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장경 법문/원인스님

2012. 5. 18. 10:46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염불 불보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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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십이장경 요점법문(2011년 1월2월정기법회법문)

 

- 수도암 원인스님

 

 

 

 

 

 

 

 

 

오늘 첫째 달 법회 보기위해서 눈길을 헤치고 오신 불자님들을 보니 그 옛날 법을 구하기 위해

천신만고를 무릎서고 도를 구했던 스님들이 생각납니다. 옛날 스님들이 인도에 도를 구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높은 산을 넘고, 또 폭풍우와 그 모래사막을 지나갔으며 구법으로 떠나간 스님들 가운데 법을 구해서 살아온 스님은 100명에 하나도 되기 어려웠습니다.

 

 

 

 

부처님의 진리를 구하기 위해서 목숨을 담보로 법을 구해 왔기에 오늘날 우리는 편안하게 부처님 가르침을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옛 사람들은 도를 구하는 데에 있어서는 목숨보다 도를 더 선택했던 거지요. 어째서 이토록이나 도를 구하기 위해서 목숨을 담보로 도를 구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이유가 있었는지. 우리가 한번쯤 생각해 봐야 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육체는 전생에 지은 선업과 악업에 의해서 만들어 집니다. 그렇게 때문에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업력에 장애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좋은 일, 나쁜 일이 생기겠죠? 문제는 ‘고통스러운 일이 생기는 이 현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느냐’ 이게 가장 우리가 해결해야 될 중요한 문제겠죠?

 

 

 

참으로 인생이란 고귀한 것이고, 한번 사람으로 받은 몸 귀한 인생인데, 이 귀한 인생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그리고 이 삶을 얼마만큼 가치 있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를 고민하는 것은 옛 사람이나 오늘날 사람이나 다 같은 것입니다. 오히려 물질이 풍요로운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도리어 도는 뒷전이고, 물질과 이 몸뚱이 일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아무리 현실이 고통스러워도 그것 보다는 도를 선택했어요. 그래서 많은 스님들이 도를 구하기 위해 인도로 향했던 겁니다.

 

 

 

오늘 법문할 경은 42장경으로써 이 경이 중국으로 처음 전해진 시기는 후한 영평 10년(서기67년) 인도에서 중국으로 처음 불교를 전하신 분이 ‘축법난과 가섭마등’이라는 두 스님인데 중국으로 오실 때 본경과 불상만 가지고 왔습니다.

 

지금부터 한 2000년 전에 중국으로 부처님 법이 전해지기 전 그때 당시 임금의 꿈에 금색 옷을 입은 큰 스님 두 분이 중국으로 오시는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이 하도 신기해서 예언가에게 물으니

 

 

 

‘이것은 예사로운 꿈이 아닙니다. 지금 천축,(그때 당시 중국에서는 인도를 천축이라고 했어요.)에서 아주 위대한 도가 지금 중국으로 전해지기 위해서 미리 징조로 나타난 모습입니다. 조금 기다리시면 그 사람이 올 것으로 보입니다. 라고 그랬는데 얼마 후 ‘축법난과 가섭마등’이란 두 스님이 중국으로 왔던 거예요. 그 때 가지고 온 경이 오늘 강의 할 42장경 인데 어째서 부처님의 팔만대장경, 엄청나게 많은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 42장경을 선택했을까 여기 의문이 갈 수가 있겠지만 이 경을 배우면 자연히 알게 됩니다.

 

 

 

 

오늘 우리 불자님들이 그 옛날 스님들이 목숨 걸고 도를 전하기 위해서 그 높은 산을 넘고 모래사막을 건너서 중국으로 전한 이 위대한 법을 여러분들도 배우기 위해 오늘 오시는 길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눈길에 차가 올라오지 못해 길가에다 차를 세우고 눈밭을 헤치면서 여기에 온 보람이 이 경을 통해서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 됩니다.

