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 10. 15:38ㆍ일반/금융·경제·사회
불교(佛敎)의 대의(大義)란 무엇인가?
법우 여러분 안녕 하십니까?
임진년 새해가 밝아 온지 입춘을 넘기고 오늘 음력 정월 대보름 법회를 봉행하는
시간입니다. 우리 불가(佛家)에서는 동안거(冬安居) 해제일이기도 합니다.
임진년 정월 대보름 법회에서는 조과 스님과 백낙천의 일화(逸話)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옛날 중국에서 시인으로 유명한 백낙천이 조과라는 선지식을 찾아가서
어떤 것이 불교의 대의 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조과 스님은 말씀하시길
“나쁜 짓하지 말고 좋은 일을 많이 하여 그대의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이
바로 불교다.”라고 하셨습니다.
좀 그럴듯한 대답을 기대했던 백낙천은 누군들 그런 것쯤 모르겠느냐고 생각이 들어서 그런 말이야 삼척동자라도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하고 반문했습니다.
조과 스님은 말씀하시길
세 살 먹은 아이라도 바른 말은 할 수 있지만,
80노인이라도 행하기는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법우 여러분들 그동안 많이 접하셨던 이 일화를 오늘 소개하면서
임진년은 우리에게 많은 선택(選擇)과 새로운 도전(挑戰)이라는 전환기(轉換期)의
한 해가 될 것으로 여겨집니다.
우선 3월 입법부의 우리들에 대표자들을 선출하는 국회의원 선거와 10월 향후 5년간 우리들의 운명을 이끌고 갈 지도자 를 선출하는 대선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저는 며칠 전 뉴스를 통하여 새롭게 놀란 사실이 한 가지가 있습니다.
국제 원유 시장의 유가 상승으로 전 세계적으로 경제에 먹구름을 안겨주고 있고,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날로 치솟는 유가 상승으로 인하여 국민들의 어려움들이 날로 가중되고 있고, 서민 경제의 치명타를 가하고 있는데 정작 국내 원유를 공급하는 정유 3사들의 작년 대비 수익은 7조원 이상이 이른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그들 기업들은 그들의 이익을 위하여 이러쿵저러쿵 궁색하게 답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복지 논쟁이 한창 진행 중에 있습니다. 다들 공감들 하실 것 입니다. 복지 정책을 늘려야 된다는 주장과 경제상황 고려해야 된다는 주장하는 측 입장들이 그들 나름대로 이유들과 내세우는 논리들이 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법우 여러분!
저는 이러한 문제의 한복판에는 남들이야 죽든 살든 말든 나만! 우리 기업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심(利己心)과 탐욕(貪慾)이 자리 잡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복지(福祉)에 대한 우리들의 관심은 미래에 대한 우리 생활들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일어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이 땅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우리 민족은 이민족들의 수많은 침략과 수탈을 당하고 살아온 민족입니다.
우리 강토가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이 강토를 지키고 오늘을
유지해온 우리 민족의 저력은 과연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그 잘나고 학식 높으신 풍채 좋으신 정치 위정자들 이었습니까?
아니면 밟아도 짓이겨도 겪기지 않는 들불처럼 살아온 이 땅을 살아가는 백성들 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위정자들은 자기보신 주의에 급급할 때 이 땅을 살아가는 힘없고 가진 것 없는 민중(民衆)들이 분연히 일어서서 이 땅을 수호하였습니다.
역사 속에 등장하는 시대의 인물들은 그 시대의 상징적 존재일 뿐이지 그와 함께
공적(功績)을 이룬 수많은 이름 없는 이들의 헌신과 희생으로 우리 강산을 지켜 왔던 것입니다.
소승이 오늘 임진년 대보름 법회에서 왜 이런 말씀을 하게 된 연유(緣由)는 앞에서 언급된 문제들이 오늘 우리에게 산적(散積)되어 있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재개발과 내 호주머니에 돈들이 많이 들어올 욕심으로 우리들이 선택한 정권이
과연 우리의 삶과 복지를 향상 시켰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겪는 갈등과 반목의 한복판에는 나만 가지면 된다는 탐(耽)심과 진(塵)심과 치(恥)심이 짙게 깔려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오늘의 위정자들은 우리가 아는 것 이상으로 많은 조직과 두뇌들을 동원하여 경제적으로 조직적으로 그 막후에서 우리들을 현혹하고 자기들을 지지해 주도록 갖은 방편을 동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럴 때 시대를 관철하는 불법(佛法)의 혜안(慧眼)으로 그들의 거짓 위선과 국민들을 기만하고 농락하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되며, 이제 우리들도 더 이상 그들의 빈껍데기뿐인 공약(空約)과 허울 좋은 위선적 정책 구호들에 더 이상 속지 말자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 이천만 불자들에게 묻습니다.
불교의 대의가 무엇인가? 를
우리 불교 사회에는 불교의 경전과 논소들 그리고 큰스님들의 법어를 달달 무불통달하신 법우님들이 너무 많이들 계십니다.
