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8. 31. 16:35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혜천(嵇瀳)스님의 일요 강론: 2556년 8월 5일 신의(信義)
부처님의 가르침을 대기설법(對機說法)이라고 보통 이야기 합니다. 대기설법이라고 하는 것은 청중을 보아서, 그 청중에게 알맞는 이야기를 해 주신다는 거죠. 어떤 청중이 있느냐에 따라서 주제와 내용을 달리해서 말해 준다는 것이 대기설법이예요. 그래서 부처님이 설법에서 주로 많이 사용하신 것은 비유법이예요. 무엇을 비유로 들어서 설명하신 거죠.
오늘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은 부처님께서 불자들에게 비유로서 설법하신 것 중의 하나예요. 가난한 가정이 있었죠. 그 가장이었던 노인은 몸이 좋지 않았어요. 그래서 자기가 죽은 뒤에 아내와 아직 시집가지 못한 세 딸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늘 걱정했죠. 그래서 노인은 간절하게 항상 빌었어요. 내가 죽어서도 내 가족을 부양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그 노인은 부지런했지만, 근근덕신, 그저 남의 집 허드렛 일을 하면서 아주 힘들게 가족을 부양했어요. 그러다 어느 날 그는 죽었죠. 그는 죽는 순간에도 아내와 세 딸에 대한 걱정 때문에 눈을 감을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죽어서도 아내와 딸들을 보살피기를 소원했죠. 그것 때문이었을까요. 그는 죽어서 백조로 태어났는데, 그의 깃은 다 황금이었어요. 황금의 백조가 된 거죠. 노인은 너무 기뻤죠. 그래서 자기 집에 가서 매일 황금의 깃털을 하나씩 떨어트려 줬죠. 아내와 딸은 웬 황금빛 백조가 와서, 매일 깃털을 하나씩 떨러트려 주는데, 그것이 황금이라는 걸 알고 팔아서 부자가 되었죠. 매일 백조는 어김없이 아침에 그 집에 가서, 깃털을 하나 떨어트려 줬어요. 깃털을 팔아서 좋는 집도 샀고, 땅도 샀고, 당연히 부자가 되니까 하인도 뒀고, 너무 행복했죠.
그런데 어느 날 부턴가 그의 아내는 매일 그 깃털을 하나씩 주워서 팔러 가는게 귀찮아지기 시작했어요. 처음에 가난했을 때는 백조가 떨러트려 주는 그 깃털 하나를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시장에 가지고 가서 팔았는데, 이제는 먹고 사는 문제에 걱정도 없었고, 하인까지 두고, 이제 편~안해 졌어요. 그런데 그 놈의 백조가 한번에 많이 좀 떨어트려 주면 좋겠는데, 달랑 한 개만 떨어트려 준단 말이예요. 그 한 개를 맨날 시장에 팔러 간다고 하는 것도 성가시고 귀찮해. 그래서 어느 날 아내는 딸들에게 말했죠. "야! 매일 깃털을 하나씩 줍는다고 하는 것이 성가시고 귀찮지 않냐? 우리 저 멍청한 백조를 잡아서 한꺼번에 싹 뽑아 버리면 어떨까?" 그러자 세 딸들은 펄쩍 뛰었죠. 저 은혜로운 백조를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냐? 처음에는 딸들의 반대가 너무 완강한지라 아내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죠.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참 이상해요. 처음에는 그런 부당한 소리를 들으면, 거기에 대해서 반대하고 반발하는데, 맨날 같은 그 부당한 이야기를 듣게 되면, 언제부턴가 그게 부당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백조를 잡아서 한꺼번에 깃털을 뽑자고 매일 말하는 엄마의 그 말이 어느 날부턴가는 상당히 설득력있게 들리기 시작했죠. "그래~애, 저놈의 백조가 우리에게 인색한거야, 아! 어떻게 그래 맨날 달랑 하나야?" 오늘은 내 생일이니까 두 개를 줄 수도 있고, 아 또 어느 날은 세 개를 줄수도 있을텐데, 왜 맨날 하날까? 그래서 딸들도 백조의 그 황금의 털을 한꺼번에 갖기로 했죠.