 

 

 

 

42장경은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 근본 되는 경전으로써 내용은 42가지 장으로 나눠졌습니다. 부처님 경 가운데 본경은 내용이나 체계가 매우 특이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본경은 한때에 설한 경이 아니고 부처님이 여러 근기를 상대로 법문하신 것을 제자들이 엮었기 때문에 다른 경 체제와 조금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자 이제 본문으로 들어가 부처님의 자상하고 거룩한 말씀을 경청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장에서는, 계율을 잘 가져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항상 계행을 가지고 도행을 닦아 청정할 때 비로소 아라한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중생에게는 욕망과 집착 망상이 많아 이것을 다스리지 않고는 어떠한 평안의 경지에 갈 수 없습니다. 아라한이란 모든 번뇌가 소멸된 청정한 마음이며 이 마음을 깨우치는 순간 생사 나고 죽음이 본래 둘이 아니고, 깨우침으로 인해 이 세상의 미혹으로부터 벗어나는 절대적인 자유를 얻었다 그것을 해탈이라 하고 열반이라고 하는 겁니다. 부처가 추구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해탈과 열반을 말하는 거지 다른 건 아니예요. 그래서 그렇게 이룬 분을 성인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항상 계율을 가지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닦아서 청정해 지면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 부처님이 된다. 이런 뜻입니다. 이게 첫 번째 장의 내용입니다.

 

 

 

 

두 번째 장에서는. 애욕을 끊고 무심하면 저절로 도에 들어간다 하였습니다.

 

세속의 모든 애착과 집착을 놓아 버리고 안으로 얻을 것이 없다는 걸 알고 밖으로 또 구할 것이 없다는 걸 알면 이것을 도라고 합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서 항상 도라는 근본 바탕에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일이 참되고 가치 있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장에서는. 머리 깎고 스님이 되었으면 재물을 멀리하고 걸식으로 만족해야 하며 하루 한번만 먹고 거처의 집착을 끊기 위해 나무 아래에서 하룻밤 이상 자지 않아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초기에 스님들은 애욕과 집착을 끊기 위해 일종식과 한곳에 하루 내지 삼일 이상 머물지 말라 했습니다. 출가 수행자라면 마땅히 의,식,주에 초연하고 출가 수행자의 본분을 잘 지녀야 하는데 오늘날 출가인들은 이점에서 다시 깊은 반성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불자들도 물질과 명예에 너무 끄달리지 말고 세속에 초연한 마음을 가질 때 물질이 있고 없는 것에 괴로움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외도의 질문에 나는 머리와 수염을 깎고 이렇게 세상에 누를 끼치지 않고 고요히 다니면서 도를 행한다. 그대가 나에게 그러한 질문은 바르지 않다. 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부처님은 머리를 깎고 하루 일식만 하고 나무 아래서 조차 이틀 밤을 안자고 끊임없이 만행 하셨습니다. 평생을 무 집착으로 사셨는데 우리는 너무나 소유물이 많고 많이 먹고 있습니다. 참으로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수행자라면 마땅히 일종식과 무소유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수행자의 기본입니다.

 

 

 

 

네 번째 장에서는, 십선을 행하고 열가지 악을 경계하라고 했습니다. 천수경 가운데 십악참회가 있죠.

 

거기에서 십악을 행하지 않으면 십선이 되고 십선 을 지키지 못하면 십악이 됩니다.

 

 

 

 

다섯 번째 장에서는, 허물이 있으면 반드시 고쳐야 하고 만일 고치지 않으면 작은 물이 흘러서 강물이 되고 바다가 되듯이 작은 악도 마침내 큰 악이 되느니라. 작은 죄가 있을 적에 빨리 고쳐야지 적은 죄를 가벼이 여겨서 무시하고 그냥 내버려두면 거기에서부터 큰 악이 일어나고 큰 죄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작은 악도 가벼이 여기지 말고 늘 항상 제 때에 허물을 고쳐 갖고 허물이 쌓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허물이 많아지면 고칠 엄두도 나지 않고 쌓이면 나중에 못 고치게 됩니다.

 

 

 

 

여섯 번째 장에서는. 만일 사람이 나에게 악행을 한다면 그 사람에게 오히려 자비심으로 대한다면 재앙은 도리어 복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나쁜 것을 돌이켜만 볼 줄 알면 나쁜 게 도리어 좋아집니다. 그런데 좋은 것을 돌이키지 못하고 바른 마음으로 대하지 못하면 좋은 게 오히려 재앙이 됩니다.

