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멸멸이(生滅滅已)의 멸진정(滅盡定)/청화큰스님

2011. 9. 24. 00:23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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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멸멸이(生滅滅已)의 멸진정(滅盡定)/청화큰스님

 

우리 공부하는 분들은 멸진정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멸진정을 성취해야 이른바 누진통(漏盡通)이 되고, 누진통을 해야 비로소 참다운 도인입니다. 문자 그대로 번뇌를 다 멸해버리는 것이 멸진정 입니다. 이른바 아상ㆍ법상을 다 끊어 없애버리는 것이 멸진정이기 때문에 성자와 범부의 분수령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마땅히 멸진정을 발득(發得) 해야 이른바 선정해탈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보통은 지혜해탈만 하고서 지혜로는 모르는 것 없이 다 알지마는 멸진정에서 선정해탈을 미처 못하면 삼명육통(三明六通) 등 초인적인 힘을 못내는 것입니다.

마땅히 멸진정은 우리가 어느 때라도 꼭 들어가야 합니다. 게으르면 금생에 못 들어가고 말런지 모르겠지마는 꼭 들어가야 참다운 성자인 것입니다. 그러나 쉬운 것이 아니란 것을 깊이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설산동자가 설산에서 ‘생멸멸이(生滅滅已) 적멸위락(寂滅爲樂)’ 이란 두 귀절 때문에 자기 목숨을 바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경전을 볼 때에 깊은 생각에 잠겨야 합니다. 생멸이 멸이하면 참다운 해탈경계, 해탈을 즐거움으로 한다는 말입니다. 멸이(滅已)라는 것은 번뇌가 다 멸한 자리 아닙니까? 번뇌가 멸한 자리를 증명할 때는 그냥 그렇게 쉽게 그렁저렁해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몸뚱이, 나라는 관념, 이것을 어느 때라도 아낌없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생멸멸이 적멸위락의 참 뜻입니다. 그래서 싯달타 전의 설산동자(雪山童子)는 호리도 주저없이 몸을 버린 공덕으로 12겁을 초월해서 성불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성불할 것인가? 우리가 성불을 않고 배겨내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든지 간에 꼭 성불되어야 합니다. 이 몸뚱이를 불교에서는 원가(怨家)라, 원수라고 합니다. 몸뚱이 집착 때문에 성불을 못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생멸멸이라는 그 귀중한 언구 가운데 자기를 몽땅 바쳤다는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설산동자가 나찰신한테 자기 몸뚱이를 잠시의 주저와 회한이 없이 던짐으로 해서, 12겁을 초월해서 성불했다는 사실은 우리들의 수행정진에 비장한 귀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살타왕자가 새끼 범들을 낳고서 굶주린 어미 범한테 자기 몸을 바치지 않았습니까? 범에게 가까이 가서 몸을 드러누워도 그 자비로운 위신력 때문에 범이 차마 먹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내 몸뚱이를 죽여서 바쳐야겠구나” 생각하고 나무 위에 올라가 땅으로 뛰어 내렸습니다. 그러나 제석천이 그냥 받들었습니다. 정말 위대한 인물들은 무량 천신과 호법신이 지키기 때문에 물에 빠뜨려도 빠지지 않고 불에 태워도 타지 않습니다. 인연이 되어야 가는 것이지 인연이 안되면 갈려고 해도 못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할 수 없이 대꼬챙이로 자기 목을 찔러서 피를 내어 흘리며 가까이 가니 그때는 뭐라 해도 짐승이니까 피 냄새를 맡고는 피를 핥아 먹고 몸을 다 먹어서 뼈만 남겼던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 해서 11겁을 앞당겨 성불했습니다.

   

금생에 우리가 할 길은 성불하는 길 외에 다른 길이 있지가 않습니다. 오직 외길, 한 길 뿐입니다. 어떻게 가야 할 것인가? 앞으로도 못가고 뒤로도 못갑니다. 오직 초월하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범부를 초월하여 성자의 길 밖에는 없습니다. 못 간다고 할 때에는 속체 가운데서, 속물 가운데서 헤매다 윤회할 수 밖에는 없습니다.

 

歌皇 나훈아

 

 

 

 

 

 

 

 

 

 

 

 

 

 

 

 
 
 

 

머나먼 고향 - 歌皇 나훈아

 



1947년 2월 11일 부산 출생, 서라벌고교를 나와 1966년 '천리길'로 데뷔한 歌皇 나훈아,

사실 가수 나훈아는 서로가 가는 방향은 사뭇 다르지만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의 롤모델이다.

