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해(智日)가 心天에 솟아오른다

2012. 6. 22. 21:3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728x90

 

지혜의 해(智日)가 心天에 솟아오른다

1

<문>
법정님의 한없는 자비에 가슴벅참을 느끼며 실상을 바로 보려 합니다.
하지만 이 둔한 제자는 죽지 못하고 늘 제그림에 속아 놓쳐버립니다.
어떻게 하면 부처님께 완전히 귀의할 수 있겠습니까?


<답>
진리(眞理)는, 진여법성(眞如法性)은 본래 스스로 원만하건만, 사람들이 굴리는

생각이나 말은 그 자체가 치우침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또렷또렷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인데, 따라서 범부의 지견(知見)은 그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 모두가

<그렇고> <그렇지 않음>으로 나뉘지 않습니까? 이제 <그러함>(是)과 <그렇지

않음>(非)을 '하나'로 가지런히 껴잡아서 표현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 이것이

바로 원융무애(圓融無碍)한 여실상(如實相)인 겁니다. 따라서 원각경에 이르길,

「변론(辯論)할 수 있는 것은 원각(圓角)이 아니니라」고 했던 것입니다.

 

요컨대, 중생심의 진여(眞如)를 깨달아서 '부처'인데, 그런데 진여법성(眞如法性)은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것이니, 결국 부처는 <구경의 깨달음>(究竟覺)을 증득

하는 이가 아닌 겁니다. 왜냐하면 걸음걸음마다 구경(究竟) 아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선현(先賢)들도 이르기를, 「<있는 그대로>이면 빠르거니와, 조작하면

더디니라」했던 것이니, 요약컨대, 원기인(圓機人)은 그저 생각에 즉하여 생각이

없을 뿐이며, 현재에 있어서 생각생각에 머묾이 없는 것, 이것이 바로 현재불

(現在佛)인 겁니다.

 

그저 온갖 반연(攀緣)을 문득 쉬고, 몸과 마음으로 하여금 자유롭게 하세요.

그러면 마음의 하늘에 저절로 <지혜의 해>(智日)가 뜰 것입니다.


-현정선원 법정님의 법문-

 

2

 

<문>
정녕 諸行無常, 諸法無我인 체로 지금 그대로 옳습니까?
무엇을 왜 어떻게 해야 할 지 헷갈립니다.

 

<답>
<지음 없는 보광명지>(無作普光明智)는 <신령한 성품>(靈性)의 <작용 없는

작용>이라, 해와 달의 세력을 빌리지 않습니다. 요컨대, 저 태양의 밝음조차도

'영성'에 의지하지 않으면 결코 스스로는 '밝음'이 될 수 없는 것이니, 그러므로

이 세상을 다만 '밝음'과 '어둠' 만으로 녹여내려 해선 아니 됩니다.

 

지혜광명(智慧光明)이 드러나서 무명(無明)이 사라지면, 비록 면전에 산하대지

(山河大地)가 또렷또렷해도 티끌 만한 한 법도 볼 것이 없는 게 곧 제법실상(諸法

實相)입니다. 따라서 미혹하면 '마음'을 가리켜 '물건'이라고 하지만, 깨달으면

이 세상이 온통 '나의 마음' 아님이 없는 것입니다.

 

사대(四大, 一切萬有의 本質이 四大요)와 오온(五蘊, 現前하는 心身兩面의 모든

現象의 總稱이 五蘊이다)이 본래 빈 것이어서 무아(無我)임을 알아야 합니다.

'무아'란 곧 이 <나>를 포함한 일체존재는 이것이 인연으로 말미암을 뿐이요,

자체성(自體性)이 없는 것이어서, 마치 그림자나 메아리처럼 실다움이 없다는

뜻이니, 이것이 바로 인무아(人無我) 법무아(法無我)를 말하는 근거입니다. 결국

이에 이르면 <짓는 때>에 <짓는 자>도 <짓는 바>도 없는 것이니, 사람도 법도

다 아니기 때문입니다. 요는, 견문각지(見聞覺知)가 낱낱이 다 아닌 것이니,

이러히 현전하는 모든 법을 접하지도 않고, 취하지 않는다면 산하대지(山河

大地)가 다시 어디에 있겠습니까? 잘 믿어지지 않겠지만, 이것이 엄연한 진실

입니다. 지금부터 약 100 년 전에 양자물리학자(量子物理學者)들이 순전히

과학적인 방법으로 <일체 만유의 기본질료(基本質料)인 '양자'(量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던 것이니, 이 밝고 맑은 시대를

사는 현대인으로서 더는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현정선원 법정님의 법문-

 

 

떠나가려 하는데

 

사람들은 기차나 비행기 등의 출발시간에는

늦지 않기 위하여 무진 애를 씁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그 시간에 늦을 것 같으면

땀과 조급함으로 몸과 마음이 흠뻑 젖습니다.

 

그런데 하나뿐인 자신의 인생에 대해

고통을 여의고 해탈을 구하는 데는

그야말로 태만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는 마치 지금 마지막 열차가 떠나려 하는데

온갖 구경에만 정신이 팔린 채

열차가 곧 떠난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있는

어리석은 여행자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 라도현(재가 수행자)

 

 

 

자신의 조건 안에서 행복을

 

사람들 '행복의 조건'에 대한 목록을 미리 만들어 둡니다.

하지만 행복은 내 마음 안에서 찾아야 하고,

내 조건 안에서 만족해야 하는 것이지,

바깥에서 구하려고 하면 얻을 수가 없습니다.

 

힘들지만 밖에 나가서 일을 할 수 있음이,

가족과 함께 밥 먹을 수 있음을 행복이라 여기면,

하루에도 수없이 감사할 일이 생기고

날마다 행복한 날이 될 것입니다.

 

 

- 도영스님(순천 송광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