 

 

 

예를 들어 돈이 우리 사람들한테 굉장히 유익하다고 생각하지만 악인에게 돈이 많으면 어떻게 되요. 그 돈을 갖고 나쁜 짓을 하겠죠. 차라리 돈이 없었으면 죄라도 덜 지을 텐데 돈이 있으니까 죄가 된 거예요. 어리석은 자에게 명예가 높아지면 그 명예로 인해서 큰 죄악을 지어요. 예컨대 사심 많은 사람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되면 비리와 재앙이 됩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도 인간인지라 사심이 발동한단 말입니다. 만일 공인으로서 공심을 지니지 못하면 바로 사심이 생기고 자신에게 주어진 고유의 업무를 저버리게 되므로 그 공적인 자리가 큰 재앙 덩어리가 되요. 오늘날 대통령 한 사람의 처신 잘못으로 국론이 분열되고 국가 경영에 혼란이 생겨 삶이 파탄 나는 일이 비일 비재하지 않습니까.

 

하인들의 사심은 작은 재앙이 일어나고 사회 지도층 사람이 사심을 내면 큰 재앙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심 없는 삶을 살아갈 때 모든 일은 진정한 삶이 됩니다.

 

 

 

 

일곱 번째 장에서는, 악인과 상대해서 싸우지 말라고 했습니다.

 

한 어리석은 사람이 부처님이 인자하다는 말을 듣고 시험하기 위해서 부처님을 욕하고 꾸짖었지만. 부처님은 묵연히 듣고 거기에 대해서 변명을 하지 않으므로. 마침내 욕 하던 사람이 말을 못하고 가만있으니까 부처님이 그때서야 말하기를 “내 그대에게 하나 물어보겠노라. 혹시 그대가 누구에게 물건을 주었는데 상대방이 받지 않는다면 어찌 하겠는가.” “받지 않는다면 도로 가져가야죠.” “마찬가지로 자네는 지금 나에게 욕을 했지만 나는 하나도 받지 않았으니 그 많은 욕을 본인이 다 짊어지고 가게”이렇게 타일러고 가르친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니 업이라는 것은 그림자가 형상이 따르듯이 선악 업은 본인에게 따르는 것이니까 삼가 악을 짓지 말고 착하게 살아라하는 그런

 

내용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덟 번째 장에서는. 남을 해치면 반드시 본인에게 좋지 않은 결과가 되니 항상 선행을 하라는 내용입니다.

 

악인이 선인을 헤치는 것은 하늘을 향해서 침을 뱉는 격이고 역풍을 향해서 먼지 티끌을 날리는 것처럼 어진 사람을 헤치면 도리어 재앙은 자기한테 돌아가지 다른 사람한테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착한 사람을 비방하고 어진사람을 욕하지 말라 그래봐야 자기한테 덕 될게 없습니다. 내가 올라서기 위해서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모함하고 괴롭히면 그 재앙은 결국 본인이 받지 누가 받겠냐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착하게 살아야 하며. 남을 비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홉 번째 장에서는. 지식으로는 도를 만나기 어렵고 오직 도는 행할 때 도는 얻는다. 하는 내용입니다.

 

밥을 말로만 하고 먹지 못한다면 주림을 해결할 수 없고 길을 말만하고 실행하지 않는다면 목적지에 갈 수

 

없습니다. 진정한 도는 실행하는데서 얻게 됩니다.

 

 

 

 

열 번째. 항상 복과 덕을 향하라. 마치 횃불을 나누어도 횃불이 줄어들지 않듯이 우리의 복과 덕은 자꾸 나누면

 

나눌수록 복과 덕은 커지지 줄어들지 않으니 항상 복을 많이 짓는 길을 밝혔습니다.