 

1966년 서울 서라벌예고 2학년생이던 최홍기가 가수 나훈아로 다시 태어나는데엔

그 자신의 말로 한 시간이면 충분했다. 까까머리 소년은 마장동 스튜디오에서 사실상의

데뷔곡이 된 ‘천리길’과 그의 출세작이 된 ‘사랑은 눈물의 씨앗’ 등 네 곡을 단숨에 녹음한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그 이후로 오십 년에 이르는 기나긴 시간 동안 불멸의 전당에 등재되었다.



나훈아가 발표한 노래는 2500곡이 넘으며 그중에서 자작곡은 800여 곡이고,

‘스매시 히트’를 기록한 노래도 50곡이 넘는다. 그와 함께 한국 현대사를 관통한 한반도의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자연스럽게 그를 트로트의 황제로 추대하기에 이르렀다.



1972년 공연장 무대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피습, 일곱 살 연상인 국민여배우

김지미와의 충격적인 결혼과 이혼이라는 스캔들, 80년대 이후 트로트 장르의 전반적인 몰락….

크고 작은 수많은 난관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지만 그 어느 것도 황제를 굴복시키지 못했다.



나훈아의 트로트 가창은 한국 트로트 역사에서 혁명적인 것이었다.

그는 일본 엔카가 가지고 있는 섬세하고 유약한 여성적인 발성의 틀에서 벗어나

강인한 남성성을 극적으로 구현하는 대륙적인 울림을 창조했다. 트로트 특유의 고역의 비브라토는

그 자신의 표현대로 다이내믹한 ‘뒤집음과 꺾음’으로 발화되었다. 그것은 단정하고 서정적인 호소력을

주력 무기로 삼아온 남성 트로트의 계보를 마초적인 흡인력으로 전복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다.

 

초기 히트곡 ‘가지 마오’(1971년)와 ‘녹슬은 기찻길’(1972년)의 클라이맥스를 끌어올리는 나훈아의

폭발적인 에너지는 솔이나 로큰롤이 분만하는 그것에 결코 밀리지 않을뿐더러 트로트 특유의 노랫말의

감정이입은 더욱 강화된다. 나훈아의 발성의 근원에는 일본 엔카의 고정된 틀을 벗어나 자유롭게

고저장단을 호흡하려는 본능을 지닌 한국 전통 민요의 감수성이 잠복해 있다. 그는 70년대에도

민요 앨범을 정력적으로 발표했으며 랩 음악이 난무하던 90년대에도 ‘어매’(1994년)

‘허야’(1999년) 같은 빼어난 민요적 정취의 창작곡을 발표하는 기염을 토한다.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격화되기 시작한 남진-나훈아의 세기의 라이벌전은 식민지 시대

남인수-백년설의 격돌 이후 가장 폭발적인 경쟁 구도였고, 이들의 스타덤을 더욱 가속적으로 추동했다.

정치계의 박정희-김대중 간 영호남 라이벌 구도를 상기시키는 이 숨 가쁜 경주가 펼쳐지는 동안

나훈아는 생애의 걸작이자 광복 후 한국 트로트의 금자탑이 되는 ‘물레방아 도는데’(정두수 작사·

박춘석 작곡·1972년)로 남진의 ‘님과 함께’(고향 작사·남국인 작곡)에 대립각을 세웠다.

 

 

남진의 노래가 개발도상국가의 근대화를 향한 소망 속에 담긴 미래의 중산층의 꿈을 노래했다면

나훈아의 ‘물레방아 도는데’는 이농현상으로 도시로 몰려든 어린 노동자들의 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슬픔을 형상화하며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말하자면 남진의 노래에서 전원은 풍요로운 낙원이지만

나훈아의 노래에서 그것은 가난해서 떠나왔지만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고향인 것이다.



느닷없이 시작된 김지미와의 결혼생활로 인해 1975년부터 5년간 나훈아는

뮤지션으로서의 생활을 잠정적으로 중단했다. 많은 이는 나훈아와 트로트의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80년대와 함께 그는 본격적인 싱어송라이터로서 새로운 2막을 기술하기 시작한다.

나훈아의 80년대는 그 시대를 지배했던 조용필의 행보에 질적으로 결코 뒤지지 않는 것이었다.

컴백작 ‘울긴 왜 울어’를 시발로 그는 거의 매년 신작 앨범을 발표하는 왕성한 창작력을 과시한다.

‘대동강 편지’(1981년) ‘여자이니까’(1982년) ‘사랑’(1983년) ‘청춘을 돌려다오’(1984년)

‘땡벌’(1987년) ‘무시로’(1988년) ‘건배’(1989년) ‘영영’(1990년)으로 이어지는

무시무시한 히트 퍼레이드는  그의 첫 전성기에 결코 뒤지지 않는 것이었다.



