일은 언제입니까?

이때 스님은 李박사를 보고 조용히 말했다.

生不生 死不死(생불생 사불사) 살아도 산 것이 아니요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닌데 생일(生日)이 어디 있겠소?

이 말을 들은 老대통령은 정색을 하고 입안으로 ‘生不生 死不死(생불생 사불사)’를 거듭거듭 뇌었다. 그리고는 스님이 나오는데 따라 나오면서 귓전에 대고

우리나라에 도인(道人)이 많이 나오게 해주시오”라고 했다.

(11) 장엄(莊嚴)한 낙조(落照)

스님은 이년 전부터 극도로 노쇠(老衰)해 갔다. 이때부터는 규칙적인 대중생활을 하지 못했다. 치통(齒痛)으로 고생할 때에는 전생의 업보(業報)일 거라고 하였다. 스님의 성격은 천진한 어린애처럼 풀려버려 시봉들과 장난도 곧잘 쳤다. 육신의 노쇠에는 어쩔 수 없는 것 무상(無常)하다는 것은 육신의 노쇠를 두고 하는 말인가.

스님은 가끔 ‘파차 불행(破車 不行)이야’라고 독백을 하였다.

지난 五월 十四일 거처(居處)를 대구 동화사(桐華寺)에서 밀양 표충사 표충사 서래각(表忠寺 西來閣)으로 옮겼다. 한동안 건강이 좋아졌다가 다시 기울기 시작했다. 곁에서 보기에도 이 세상 인연(因緣)이 다해 가는 듯 싶었다. 누워 있으면서도 가끔 입버릇처럼 “무(無)라 무(無)라....."고 외마디 소리를 하였다. 무(無)란 허무를 뜻하는 말이 아니라, 평생을 두고 공부한 무자 화두(無字 話頭)인 것이다. 이와 같이 노환(老患)으로 누워 지내면서도 *究 하는 일만은 쉬지 않았다.

입적(入寂)하기 며칠 전, 곁에서 시봉들이 청을 드렸다. “스님, 마지막으로 한 말 씀 안하시렵니까?" “나는 그런 군더더기 소리 안 할란다 지금껏 한 말들도 다 그런 소린데" 하며 어린애처럼 티없이 웃었다. 그리고 나서 이렇게 읊었다.

내가 말한 모든 법은

그거 다 군더더기

오늘 일을 묻는가

달이 천강(千江)에 비치니라.

이것이 스님의 열반송(涅槃頌)이다.

1966년 10월 15일. 새벽 세시, 예불(禮佛)을 모실 시각에 스님은 “얘 나 좀 일으켜 달라”고 하였다. 부축해 드리니 평소에 공부하던 자세로 앉았다. “나 오늘 갈란다" 라고 말하였다.

얼마 못 사실 것을 곁에서도 예견한 터라 태연하게 물었다. “언제쯤 가시렵니까?" “오전에 가지" 이 말을 마치자 지그시 눈을 감고 바른손에 호두알을 굴렸다. 가끔 “무(無)라 무(無)라....."소리를 하시면서. 이렇게 잠잠히 앉아 있는 것을 지켜 보고, “스님, 화두 들립니까, 지금도 성성(惺惺)하십니까?" 라고 묻자, “응, 응....." 라고 고개를 살며시 끄덕이었다.

오전(午前) 열시, 맑게 개인 가을날. 굴리던 호두알이 문득 멈추었다. 표정(表情)이 굳어졌다. 마침내 입적(入寂)! 일흔 아홉 해 한 수도인(修道人)의 생애가 조용히 막을 내린 것이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살아도 산 것이 아니요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닌가?

재악산(載樂山) 기슭에 은은히 열반종(鐘) 소리가 메아리쳤다. 물든 잎이 뚝 뚝 지고 있었다.

하처래(何處來) 하처거(何處去).

 

 

동물중에도 수행자가 있다 / 지운스님 

 

 

브라함마 라는 스님이 호주에 선원을 열었을 때의 일화입니다.

  스님은 한달에 한 번 교도소에 가서 법문을 하곤 하셨습니다

  하루는 법문이 끝나고 재소자와 일대일로 상담을 하는

시간을 갖었습니다.

 

  한 재소자가 자신의 체험담을 얘기 하였습니다.

  육식을 끊고 채식주의자가 된 사연을...

 

  그 교도소 안에는 동물을 죽이는 날이 있었답니다.

  재소자들의 식량으로 쓰기 위해 소.양. 돼지등을 키우고는

그 동물을 잡는 것도 재소자가 하였답니다.

 

  그 역할을 하는 사람은 재소자 중에서도 가장 힘세고

악랄한 이가 맡았습니다.

 

  그는 동물을 죽이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기분도 짜릿해

그 일을 도맡아 했다고 합니다.

  전자총으로 쏴 죽이곤 했는데,

 

  대부분의 짐승들은 죽임을 당하는 통로를 들어오면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 몸부림을 친답니다.

  그 몸부림치는 짐승을 총으로 쏴죽이는 쾌감이 대단했답니다.

 

 그런 어느날 소 한마리가 그 통로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그 소는 다른 짐승들하고는 달랐습니다.

 천천히, 요동도 치지 않고,

 전혀 두려워 하는 기색도 없이 유유하게 걸어왔습니다.

 

 그러곤 여유로운 자세로 앉아 편안한 눈으로 총든 사내를

바라보았습니다.

 이윽고 소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눈물은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소의 표정은 죽이는 자에 대한 연민이

가득했습니다.

 살생을 업으로 삼고 사는자에 대한 한없는 측은지심의

표정이었습니다.

 

 그는 순간 깜짝 놀라 총을 떨어뜨렸습니다.

 그 이후 그는 더이상 짐승을 죽이는 일을 할 수가 없었을 뿐더러

 육식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소는 수행자였습니다.

 사람만이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소는 한 타락한 영혼을 정화시켰으며

큰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자비심은 어떤 살인자도 감화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비는 가장 수승한 마음의 언어이며

모든 생명체에 통하는 언어입니다.

 

 우리가 수행을 하는 것은 자비심을 기르는 것입니다.

 아무리 높은 도를 얻었다해도 자비심이 없는 수행자라면

그는 깨달은 자가 아닙니다.

 

 

동물이라고 감정도 마음도 없다고

한때는 생각했습니다만 요즘 유일하게

티비를 보는 프로그램중에 동물농장을 보면서

참으로 많은 설법을 듣습니다

 

아래는 해탈고양이를 보내드립니다

 

 

SBS-TV,(동물농장)에서 소개한 "불심 깊은 고양이 -해탈이...재 감상..~~~

    항상 편안하십시요 보디삿트와()

     

     

    명상음악 17곡모음 - 마음

     

    01 마음   02 마음의노래   03 아름다운 마음  04 마음의 눈
    05 마음이 마음을 안다  06 마음에 향기를 담고 07 마음의 문을 열며
    08 마음의 그림자  09 님 향한 마음  10 마음의도리 11 마음이 허공 같을때
    12 내 마음의 기도  13 이마음 빈 들이여 14 내마음은 가을달인가
    15 청정한 마음 16 선의 마음 17 마음을 청정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