 

 

 

 

열한 번째 장 에서는. 공덕을 많이 지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보시와 공양 공덕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즉 보통 사람에게 공양하는 것보다 착한 사람에게 공양하는 것이

 

공덕이 크고, 또 착한 사람보다는 계행을 지키는 사람한테 공양하는 것이 공덕이 더 크고, 계행 지키는 사람보다는 부처의 도를 이룬 성인에게 공양 올리는 것이 가장 수승 하다라고 하셨습니다.

 

 

 

 

열두 번째 장에서는 어려움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가난할 때 보시하기가 어렵고, 부귀할 때 정직하기가 어렵고, 이성에 대해 참기가 어렵고, 부처님 법 만나기가 어렵고, 악인에게 모함이나 욕을 듣고 참기가 어렵고, 아만심을 없애기가 어렵고, 평등한 맘 갖기가 어렵고, 스승을 만나기가 어렵고, 남의 허물을 할하지 않기가 어렵고, 사람을 교화하기가 어렵고, 현실적인 문제를 만나서 무심하기가 어렵고, 각종 문제에 대해 해결책과 방향을 알기가 어렵다, 그런 열 두가지 어려움이 있다는 내용을 가르친 내용입니다.

 

 

 

 

열세 번째 장에서는, 거울에 때가 없으면 사물이 보이듯이 마음의 때를 벗기면 내 마음을 볼 수가 있다는

 

내용 입니다.

 

 

 

열네 번째 장에서는. 무엇이 선인가. 마음이 항상 진실하고 도를 향할 때 그것이 진정한 선이다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열다섯 번째 장에서는. 일상 모든 일에서 도를 생각하는 마음을 잃지 말라.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도를 떠나면 그 다음부터는 육체가 있으나 정신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활속에서 늘 도에 의지해서 살아야 그 삶이 내용 있게 됩니다. 생활속에 도란 양심과 이기심을 떠난 순수한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 바탕위에 삶이 이뤄질 때 참다운 삶을 영위하는 것이 됩니다.

 

 

 

이 마음이 청정하고 본래 고요한 바탕 위에서 생활을 해야지 물질 경계에 꺼달려 갖고는 우리의 본래 마음을 잃어버리게 되어 불행한 삶의 연속이 됩니다. 만일 우리가 양심을 잃어버리고 행동하는 것은 하나의 짐승들과 별반 다른 게 없습니다. 인간과 짐승의 차별 점은 바로 도를 실천하느냐 아니면 욕망에 의해서 생각나는 대로 이익을 쫒아서 끌려 다니느냐 하는 차이일 뿐 입니다. 도를 위하는 삶을 살 적에 더 이상 세속으로부터 걸리지 아니하고 모든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경계에 들어가게 됩니다.

 

 

 

열여섯 번째 장에서는. 탐욕 때문에 도를 보지 못한다. 라고 했습니다.

 

마치 흐린 물에 바닥을 볼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어리석은 집착 망상심을 가지고는 내 마음에 밝은 성품을

 

볼 수가 없고 내 마음에 밝은 성품을 볼 수가 없다면 우리는 인생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괴로움이라든가 즐거움이라든다 이런 현상을 바르게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즐거움이 아닌데 즐거움이라 생각하고 괴로움을 바로 보면 거기에서 큰 얻음이 있는데

 

무조건 괴로움이라고 싫어하고 그래서 좋아할 일을 좋아하지 못하고 멀리 해야 할 일을 가까이 해서 여러가지

 

혼란에 빠진다 이거예요. 우리가 도를 배운다는 것은 진정한 행복과 안락을 이루기 위함이므로 도를 배워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열 일곱째 장에서는, 천 년의 암실로 한번의 횃불로 밝힐 수 있듯이 우리 마음이 밝아지면 오랜 세월 어리석음에 그 고통도 한 순간에 사라지게 된다고 했습니다.

 

 

 

열여덟 번째 장에서는. 부처님 말씀하시기를 나의 법은 염무염염(念無念念)이라 생각하되 생각이 없는 생각이고 행무행행(行無行行) 행하되 행함이 없는 행을 해야 하며 언무언언(言無言言) 말을 하되 말 없는 말을 하고 수무수수(修無修修)하라. 닦되 닦음이 없는 닦음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이 말을 보면서 굉장히 놀랬어요. 왜냐하면 육조대사가 말하기를 무념으로 근본을 삼는다 하셨는데 그 말과 일치되고 금강경에서 일체 상을 떠나 말하고 행하라는 말과 같기 때문입니다. 42장경은 초기경전이지만 부처님께서 근본을 잘 말씀하신 것입니다.