이 노래의 대부분을 그가 작곡했고 특히 80년대 후반의 세 앨범이

한두 곡을 제외하면 모두 자작곡으로 채워졌다는 것, 그리고 발라드나 테크노는

물론이고 ‘술이 부르는 노래’(1999년)에서처럼 랩까지 포섭하는 놀라운 소화력을 보인 것은

그가 얼마나 치열한 진정성으로 도전 의지를 집중시켰는지를 여실히 알려 준다.



나훈아는 조용필과 또 다른 영토에서 성인 취향의 한국 대중음악이라는 반석을 굳게 세웠고,

나란히 최고의 콘서트 스타가 되었다. 어느 누구도 ‘황제’ 나훈아를 폐위시킬 수 없다.

그의 폐위는 오로지 그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을 뿐이다.

 

 

 

2010년 2월 2일자 한겨레신문에 오른 나훈아에 관한 기사 하나를 소개한다.
 

<나훈아, 이건희 거액초청 거절…“공연표 끊어라”>

 

2007년 10월 이른바 '삼성 비자금 의혹'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의 애창곡은
나훈아의 '영영'과 '사랑'이다. 지난 29일 < 삼성을 생각한다 > (사회평론)를 펴낸 김 변호사는
책에서 '삼성 일가와 가수 나훈아씨에 얽힌 일화를 듣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이 책에는 이건희 전 회장과 삼성을 둘러싼 다양한 일화가 실려 있는데,
연예계와 예술계에 얽힌 일화도 들어 있다. 가수 나훈아씨와의 일화도 그 중 하나다.
이 책에 따르면, 이건희 전 삼성 회장 일가의 파티에는 연예인, 클래식 연주자, 패션 모델들이
초청됐다. 가수의 경우,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보통 2~3곡을 부르고 3000만원쯤 받아간다.
이 전 회장 일가의 파티 초청을 거절하는 연예인은 거의 없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예외가 있었다. 가수 나훈아다.
 
삼성 쪽에서 아무리 거액을 주겠다고 해도 나훈아를 불러 노래를 부르게 할 수는 없었다.
나훈아는 대략 이런 입장이었다고 한다. "나는 대중 예술가다. 따라서 내 공연을 보기 위해
표를 산 대중 앞에서만 공연하겠다. 내 노래를 듣고 싶으면, 공연장 표를 끊어라."
돈으로도 사지 못하는 한 가수의 자존심과 긍지가 묻어나는 대목이다.


이 책에는 '관리의 삼성'이 그동안 법원·검찰·국세청 등 권력기관을 상대로 어떤 형태의 로비를
펼쳤는지와 경영권을 세습하는 과정에서 증거 조작도 마다하지 않는 행태가 세밀하게 묘사돼 있다.
 
나훈아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장인정신이 나훈아만큼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마추어는 아무 때고 술렁술렁 넘어가지만 프로는 잘근잘근 곱씹고 매사 피를 토한다..

 

 

백인의 학산전사 호동대장 哀兵必勝~!! 
 희망아침 HQ편지 불나비와 함께

    머나먼 고향 ..,

    머나먼

    남쪽 하늘 아래

    그리운 고향


    사랑하는

    부모 형제

    이 몸을 기다려



    천리타향

    낯선 거리

    헤매는 발길


    한잔 술에

    설움을

    타서 마셔도



    마음은

    고향 하늘을

    달려갑니다

     

    천리타향

    낯선 거리

    헤매는 발길


    한잔 술에

    설움을

    타서 마셔도



    마음은

    고향 하늘을

    달려갑니다

     

     

      

      

     

     

     

     

     

     

     

     

     

     

     

     

      

     

     

      



     

     

 


 
      * 고향집 어머니의 마당 *

      "꽃 좋아하면
      눈물이 많다더라"
      그러면서도
      봉숭아 함박꽃 난초 접시꽃
      흐드러지게 심으셨던
      어머니



      볕 좋은 날이면
      콩대 꺾어 말리시고
      붉은 고추 따다 널어두고
      풀기 빳빳한 햇살 아래
      가을 대추도 가득 널어 말리시며
      잡풀 하나 없이 다듬느라
      저문 날을 보내시던
      고향집 마당



      이제는 와스락와스락
      마른 대잎만 몰려다니며
      잊혀진 발자국 더듬어가고
      "내 죽으면
      이 지섬 다 어쩔꼬"
      어머니의 근심이
      마당 곳곳에서 무더기로 자라고 있다



      - 김미옥의《어머니의 마당》
      (김용택 엮음 <사랑 그대로의 사랑>) 중에서 -

       

       

       

      * 봉숭아 함박꽃 콩대 붉은고추 가을대추, 이름만
      들어도 왈칵 그리움이 솟구칩니다. 가을 고향집 마당에
      구부정하게 앉아, 붉은 고추를 다듬는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울컥 눈물이 납니다. 한가위 추석 귀향은
      그 구부정한 어머니를 찾아 뵈러 가는 길입니다.

