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의 애인 / 석지명스님

2011. 11. 4. 16:5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오매일여

728x90

 


    전생의 애인 / 석지명스님
    부처님께서 아난존자를 데리고 길을 가다가 오래 된 해골을 보았다. 부처님은 갑자기 그 해골에게 절을 했다. 아난존자는 깜짝 놀랐다. 삼계의 대도사요 사생의 자부이신 부처님께서 누구인지도 모를 해골에게 절을 했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인간세계뿐만 아니라 모든 하늘의
    임금들로부터도 예배를 받는 어른이 아니던가.
    부처님의 예배가 끝난 후 아난존자는 세존께서 어쩐 일로 하찮은 해골에게 절을 하셨느냐고 여쭈었다. 부처님은 "헤아릴 수 없는 다겁생래의 관계를 생각하면 전생에 부모자식관계를 가지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대답했다. 부처님은 설법을 할 때 중생들의 근기를 참작해서
    다양한 방편을 썼다. 도에 수준이 높은 사람들에게는 진리를 바로 드러내보였다. 그러나 바로 말해서 못 알아듣겠다 싶은 사람에게는 비유를 들어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비유마저 통하지 못할 낮은 수준의 사람에게는 무량억천만번의 전생 가운데서 맺어진 인연을 들어서 우리 모두가 서로 위하면서 살아야하는 이유를 풀이해주었다. 가령 외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슬퍼할 때는 그 아들과 맺은 전생 의 인연을 들어서
    그 슬픔을 가라앉혔고, 억울한 일을 당해서 분해 하는 사람에게는 전생에 이쪽에서 상대에게 억울한 일을 한 것을
    상기시켜주었다.
    병원 신생아실에서 두 갓난아이가 각기 친부모가 아닌 집으로 가서 살았는데, 17년 만에 그 일이 밝혀져서 오랜전에 보도되었다. 현재 고3인 아들의 혈액형이 부모의 것과
    관계가 없는 것을 알고, 남의 아들을 17년동안 길러온 이는 그 아이를 분만했던 병원의 기록을 조사해보았다.
    그 결과 두 사내아이가 뒤바뀐 것을 알게 되었다. 두 아이의 친부모들은 호적을 정정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오랫동안 내 아들이던 사람이 갑자기 법적으로 남의 아들이 되고, 남의 아들이던 사람이
    내 아들이 되는 일이 생겼다. 부처님이 왜 전생의 혈연을 들어서 서로 함부로
    대하지 않고 같이 잘 살아야 한다고 했는지,
    저 친자식 확인 보도를 보고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17년 전이 아니라 오백생, 천생, 억만생을 거치면서 우리 모두가 여러 번 여러 가지 혈연관계였다는
    것을 안다면
    경쟁적으로 서로를 아끼고 위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전생의 애인이나 부모를 이생에 만나는 것이 얼마나 감회가 깊고 기쁜 일 이겠는가. 어찌 우리 모두가 남일수 있겠습니까? 전생의 남편 전전생의 자녀 친척 이웃... 그리하여 나라안팎 과 타지에서
    각자의 나라에서 스스로 가신님들
    병들어 가신님 부지불식간에
    유명을 달리하신 모든 중생들에게
    극락왕생을 기원 합니다
      나무시아본사 석가모니불
      항상 편안하십시요

         

        자신의 생각이 곧 자신의 운명임을.



        자신의 생각이 곧 자신의 운명임을 기억하라.
        우주의 법칙은 자력과 같아서
        어두운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
        어두운 기운이 몰려온다.

        그러나 밝은 마음을 지니고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살면
        밝은 기운이 밀려와
        우리의 삶을 밝게 비춘다.

        밝은 삶과 어두운 삶은 자신의
        마음이 밝은가 어두운가에 달려 있다.
        그것이 우주의 법칙이다.

        사람은 저마다
        홀로 자기 세계를 가꾸면서
        공유하는 만남이 있어야 한다.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한 가락에 떨면서도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거문고 줄처럼'
        그런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거문고 줄은
        서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울리는 것이지
        함께 붙어 있으면 소리를 낼 수 없다.
        공유하는 영역이 너무 넓으면
        다시 범 속에 떨어진다.

        어떤 사람이 불안과 슬픔에 빠져 있다면
        그는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시간에
        아직도 매달려 있는 것이다.

        또 누가 미래를 두려워하며 잠 못 이룬다면
        그는 아직 오지도 않을 시간을
        가불해서 쓰고 있는 것이다.

        빗방울이 연잎에 고이면
        연잎은 한동안 물방울의 유동으로
        일렁이다가 어느 만큼 고이면 수정처럼
        투명한 물을 미련 없이 쏟아 버린다.
        그 물이 아래 연잎에 떨어지면 거기에서 또
        일렁이다가 도르르 연못으로 비워 버린다.

        이런 광경을 무심히 지켜보면서,
        '연잎은 자신이 감당할 만한
        무게만을 싣고 있다가 그 이상이 되면
        비워 버리는구나' 하고 그 지혜에 감탄했었다.
        그렇지 않고 욕심대로 받아들이면 마침내
        잎이 찢기거나 줄기가 꺾이고 말 것이다.
        세상사는 이치도 이와 마찬가지다.

        - 법정스님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 하라>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