 

 

 

열아홉 번째 장에서는. 우리가 보고 느끼는 이 모든 것은 무상하고 오직 신령한 깨달음만이 참되다.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진리를 봐야지 늘 변화하고 잠시도 가만있지 않은 이 현상 경계에 너무 속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물질이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것 같아도 물질에 집착하면 우환이 따르고 고통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원한 진리를 향해서 걸어가야지 물질세계에 지나친 집착은 도리어 불행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 물질에 초연 할 수는 없으므로 물질에 집착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을 지혜롭게 이용할 줄을 알아야 됩니다. 즉 물질에 끄달리면 그때부터 내 정신은 없어지고 물질이 나의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거죠. 그래서 옛 스님들이 인적위자(認賊爲子)라 도적놈을 잘못 알아 자식을 삼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도적이 내 집안 물건을 다 훔쳐 도망 갈 거 아닙니까. 그래서 부처님은 내 마음의 진정한 보물을 잘 가질 줄 알아야지 허망한 재물에 탐욕으로 업만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스무 번째 장에서는. 이 몸에는 이름만 있고 실상은 없다. 육체는 사대에 의지하여 언젠가 흩어지는 물위의 거품 같은 것이다 했습니다.

 

 

 

스물한 번째 장에서는. 어리석은 사람은 명예를 좋아하나 초와 향이 스스로 제 몸을 태우듯이 명예와 이익에 집착하면 그 명예와 이익으로 인해 자기를 망치고 뒷날 후회할 일이 되니 항상 정도를 걸어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스물두 번째 장에서는. 재물과 색을 탐하는 것은 비유하건데 어린아이가 칼날에 묻은 꿀을 탐하는 것처럼 혀를 베일 염려가 있는 것처럼 재와 색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망치게 되니 항상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을 가만히 보세요. 재물과 명예와 색을 구해서 엄청난 위험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거는 마치 어린아이가 그 칼날이 날카로운 줄도 모르고 그 다 혀를 갖다 대면서 단맛을 취하고자 하는 것과 같으니 성인이 볼 때는 중생들의 어리석은 행동도 이와 같으니 빨리 깨우쳐서 참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 입니다.

 

 

 

스물세 번째 장에서는. 사람이 세속에 집착하면 감옥보다 심하다. 감옥에는 벗어날 기약이 있으나 세속의 욕망에는 벗어날 기약이 없다. 우리가 세세생생에 나고 죽고 하는 윤회계에 떨어지는 것은 한 번에 끝나는 게 아니라 끝도 없이 여섯 갈래 길에 수도 없이 죽었다가 태어났다가 수 억 만 번을 반복하게 됩니다. 오직 스스로 도를 행함으로써 이 생사윤회 고리를 끊고 영원한 해탈과 자유를 이룰 수가 있습니다.

 

 

 

도를 닦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생사윤회를 벗어날 수 없으니 우리는 이 도를 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윤회라는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직 도에 힘에 의지해서만이 해결되므로 이밖에 어느 누구도 나에게 복을 줄 수도 없고 받을 수도 없어요. 모든 것은 스스로 짓고 스스로 받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잘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잘못 살면서 어떻게 복을 이룰 수가 있겠어요. 그러니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는 부처님 도량을 찾아서 부처님 가르침을 배워야 되고 도를 닦아야 되요. 도를 닦지 않고 해탈의 길은 없어요. 이것을 꼭 명심하셔야 됩니다.