       

      - 고도원의 아침편지 -

      * 내가 남 앞에 설 때는 *

      내가 남 앞에 설 때는
      늘 내 고향을 생각합니다.

      바닷가 시골 그 작은 동네에서 발가 벗고 자란
      보잘 것 없는 아이였음을 생각합니다.



      내가 글을 쓸 때는 늘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배운 것은 없지만 소박하고 성실하게 쓰신
      아버지의 일기를 생각하면서 글을 씁니다.



      내가 일을 할 때는 늘 어머님을 생각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불평하지 않고 사랑과 희생으로
      최선을 다하신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일을 합니다.



      내가 공부를 할 때는
      늘 나를 격려해 주신 선생님을 생각합니다.
      그 부드러운 목소리와
      신뢰의 눈빛을 떠올리면서 공부를 합니다.



      내가 사랑을 할 때는
      가장 깊이 사랑한 어느 순간을 생각합니다.
      지금의 사랑이 그 깊이와 넓이에
      닿을 수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사랑합니다.



      내가 누군가를 만날 때는 한 친구의 우정을 생각합니다.
      그 친구와 우정처럼 믿음이 있고 순수하고
      진지한지를 생각하면서 사람을 만납니다.



      내가 길을 걸을 때는
      옛날 사람들의 발걸음을 생각합니다.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 산 넘고 물 건너 몇 달 몇 년을
      걸어간 옛 사람들의 발길을 생각하면서 길을 걸어갑니다.



      내가 이별을 할 때는 내가 겪은 이별의 아픔을 생각합니다.



      그 아픔이 그에게
      없을 것인지를 생각해 보고 이별의 소식을 전합니다.




      -정용철의 마음이 쉬는의자 중에서-

       



       

     

     

     

     

     

     

     

     

     



     

     

     

     

     

     

     

 

 

 

 

 

 

 

 

 

 

 

 

 

 

 

 

 

 

 

 

 

 

 

 

 

 

 

 

 

 

 

 

 

 

 

 

 

 

 

 

 

 

 

 

 

 

 

 

 

 

 

 

 

 

 

 

 

 

 

 

 

 

 

 

 

 

 

 

 

 

 

 

 

 

 


 

01. 머나먼 고향 02. 물레방아 도는데 03. 울고 넘는 박달재
04. 모정의 세월 05. 연상의 여인
06. 흰구름 가는 길 07. 가지마오

08.사랑은 눈물의 씨앗 09. 추풍령 10. 나그네 설움 11. 강촌에 살고 싶네

12. 고향역 13. 찻집의 고독 14. 갈대의 순정 15. 바보 같은 사나이

16. 너와 나의 고향 17. 녹슬은 기차길 18. 울어라 열풍아 19. 님그리워

20.해변의 여인 21. 대동강 편지 22. 인생길 나그네 길 23. 정주고 내가 가네

24. 댄서의 순정 25. 두 줄기 눈물 26. 청춘을 돌려다오 27. 꽃과 나비
28. 평양아줌마 29. 용두산 엘레지 30. 후 회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어라!
서 있는 그 곳이 모두 진리의 자리이다."
 

 
 

 

 

고향에 가고 싶다

 

고향에 가고 싶다.
큰댁 뒷동산에 있던 용틀임하던 소나무는
죽은 지 오래다. 내가 자라던 집은 흔적조차 없다.
동구 밖 느티나무 아래에서 스무 걸음 떨어진 개울에는
물도 말라버렸다. 거기서 빨래하던 아낙들은 어쩌면 이제는
모두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게 되었을 듯하다.


그런데 가고 싶다.
그래, 고향에 가면, 고향으로 돌아가면,
나는 비로소 나를 사랑하리라.
나는 나를 토닥거리고 싶다.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다.
피곤한 마음도 상처난 몸도 쉬게 하고
아프지 않게 하리라.



- 정진홍의 《마당에는 때로 은빛 꽃이 핀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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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입니다.
뒷동산 소나무도 죽었고 느티나무 아래 개울물도 말랐지만
고향은 아직도 우리 마음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풍성한 그늘로 안아주던 동구밖 느티나무는
우리 마음의 고향 속에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상처난 마음도, 지친 몸도 쉬게 해주던
내 고향의 따뜻한 품이 그립습니다.

 

수처작주 입처개진 애병필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