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행복론

2012. 7. 20. 10:0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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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행복을 창조하는 생활

 

 *부처님의 행복론

 


부처님께서는 사바 세계라는 대립과 갈등, 아만과 독선으로 이어지는 세간의 생활을 싫어하고, 인간이 이 지상에서 영위하는 삶을 부정하여 법구경에서 이렇게 설하시고 있다.

 

"그대들의 매일 매일의 삶은 숲속의 나뭇가지에서 나뭇가지로 목표도 없이 분주하게 건너다니는 원숭이의 재주와 흡사하다."

 


그러나 이렇게 세간적 행복의 길을 가차없이 짓밟는 말씀에도 불구하고, 부처님이 성도 후에 중생들을 위해서 45년간 전도에 열정을 기울여서 설하신 것은, 결국 중생들을 보다 더 행복한 길로 인도하는 일이었다.

 


세간적 삶에서 보면 풍요롭거나 좋아 보이지 않는 출가걸식의 생활이 행복과는 동떨어지거나 등지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떠도는 구름같은 수행자들의 생활은, 행복과는 정말 거리가 있는 것이라도 생각될지도 모른다.

 

 

                    

**고타마 싯타르타가 행복을 구하는 사람이였다면, 무엇을 바라고서 행복에

차 있는 듯한 그 고귀한 왕궁생활을 버릴 필요가 있었는가 하고 생각하는 것에도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닐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부처님은 역시 행복을 추구한 사람이었고

부처님이 설하신 말씀은 확실히 중생들을 행복한 길로 인도하는것이었다.

 

[대길상경]이라는 경전에서 부처님은 이렇게 설하시고 있다.

"능히 스스로를 제어하고 청정한 행을 닦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깨닫고

 마침내 열반을 실현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한 인간의 행복은 없다.

 

그때 사람은 생사(生死)의 두려움으로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세상의 헐뜯음과

칭송 .칭찬과 경멸로 마음이 기쁘거나 우울해지지도 않으며, 근심도 없고 성냄도

없어서 더 없는 안온 속에 머물수가 있을 것이다. 인간의 행복은 이것보다

더한 것이 없다."

 

다시 말하면 부처님의 법문은 결국 모든 인간으로 하여금 진정한 행복을

얻도록 하는데 있었고, 진정한 행복이란 다름 아닌 열반을 실현하는 것임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 기도와 행복창조

 

불교는 깨달음의 가르침을 말하는 종교다.

 

진리를 깨달아 바른마음, 바른 행으로써 인간과 국토의 완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것을 [반야경]에서는 "성취중생 정불국토(成就衆生 淨佛國土)"

라고 말씀하고 있다.

 불교를 믿으면 재난이 없어진다는가 불행한 사태가 호전된다는 등 현세적 이익이

있는 것을 말한다.

 

불교가 깨달음의 종교인데, 현세이익의 결과를 가져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깨달음의 진리를 행하기 때문이다.

깨달음이란 생명과 존재의 근원적 실상이다.그러므로 거기에는 불행도 고통도

일체 재난도 없다.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이 가르침을 믿고 마음으로 받고 행으로 닦아 가는데서 본래 완전한 진리공덕이 자신과 환경에 나타나게 된다.

 

 이렇게 완전한 진리의 공덕을 [현전]시키는 것이 기도다.

기도를 통하여 진리의 말씀을 몸 전체로 믿고 행하며 깨닫는다는 것은 그대로

스스로가 진리로 바뀌고 환경을 진리공덕으로 장엄하게 되는 것이다.  

 

구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것이 이루어진다는

알고 일심으로 기도하여 부처님의 공덕생명을 내 것으로 하는데서 행복은

창조되는것이다.

 

도피안사 刊, 광덕큰스님 법문집, "반야의 종소리" 35~37p

내 고향 7월은.......청포도(靑葡萄)

 

 

 

 

 

 

 

 

 

 

 

 

 

 

 

 

 

 

 

7월이 오고, 청포도가 알알이 열리면

푸르게 살다간  한 義人이 다가 온다

古鄕을 떠올리는 牧歌의 詩人이기도

 

울울한 큰숲의 그는 다시 와야 한다

 

 

 

 

 

 

 

 

 

 

 

 

 

 

 

 

 

 

 

 

 

 

 

 

 

 

 

 

 

 

내고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돗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도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먹으면

두손 함뿍 적셔도 좋으렴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청포도 ....... 이육사

 

 

 

 

 

 

이육사(李陸史, 1904-1944)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曠野)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 이육사 시인 「광야(曠野)」-

 

그는 가고 없지만 우리는 그를 생각합니다.
그가 남긴 계절을 생각하고 廣野를 생각합니다.
죄수번호를 자랑스럽게 여겼던 그를 지금 다시 만납니다.

 


 

 


목가적 시인, 민족시인.저항시인. 독립운동가.
본명은 원록(源綠) , 후에 활(活)로 개명.
경북 안동군 도산면 원촌리에서 둘째로 출생.

 

1904년 음력 4월 4일은 그의 생일이다.

1944년 1월16일 새벽 5시에 북경감옥에서 돌아가셨다.
그는 경상북도 안동에서 이퇴계의 14대손으로 태어났습니다.
이 시절 선비의 자녀들이 대개 그러했듯이 육사도 다섯 살 때

할아버지에게서 한문을 배우는 전통적인 한학을 공부했다.


지금은 그가 태어난 곳에 '청포도'詩碑와

그의 외동딸 이옥비여사가 우릴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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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오반니 마라디의 휘파람 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