 

 

 

스물네 번째 장에서는. 애욕보다 심한 것이 없나니 만일 색욕 같은 것이 둘이 있었다면 천하에 도를 이룰 자가 없었을 것이다. 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애욕에 대해 이토록 강력한 말씀을 하셨으니 남 여 간에 색욕이 얼마나 생사윤회의 근본인줄 잘 알아야 합니다. 이 내용도 굉장히 많이 불가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만일 색욕 같은 것이 둘이 있었다면 천하에 도를 이룰 자가 없다고 했는데. 돌이켜 보면 세상에 절반은 남자고 절반은 여자 입니다. 그런데 이 절반의 남자와 절반의 여자가 마치 한사람 뿐 인양 죽기 살기로 목숨을 걸고 사랑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말하기를 이와 같이 색욕 같은 지독한 번뇌 망상이 한 개만 더 있었다면 이 세상에 누가 부처가 될 사람이 있겠느냐 한 것입니다.

 

 

 

스물다섯 번째 장에서는. 애욕은 횃불을 들고 역풍 속으로 가는 격이라. 자기 손과 몸을 태울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긍정적이고 좋은 일은 모두에게 유익하나 악한 일은 모두 역풍을 향해 재를 뿌리는 것과 같고 횃불을 들고 역풍으로 향하는 것과 같아 재앙이 되므로 나쁜 짓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스물여섯 번째 장에서는, 어떤 음녀가 부처님을 유혹하려고 부처님에게 다가 와서 유혹을 하였습니다. 이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찌 한개 가죽포대(육체) 속에는 온갖 똥,오줌과 오물이 가득 찬 것을 가지고 와서 여기를 더럽히려고 하느냐 하면서 야단을 쳤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성을 대할 때 이와 같이 정도로써 대한다면 모든 허물에서 벗어나 참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스물일곱 번째 장에서는 나무토막이 냇물을 따라 흘러가되 양 언덕에 걸리지 않고 계속 흘러간다면 마침내 바다에 이르듯 사람이 만일 재물과 색과 명예에 걸리지 않고 수행 한다면 마침내 깨달음의 바다에 이르게 된다. 라고 하셨습니다.

 

 

 

스물여덟 번째 장에서는 여색은 수행에 가장 큰 마장이고 재앙이니 항상 조심하고 피해야 한다. 라고 하였습니다.

 

 

 

스물아홉 번째 장에서는 부득이 여색을 만나게 되면 늙은이는 어머니로 나이조금 많은 이는 누나로 적으면 동생으로 생각하고 어린사람은 자식으로 생각하여 애욕심을 끊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도 잘 안 되면 백골관이나 부정관을 통해서 애욕을 반드시 다스리라고 하였습니다.

 

 

 

삼십 번째 장에서는 도를 닦는 이들은 애욕 멀리 하기를 섶을 지고 불을 멀리 하는 것 같이 하라고 했다.

 

 

 

삼십 한 번째 장에서는 한 사람이 음욕을 다스리기 위해 성기를 끊으려고 하거늘 부처님이 그에게 타일러 말씀하시되 음욕은 마음에서 나오는데 마음을 끊지 못하고 성기만 끊는다고 음욕은 끊어지지 않으니 마땅히 음욕심을 끊도록 마음을 잘 닦으라고 하셨습니다.

 

 

 

삼십 두 번째 장에서는 애욕으로부터 근심이 생기고 두려움이 생기니 애욕이 없으면 근심도 없어지고 길이

 

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삼십 세 번째 장에서는 도를 배우는 사람은 한 사람이 만인의 적과 싸우는 것과 같이 갑옷을 입고 창과 방폐를 가지고 문을 나서되 하 근기는 적을 보자마자 물러서고 중 근기는 용감하게 싸우다 죽고 상 근기는 적을 대하는 즉시 상대방을 굴복하고 승리해서 돌아오는 것과 같습니다. 상 근기는 번뇌를 조복 받고 도를 이루고 중 근기는 정진을 하나 번뇌와 혼란되어 공부를 이루지 못하고 하 근기는 도를 대하자 바로 물러서는 것이라 했습니다.

 

 

 

삼십 네 번째 장에서는 어떤 사람이 수행을 하되 너무 조급해서 점점 번민하드니 결국 물러서려 하거늘 거문고

 

탈 때 줄을 잘 맞추어야 소리가 잘 나듯 수행도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게 해야 도를 이룰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삼십 다섯 번째 장에서는 우리가 공부 하는 것은 쇠를 단련하는 것과 같아 오래도록 풀무질을 해서 잡철을 제거

 

한 후에 비로소 우리가 원하는 좋은 그릇이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수행하는 것도

 

때로는 다소 미련스럽게 한곳만 집중해서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삼십 여섯 번째 장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것 10가지를 말 했습니다.

