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음보살 염불수행/법상스님

2012. 5. 25. 10:40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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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 염불수행/법상스님

 

불교를 잘 모르는 이들도'관세음보살'이라는 명칭은 익히 들어 알고 있을 것입니다.
예로부터 불교를 믿지 않는 이들도,
어렵고 힘들 때면 의례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고 명호(名號)를 부르 는 것이
우리 민족의 보편적인 신앙이 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관세음보살'이라는 명호의 의미는 '세간의 음성을 관하는 보살'이라는 뜻으로,
사바세계의 중생이 괴로움에 처해 있을 때,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일심으 로 부르면
그 음성을 듣고 곧 구제해 주신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 부르게 된 연유를 부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십 니다.

"세존이시여, 관세음보살은 어떠한 인 연으로 이름을 관세음보살이라 하십니까?"
부처님께서는 무진의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만약 무량백천만억 중생들이 여러 가지 괴로움을 받게 될 때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고, 일심으로 그 명호를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곧 그 음성을 관하고, 모두 괴로움에서 해탈케 하시느니 라."

그렇다면, 관세음보살이 과연 어떤 분이기 에
그렇게 많은 이들이 부르고 신앙하고 있는 것일까요?
관세음보살의 다른 이름이 바로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입니다.
천수경(千手經)에서의 관세음보살이
반야심경에서는 바로 관자재보살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기도 합니다.

이 두 이름 모두 범어 '아바로키테 스바라 보디사트바'를 번역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중국에 들어와 번역되면서, 처음에는 관세음보살로 불리었으나,
이후에 관자재보살로 바꿔 일컬어졌다고 합니다.

원어를 살펴보면, '아바'는 지킨다는 뜻이 고, '로키테'는 본다, 관조한다는 의미로,
이는 '지켜본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스바라'는 '자재하다, 자유롭다'는 의미이므로
이름 그대로 뜻을 새기면 '자유 자재하게 지켜본다'는 뜻이 됩니다.
이것은 '중생들의 온갖 괴로움과 액난에 대해 자유자재하게 지켜보고 살펴 서
그들의 괴로움을 소멸시켜 주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 다.
마치 부모님께서 자식을 가만히 따뜻하고 자비한 마음으로 지켜보듯이
그렇게 중생들을 지켜보시는 분이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우린 관세음보살의 어원에 담긴 속뜻을 잘 알아야 할 것입니다.
세간의 음성을 관한다는 의미는
나라는 주관과 객관계의 일체의 경계를 온전히 바로 관함을 말하며,
보살이라고 함은
우리 내면의 본래자리, 깨달음 보살 자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관세음보살이라고 염불하는 의미는
나와 내 밖의 일체 경계를 관하여 본래면목 깨침의 보살자리에
온전히 방하착 하고, 경계를 공양올린다는 자기의지의 표현인 것입니 다.

우리가 관세음보살 염불수행을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나를 비롯한 일체 세간의 음성, 다시말해 온갖 경계를 바로 관하고
그러한 모든 경계를 녹이고자 온전히 자기내면의 보살자리인,
참나 주인공에 놓을 수 있도록 하는 밝은 방편 수행인 것입니다.
세간의 음성, 즉 온전히 자신과 바깥 경계를 관하고 녹여
보살, 즉 깨달음을 얻기 위해 염불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염불(念佛)이라고 할 때,
염(念)이란, 우리네 마음 속에서 경계따라 일어나는 갖가지 생각,

마음의 조각들을 말하며, 불(佛)이란, 우리네 마음 속에 저마다 갖추고 있는

본래자리, 근본성품, 참나 주인공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말해 염불은 우리마음 '염'과 부처님 마음 '불'이
둘이 아닌 하나임을 깨닫게 하는 밝은 수행인 것입니다.

