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을 따르되 조작이 없는 것(隨緣無作)/현정선원

2012. 7. 20. 09:23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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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범정은 차츰 사라진다고 하시면서, 십주초심에 불각을 이룬다 하십니까?
작은 초목이 큰나무로 자랄 수는 있는겁니까?

하 근기로 은혜를 갚을 길은 요원합니다.


<답>
모든 세상사는 인연으로 말미암을 뿐이요, <짓는 자>도 <받는 자>도

없다고 하는 것이 곧 부처님이 설하신 연기설(緣起說)의 근본입니다.

이 <나되 남이 없는 도리>(生卽無生)에 대한 이해가 온전치 못한 사람들로

하여금 만법이 무생(無生)이요, 무상(無相) 무성(無性) 무작(無作)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하기가 매우 어려운 겁니다.

 

따라서 범부들은 이 세상이 시작도 끝도 없이 늘 적멸하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것이며, 입으로는 거창하게 불생불멸(不生不滅)을 말하면서도,

항상 무슨 일을 이루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그 보람으로 나중에

좋은 과보를 얻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이제 <만법이 성품이 빈 도리>(法性空)를 알았으면 인(因)도 비었고

과(果)도 비어서, 끝내 '인'이 '과'를 내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았으므로,

그저 종일 <인연을 따르되 조작이 없는 것>(隨緣無作), 이것이 바로

자취 없는 성인(聖人)의 행리(行履)인 겁니다.

 

요컨대, 모든 학인이 한결같이 얻어지길 갈망하는 이 불과(佛果)라는 것이,

 인과법(因果法) 생사법(生死法) 수보법(受報法) 따위가 아닌, 다시 말해서,

<인과 아닌 인과>가 곧 '불과'임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만약 공부하는 사람이

많은 공력(功力)을 들여서 그 보람으로 나중에 불과를 얻으리라고 여긴다면

이는 마치 모래를 쪄서 밥을짓겠다는 것과 다를 게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사법(生死法)을 떠나서 열반의 저 언덕에 안주하길 바라면서,

막상 하는 짓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곧 애써 생사심(生死心)을 굴려서

열반(涅槃)을 얻으려고 한다면, 이것은 마치 많은 회초리를 이어서 그것으로써

하늘의 달을 따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어요?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미혹(迷惑)을 떠나서 정각(正覺)을 얻는 게 아니고,

각자에게 이미 구족하게 갖추어져 있는 <신령한 깨달음의 성품>(靈覺性)을

 밝히는 것이 바로 깨달음이니, 이것을 저쪽에서는 '부처'라 하고 이쪽에선

'깨달음'이라 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망령된 정식(情識)으로 허공을 더듬고 메아리를 좇는

것과 같은 헛된 짓을 그만 두고, 그저 면전의 상(相)을 보지 않을 수만 있으면,

 내내 그렇게 하기를 쉬지 않는다면, 어느덧 모르는 결에 제가 이미 <그 땅>

에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현정선원 법정님의 법문-

 

 

그림 / 동제 

 

 


 

비 내리는 새벽이면/ 김장동

                     

 

비 내리는 새벽이면

사랑의 날개를 꺽어야지

꺽고 또 꺽어서는

이별하지 않으려고

날개 짓하는 것을

그만 두게 해야지

 

밤마다 찾아와 꿈 깨우는 너

슬픔 때문에

고독을 상실한  가시나무처럼

괴롭히는 마음을

벌주기 위해

남은 날개마저도

꺽어 버려야지

 

비내리는 새벽이면

 

 

 

 

 

 

 

사랑은 / 김장동

 

 

사랑은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사랑이 크면 클수록

더 더욱 볼 수 없습니다

 

사랑은

온몸으로 느끼는 것

언제나

마음 안에서 박동하는 호흡이므로

온몸으로 느껴야 합니다

 

사랑은

상하, 귀천, 빈부,

지위고하가 없습니다

 

사랑은

온몸으로 실천하는 것이기에

 

 

 

 

 

 

빗소리를 들어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