 

1,삼악도에 벗어나기 어렵고 2, 사람 몸 받기 어렵고 3, 훌륭한 남자 되기 어렵고 4,단정한 육체 가지기가

 

어렵고 5, 좋은 환경에 태어나기 어렵고 6, 신심 있는 불자 부모 만나기 어렵고 7, 부처님 법 만나기 어렵고

 

8, 부처님 법에 신심내기 어렵고 9, 바르게 수행하기 어렵고 10, 부처님 법 이루기 어렵다.

 

 

 

삼십 일곱 번째 장에서는 나의 제자들이 나(부처님)와 멀리 떨어져 있다 해도 계행이 있으면 나를 가까이 하는

 

것이요 내 좌우에 있다 해도 계행이 없으면 나를 멀리 하는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삼십 여덟 번째 장에서는 부처님이 모든 제자들에게 묻되 사람 목숨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으니 몇 십 년 이라고 하니 부처님은 아니다 라고 하셨으며 다른 제자가 말하기를 밥 먹는 사이라고 하니 그것도 아니다 라고 하였는데 어느 제자가 말하되 사람의 목숨은 숨 쉬는 사이에 있습니다. 하니 부처님께서 착하다 네가 도를 아는 구나 하셨습니다.

 

 

 

삼십 아홉 번째 장에서는 너희들은 나의 가르침을 잘 배우고 수행하되 마치 꿀물이 아무리 많아도 모두 달듯이

 

나의 법도 모두 그러하느니라 하셨습니다.

 

 

 

사십 번째 장에서는 도를 행하되 맷돌 돌리는 소처럼 하지 마라. 소가 맷돌을 돌리되 아무 뜻도 없듯이 도를 닦는 이가 형식적으로 몸으로 행하되 마음이 없으면 도를 깨달을 수 없다. 라고 하셨습니다.

 

 

 

사십 한 번째 장에서는 도를 닦는 이는 소가 무거운 짐을 지고 진흙 가운데로 가되 좌우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가다가 진흙을 벗어난 뒤에 숨을 쉬듯 도를 닦을 때 애욕은 저 진흙보다도 심한 줄 알아 앞만 보고 나아가되 도를 이루기 전에는 쉬지 말아야 하느니라.

 

 

 

사십 두 번째 장에서는 수행자는 임금지위 보기를 지나가는 사람 보듯 해야 하며 재물을 보기를 자갈 모래 같이 보아야 하며 좋은 옷보기를 걸레같이 보아야 하며 여자보기를 마른 나무 보듯 해야 하며 좋은 음식 보기를 흐르는 물같이 보아야 하느니라.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42장경에는 수행자들이 바르게 수행하는데 요긴한 말씀들이 기록되어 있으므로 중국으로 처음 불교를 전 할 때 본경을 가지고 오신 것입니다. 불자님들도 이러한 부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현실에 잘 적용하여 살아간다면 최선의 삶이 되리라 생각 됩니다.

 

 

 

 

성불 하십시요.

 

 

 

가엾은 사람

 

 

어리석은 사람이란

남에게 주 돈은 반드시 돌려받는 것인 줄은 알면서도

자기가 지운 죄는 받지 않을 수도 있다고 믿는 사람이며,

가엾은 사람이란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오는 줄은 알면서도

자신에게도 또한 늙음과 병고와 죽음이 온다는 사실을

잊고 사는 사람일 것입니다 .

 

- 라도현(재가수행인)

 

 

참행복

 

다른 이의 삶이 행복해 보일지라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모든 곳에 ,그리고 누구에게나 괴로움은 있게 마련입니다 .

내가 찾아야 할 것은 다른 이의 행복이 아니라

온전한 나의 행복이어야 합니다 .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

그저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이 참 행복의 길입니다 .

 

- 허주 스님 / 은적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