이러한 관세음보살 염불수행의 공덕을 살펴 보기 위해,
『관음경』[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을 다시 한번 되새겨 봅니다.
관세음보살님은 우리의 온갖 괴로움에 마땅히 몸을 나투어 안락을 주신다 고 합니다.
굳은 믿음으로 관세음보살 명호를 지극 정성으로 염불하면
어떠한 일도 모두 성취할 수 있다고 관음경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관세음보살의 가피가 어떠한지 관음경의 구절을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큰물에 떠내려가더라도 그 이름을 염하면 곧 얕은 곳을 얻게 되며,
또, 도적으로부터 해를 입게 되었을 때,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염하면
그들이 가진 칼과 무기가 조각조각 부서져서 벗어나게 되느니라.
또, 어떤 사람이 수갑과 고랑과 칼과 사슬이 그 몸을 속박하더라도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염하면 모두 부서지고 끊어져서 벗어나게 되느니 라.
어떤 중생이 음욕이 많더라도 항상 관세음보살을 생각하고 공경하면
문득 음욕을 여의게 되고,
만일 성내는 마음이 많더라도 항상 관세음보살을 생각하고 공경하면
문득 성내는 마음이 없어지며,
만일 어리석은 마음이 많더라도 항상 관세음보살을 생각하고 공경하면
문득 어리석음을 여의게 되느니라.

이렇게 되는 도리가 있습니다.
명호를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하였을 때 이렇게 되는 도리 말입니다.
다만 이러한 경전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는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 입니다.

형상을 가진 관세음보살님께서 하얀 선녀복 을 입고 나타나셔서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고 해달라는데로 해주는
그런 형상을 가진 분으로써의 관세음보살님을 불러서는 안 됩니다.

관세음보살이란 앞에서 말했듯이 내면에 있는 '참나'를 의미합니다.
다만 가만히 내면 깊은 곳에 숨어만 있는 참나 주인공이 아닌
적극적으로 세간의 음성을 관하여 온갖 경계를 밝게 녹여줄 수 있는
자기 자신의 본래면목 참성품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관세음보살을 염불한다 함은
'관세음보살님 어서와서 내 괴로움좀 가져가 주세요' 하는 의미가 아니라
내 스스로 세간의 음성, 온갖 경계를 관하여
내면의 본래면목 보살자리에 공양올려 밝게 닦아가겠다는
자기 수행에의 철저한 실천을 의미하는 것이며,
내 안의 관세음보살님을 굳게 믿어 내면의 주장자 밝게 세우겠다는
철저한 대장부 수행자의 방편 정진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염불하라고 해서 다 할 수 있는 것 은 아닙니다.
자신의 의지와 자력, 수행력과 보리심이 없고서는
결코 아무리 좋다고 해도 할 수 없는 것이 염불수행입니다.
그러니 염불수행 또한 온전한 자력입니다.
보살님의 명호를 염불하며 보살님 마음을 연습하는 일이니
자력과 타력이 동시에 하나가 되는 참으로 밝은 방편수행이 아닐 수 없습니 다.

관세음보살 방하착 염불수행은
우리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참자성'을 향한 일심염불입니다.
괴로움(苦)의 원인인 일체의 모든 끄달림, 애욕과 집착(執)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비워버려(道) 해탈(滅)로 안내하는 사성제의 실천행인 것입니다.

관세음보살 염불을 하시며 늘 방하착 하고 놓고 가는 마음 연습을 하셔야 합니다.
마음 속의 참나, 관세음보살에게
염불을 함으로써 일체 모든 경계를 턱 맡기고 나아간다는,

일체 모든 경계를 공양올리고 '나'는 자유롭게 여여하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배가 나아갈 때 곧장 가는 것 같지만

  

배가 나아갈 때 곧장 가는 것 같지만
사실 알고 보면 끝없이 흔들리며 나아간다.


광대가 외줄을 탈 때도 그냥 그렇게 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좌우로 끝없이 흔들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이처럼 세상은 끝없는 진동, 끝없는 흔들림 속에 나아간다.
진통 없는 세상, 흔들림없는 세상은 없다.


세상도 우리의 삶도
그렇게 진동과 흔들림 속에 나아간다.

 

 

* 세상은 미시적으로는 진공요동(양자요동), 거시적으로는 복잡계요동으로

나타나고 나아갑니다.

요동없는 세상, 흔들림 없는 세상은 없다는 걸 잊지 마십시다.

요동없는 세상, 흔들림 없는 세상은 겉보기에는 반듯한 것 같지만 사실은

불완전 투성이니, 얼마 가지 못합니다. 지속성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의 온갖 모순, 미추 선악의 혼돈이야말로 진실로 우리 삶이

올바로 살아있다는 증거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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