아무 생각이 없는 백조는 그 날도 아침 일찌감치 가서 그의 아내와 딸들에게 깃털을 하나 떨어트려 줬죠. 그 순간 몸을 숨기고 있던 아내는 그물을 던졌죠. 그리고 백조를 잡았어요. 그러고는 백조의 목을 틀었죠. 그 순간 황금빛 백조는 어디 가고, 평범한 백조가 죽어 있었죠.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백조가 죽는 그 순간, 그녀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이 동시에 사라졌다는 거예요. 백조의 깃털로 얻었던 그녀의 좋은 집, 백조의 깃털로 얻었던 그녀의 좋은 옷, 그녀의 보석, 그녀의 하인들, 모든 것이 다 사라졌죠. 그리고 가난에 찌들어 있는 다 떨어진 남루한 옷, 본래 그들의 모습으로 되돌아가 있었어요. 그때사 아내는 후회했고, 땅을 치며 통곡했지만, 그 때는 모든 것을 잃은 뒤였죠.
신의(信義)
왜 부처님이 이 이야기를 하셨을까요? 왜 부처님께서 이 황금 백조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 주셨을까요?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얼핏 보면 아내의 탐욕을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아내가 탐욕스러워서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서 백조를 잡아서 목을 비튼 것 같죠. 부처님이 이야기 하시고자 하는 것은 물론 탐욕도 포함이 돼요.
부처님이 백조를 통해서 우리에게 이야기하고자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신의예요. 신의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거예요. 백조는 그들이 내 아내와 내 딸이라고 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아내와 그 딸들은 그 황금 백조가 자기 남편과 자신들의 아버지가 죽어서, 그들을 위해서 황금백조로 다시 태어났다는 것은 알지 못했죠. 매일 찾아와서 황금의 깃털을 떨어트려 주는 그 황금백조에게 그들은 신의를 지키지 않은 거죠. 백조의 모든 것을 빼앗기 위해서, 그 백조와의 신의를 저버리고, 백조를 죽인거죠. 그러자 그들은 모든 것을 잃었죠. 부처님이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그거라고 봐야 돼요. 신의를 저버리는 순간 우리는 모든 것을 잃는다는 거죠.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인간 세계는 신의라고 하는 것으로서 유지가 되죠. 인간 세계에서 신의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죠. 인간 세계는 하나의 원리로 유지되죠. 그것은 신의라고 하는 원리예요. 우리가 자동차를 몰고 도로를 달릴 수 있는 것은 신의 때문이죠. 내가 자동차를 타고 안전히 설 수 있는 것은 신의 때문이예요. 어떤 신의를 말하는 가요? 서로가 지켜야될 신의를 지킨다고 하는 믿음이 없으면, 우리는 길거리에 차를 몰고 나갈 수가 없어요. 물론 버스를 탈 수도 없죠.
저 사람이 내가 달리는 차선을 넘어서 마주 달려오지 않으리라고 하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기꺼이 도로를 달리죠. 내가 도로를 달려가고 있는데, 저 사람이 중앙선을 넘어서 내 차선으로 온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운전대에 앉아서 운전을 할 수 있겠어요. 파란 신호등을 보고 우리가 힘차게 그 차로를 달릴 수 있는 것은 내 차선에서 파란 신호등일 때, 다른 운전자들은 교차로를 건너서 달리지 않는다고 하는 신의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파란 신호등을 보고 교차로를 달려서 건너죠. 만약에 나는 파란 신호등을 보고 달리는데, 누군가가 그 신호등을 무시하고 끊임없이 달려 온다고 생각한다면, 아마 운전을 하고, 도로를 달린다고 하는 것은 아마 지옥의 길을 달리는 거와 같겠죠. 우리의 안전을 담보해주는 것은 신의가 있기 때문이예요. 그 신의는 공동의 신의죠. 너도 그 신의를 지키고, 나도 신의를 지키고, 모든 운전자가 신의를 지키고, 물론 보행자도 신의를 지키죠.