그러나 그 많은 경전과 불교의 사상들도 너무들 잘 알고 계시면서 내 생활 속에서 몸소 실천하지 않으면 즉 행동하지 않으면 다 소용이 없다는 말씀을 부처님께서는 여러 경전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부처님의 자비 사상은 불의와 억압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진정한
깨달음(佛)과 밝음(法)과 청정함(僧)으로 깨우치기 위하여 이 땅에 현신(現身)하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불의와 이기심이 판치는 혼탁악세를 불타는 집으로 이를 잘 비유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임진년에는 국제 정세와 국내의 정치 상황을 냉철히 주시 하시면서 우리의 지도자들을 판단해 우리에 소중한 주권들을 담아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우리들의 순간의 선택은 우리들 삶 속의 질과 생활에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또 한편으로 우리의 신행 현장에서 느껴지는 일례(一例)로
이절 저절 명산대찰 치맛바람을 일으키면서 성지순례를 다니시는 전국구 보살님들, 큰 사찰과 큰 스님네들 이름 많이 안다고 거들먹거리는 대보살님들,
남편이나 아들이 장관이거나 재벌이라고 자랑하는 대보살님들,
절간마다 돌아다니면서 이 스님 저 스님 험담하기 바쁜 보살님들,
스님 아는 소리해 주시라고 들먹거리며 죽는 시늉하시는 보살님들,
무엇 하시려고 들 그렇게 정성들여 절에들 가십니까?
그렇게들 하셔야 내 만족과 내 위안들이 되십니까?
천수경 시작이 무엇 입니까? 정구업진언 입니다. 다들 잘들 아시지요!
그 많은 구업들 지으시고 무엇을 어떻게 신행 생활 하신다는 말씀들 입니까?
이생을 다하는 순간 그렇게 모질게 모은 재산 다 놓아 놓고서
오동나무 관 속에 홀로 업만 가지고서 가는 것이 인생사인데 말입니다.
법우님들 경기들이 어렵다고들 불교 카페 활동들이 현저히 저하되고 있습니다.
우리 불교 카페들을 방문하시면서 댓글들 하나 달으시기가 그리들 어려우십니까?
우리 모두가 힘이 들 때에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말씀하나 주고받는 것은
커다란 복전(福田)을 이루는 것입니다.
서로에 격려와 위로의 한 말씀에 인색하시지 마시고 복 밭을 쌓으십시오.
젊으신 우리 청년 불자님들!
당장 취업들이 안 된다고들 기죽지들 마시고 당차게 일어서십시오!
무엇이 그리 두렵습니까? 무엇이 그리도 여러분들을 외소하고 쫄게 합니까?
난세에는 이를 지도할 영웅들이 대두되는 것이 역사입니다. 자신감을 갖으십시오.
국내외의 정세가 호락호락하지 않는 임진년에는 새롭게 변모되고
새롭게 태어나는 새로운 불자 상을 정립하자는 것입니다.
나만 잘되면 남들이야 죽던지 말던 지가 아닌, 나와 더불어 내 주위의 아픔도
함께 안고 가는 자비(慈悲)의 정신(精神)이 오늘을 살아가는 부처님의
귀한 불제자가 아니겠습니까?
내 가정의 생활고가 당장에 어렵다고 살아가는 문제들이
왜 나만으로 한정하시지들 마시고 동업중생(同業衆生)으로 동시대를 더불어 살아가는 쫄지 않는 불자! 매사(每事)에 자신 있는 불자!
내 가족과 사회 그리고 시대와 함께 동고동락(同苦同樂)하며
육바라밀을 실천하시는 당당한 보살마하살이 되시길
임진년 정월 대보름 법회에서 발원합니다.()()()
불기 2556년 정월 대보름
보현공동체 보현사 무공 합장
<사진:2011년 12월 해운대 동백꽃> 초심.
동백꽃
문정희
나는 저 가혹한 확신주의자가 두렵다
가장 눈부신 순간에
스스로 목을 꺾는
동백꽃을 보라
지상의 어떤 꽃도
그의 아름다움 속에다
저토록 분명한 순간의 소멸을
함께 꽃피우지는 않았다
모든 언어를 버리고
오직 붉은 감탄사 하나로
허공에 한 획을 긋는
단호한 참수
나는 차마 발을 내딛지 못하겠다
전 존재로 내지르는
피 묻은 외마디의 시 앞에서
나는 점자를 더듬듯이
절망처럼
난해한 생의 음표를 더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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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 시집"나는 문이다"[문학에디션 뿔]에서
사람이 건 꽃이 건 가장 아름다울 때 그 목숨을 버릴 수 있다는 것은 용기다
동백꽃이 아름다운 것은 추위 속에 피어나 꽃봉우채 떨어진다는 것이다
일순간 모든 것을 체념한 것과 같이 땅에 덜어져서도 그 꽃의 자태가 의연하다
그런 동백꽃을 보고 시인은 완벽주의자라 하였다
어떤 순간에서 의연함을 잃지 않는 마음이 있다
우리는 그 모습을 보고 독하다고 말한다
우리들 삶 속에서도 동백꽃 지듯 몰려오는 아픔들이 수 없이 많다
그 아픔들이 동백꽃 같은 뜨거운 말들이였다
동백꽃 지는 날에 절망처럼 난해한 생의 음표를 시인께서는 엿듣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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