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은 장애가 없다/정목스님

2011. 10. 2. 16:41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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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불은 장애가 없다/정목스님 염불은 번뇌와 죄악이 깊고 무거움을 묻지 않는다. 스스로 번뇌를 소멸하고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수행이 아니기 때문이다. 염불을 실천하는데는 계정혜(戒定慧)의 장애가 없다. 이미 지은 악업과 지관(止觀)이라는 깨달음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오직 결정된 믿음을 요구할 뿐이다. 염불은 고뇌와 죄악의 존재임을 자각하고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삶을 원하여 본원력에 대한 진실한 믿음을 일으키도록 한다. 염불행자는 삼계에 윤회하거나 악도에 떨어질 일이 없다. 번뇌와 죄악과 일체의 고통이 자비광명에 섭수되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은 광대무변한 자비광명에 섭수되어 평등과 자유와 안락이 보장된다. 이것은 부처님의 지혜로 증명하는 것이다. 염불은 부처님의 지혜를 의심없이 믿고 행해야 이익을 온전히 얻을 수 있다. 만약 부처님의 지혜를 의심하면 불제자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염불을 선택하여 진실한 믿음을 일으키면 누구든지 구제 받을 수 있다. 번뇌와 죄악이 심중하여도 장애를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극악의 범부도 구제받는다. 염불행자는 태생(胎生)에 의탁하지 않고 화생(化生)으로 정토에 왕생한다. 진실한 믿음을 온몸으로 소화한 신앙의 빛이 자비광명에 섭수되기 때문이다. 자비광명은 정토의 수승한 경계이며 그렇게 믿는 것은 신심으로 일으킨 종교적 지혜이다. 염불은 소소한 계율(戒律)에 구애받지 않는다. 청정한 정토를 원하면서 계를 버리는 것은 아니지만, 범부의 삶의 구조에서 온전히 계를 지닐 수 없기 때문이다. 염불수행은 계정혜를 온전히 닦을 수 없는 범부를 구제하는 가르침이다. 그러나 만약 계를 지키면서 염불한다면 한량없는 공덕을 얻을 것이다. 염불은 욕망과 기복(祈福)을 버리도록 하지도 않는다. 욕망과 기복의 에너지를 신앙의 빛으로 전환하고 정토를 원하여 결정된 믿음을 일으키도록 한다. 염불수행으로 자비광명에 대한 신해(信解)가 깊어지고 일체의 인연과 은혜에 감사하는 생활을 하면 욕망과 기복은 자연히 사라진다. 자비광명에 대한 신해로 일체의 경계를 아미타불의 화신으로 마주하면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은 사라진다. 이러한 과정에서 지혜와 복덕은 증장하게 된다. 염불은 고행을 선택할 필요가 없다. 염불은 결정된 믿음을 전제로 한다. 염불은 남녀노소 직업과 근기에 관계없이 누구든지 실천할 수 있다.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도 가능하며 무량한 이익을 얻는다. 염불은 자연과 대중과 일상생활 가운데서 실천하는 수행이다. 염불은 일체생명과 함께 광명의 세계에 드시 왕생한다는 희망으로 닦아야 한다. 일상생활 가운데서 얻는 작은 깨달음이 삶에 유익하게 적용될 수 있다. 염불을 꾸준히 익히면 삶을 떠나 행하는 고행이 필요치 않음을 스스로 알게 된다. 염불수행의 깨달음은 인가(認可)를 받을 필요가 없다. 염불은 부처님의 지혜에 대한 신앙의 빛으로 경과 논에 의지하여 실천하기 때문이다. 또한 깨달음의 경계가 경과 논에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신앙의 빛으로 자비광명을 신해하는 신심(信心)은 인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다만 수행 과정에서 경론에 근거한 약간의 지도가 필요할 뿐이다. 염불은 신비주의가 아니다. 염불은 이익을 인식하고 경험할 수 있으며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마음의 과학이다. 염불을 실천하는 데는 일체의 장애가 없다. 누구든지 믿음을 일으키고 실천하면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 정목 스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