신의가 무너지면 어떤 현상이 올까요? 내 삶이 무너지죠. 다른게 무너지는 게 아니라 내 삶이 무너지는 거예요. 부처님은 우리에게 그것을 말하고자 하는 거죠. 부처님께서 '진실하라'고 말씀하시잖아요. 진실이라고 하는 것도 다른 게 아니잖아요. 신의가 진실이죠. 부처님이 이 황금백조 이야기를 들어서, 불자들에게 말씀을 하신 것은 네 삶은 신의와 연결되어 있다는 거예요. 신의가 없는 삶은 남루한 삶이라는 거죠.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이 신의를 가끔은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죠. 어떤 사람은 이 신의를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사람도 있고. 타인과의 신의를 저버리는 것은 자신과의 신의를 저버리는 거죠. 스스로에 대한 신의는 자기의 삶에 대한 신의이기도 하죠. 이 세상에 신의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도 부처님에 대한 신의죠. 부처님께서 고통받는 모든 중생을 구원하신다고 하는 그 서원에 대한 신의가 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있는 거예요. 만약에 우리가 부처님에 대한 신의가 없다면, 이 자리에 앉아 있지 않죠.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가 뭔가요? 사랑이라고 하는 단어를 제일 좋아하죠. 이거는 내가 설문조사를 안해 봐서 모르겠어요. 뭐 어쩌면 제일 좋아하는 단어가 현대사회에서는 돈일지도 모르죠. 그렇지만 중요한 거는 돈으로다 사랑은 못 사요. 돈으로다는 행복도 못 사요. 사랑이라는 단어보다 더 사랑스러운 말은 없어요. 그런데 이 사랑이라는 것은 반드시 무언가가 전제되지 않으면, 사랑이라고 하는 우리 마음 속의 감정은 성립되지 않아요. 그것이 무엇인가요? 신의죠. 신의가 없으면, 내 마음 속에서 사랑의 감정이 일어나지 않습니다.내가 그를 믿을 수 없는데, 어떻게 그를 사랑할 수 있겠어요? 내가 그를 사랑하는 것은 내가 그를 믿을 수 있기 때문이예요. 그의 신의를 믿기 때문에. 그의 신의를 믿는단 말이예요. 어떤 신의? 나에 대한 신의. 내가 그를 사랑해 주면, 그 또한 내 사랑에 대한 신의를 배신하지 않으리라고 하는 그 신의가 있기 때문이예요.
만약에 그 신의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무장 병력을 세워서, 그 사람을 지켜도 마음은 불안하죠. 옛날에는 동양 뿐만 아니라 중동이나 이런데서도 다 왕실에서 근무하는 남자들은 다 거세를 했습니다. 그 뭐, 한국만 그렇고, 중국만 그런게 아니라 중동도 이슬람권도 다 거세했어요. 우리는 그들을 보통 내시라고 부르죠. 내시라고 부르는 이유는 안에서 모신다고 하는 뜻이에요. 누구를? 비빈들을. 내시부에 속해있기에 그래서 그들이 근무하는 관청이 내시부죠. 왜 그들을 다 거세했겠어요? 왕은 후궁이 많죠. 그리고 왕은 요새처럼 매일 같은 방에서 자지 않습니다. 왕비하고도 매일 같은 방에서 안 자요. 또 같은 방에서 자도 내시가 반드시 입시하게 되어 있지요. 왕비하고 동침을 해도 내시가 반드시 입시를 합니다. 미닫이 문 넘어서. 왕에게 위해를 가할까봐. 왕은 궁녀들도 믿지 못하죠. 암살할까봐. 그런데 그녀들을 관리하는 내시들을 어찌 믿을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다 거세를 하죠.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믿을 수 없으면 물리적으로 거세를 해도 불안하죠. 지켜도 불안하고.
그런데 내가 신의가 있으면, 그를 믿으면, 그가 나를 믿으면, 어디에다 놓아 두더라도, 우리는 편안하게 베게 높이 베고 코를 골죠. 미스코리아가 득실거리는 그 곳에 그 남자가 있어도, 난 아무 걱정하지 않고 잠을 잘 수가 있어요.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신의가 전제되지 않으면, 성립하지 않죠.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죠. 사랑이 식었는가베? 사랑이 식은 것이 아니죠. 사랑은 뭐, 돼지족발처럼 뎁히고, 식히고 하느 게 아니니까요. 그럼 사랑이 식지 않았으면 무엇이? 그것은 신의가 퇴색했기 때문이죠. 그가 나에 대한 신의가 퇴색한 거죠. 신의가 퇴색하고 나면, 우리의 감정도 식어버리죠.
삼국유사에 보면, 도미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백제 왕이 절세 미녀라고 하는 도미 이야기를 듣고, 그녀를 후궁으로 들이기 위해서 온갖 악행을 다 하죠. 결국은 그의 남편을 잡아서, 두 눈을 파고, 그리고는 강물에 버리죠. 그런데 도미는 그 왕의 회유와 협박을 견디고, 그 버려진 남편을 찾아가서 상봉했다고 하는, 그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직도 남아 있는 이유가 어디에 있겠어요? 도미의 신의 때문이죠. 도미 남편의 신의 때문이 아니라 도미의 신의. 도미가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남편과 했던 첫날밤의 그 약속의 신의를 지켰기 때문이지요. 그것 때문에 도미 이야기를 아름다운 이야기로 우리가 기억을 하는 거예요. 때로는 그 도미 이야기로 연극을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드라마 단막극을 만들기도 했죠.
우리는 도미 이야기를 사랑 이야기라고 보통 생각하지만, 도미 이야기는 도미의 신의에 대한 이야기죠. 우리가 그렇게 굳게 믿는, 우리가 그렇게 아름답게 여기는 사랑만큼 쉽게 변하는게 없습니다, 사실. 전혀 안 변할 것 같은 사랑보다 더 빨리 변하는 것이 없어요. 사랑은 카멜레온과 같죠. 굉장히 잘 바뀝니다. 그러나 신의가 있으면, 변하지 않죠. 그 사랑이라고 하는게.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금속이 뭔가요? 그렇죠. 금이죠. 왜 금을 인간이 그렇게 사랑하는 줄 아세요? 금을 보면 인간들이 눈동자에 하트를 막 그려대고, 왜 인간들이 그렇게 금을 좋아하는지 아세요? 예? 그래요. 금은 불변해요. 금이라는 금속은 수 천년이 가도, 그 금의 속성 자체가 불변해요. 일단 광석에서 금을 추출해서, 그 금을 만들면 수 천년이 가도 금은 그대로예요. 옛날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삼천년, 사천년, 오천년 전에 황금으로 만든 것을 발견했을 때, 금은 고대로예요. 이 지구 상에 금속 중에 변하지 않는 것은 금밖에 없어요. 산화하지 않는 것. 은도 산화하걸랑요. 은도 오래 묵으면 산화돼요. 은이 시커매지는 것은 그것이 산화하는 현상이예요. 근데 금은 산화라고 하는 자체가 없어요. 그래서 인간이 금을 가장 좋아하는 거예요.
어떤 분이 그런 말씀을 하세요. 아니 다이아몬드도 안 변하는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다이아몬드는 아, 갑자기 생각이 안나네. 다이아몬드는 어떤 화학물질에 놓으면 다이아몬드는 녹아요. (주: 다이아몬드는 불에 녹는다고 들었는데....) 다이아몬드라고 하는 광석 자체는 녹는다고요. 근데 금은 불변이예요. 녹여도 금이야. 금은 녹여도 금이고, 두드려도 금이고, 패도 금이고, 갔다 버려도 금이야. 그래서 인간이 금을 가장 사랑하는 거예요. 우리가 인간세계에서 정말 행복하려면, 금과 같은 신의가 있어야 돼요. 왜 부처님이 황금빛 백조, 황금의 백조를 이야기 하겠어요. 황금의 백조인 이유는 황금은 불변이기 때문이예요. 즉 노인이 가족에 대한 헌신과 사랑은 불변이예요. 그래서 황금이예요.
다이아몬드로 빼줘도 될텐데... 이런 이야길 하면, 다이아몬드는 요새 사람들만 좋아하지 않냐 하실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아요. 다이아몬드를 최초로 세팅해서, 그 보석으로 그것을 간직한 사람은 인도 사람들이예요. 삼천년 전에 인도에서 최초로 다이아몬드를 가공했어요. 세계에서 최고 큰 다이아몬드도 인도산이예요.그 다이아몬드를 차지하기 위해서 인도의 역대 권력자들이 죽고 또 죽었죠. 그 다이아몬드를 최후로 차지한 것은 지금의 영국 왕실이죠. 그 다이아몬드는 지금 영국 왕실에 소장되어 있어요. 인도를 통치했던 영국 왕실에서 당연히 그 다이아몬드를 마지막으로 차지했죠. 아, 물론 마지막이라는 말은 제가 취소하겠습니다. 그 다이아몬드가 앞으로 누구 손에 또 들어어갈지는 그건 앞으로 알 수 없는 거예요.
백조의 깃털이 다이아몬드가 아니고 황금인 이유는 그것은 불변이기 때문이예요. 변하지 않는 것. 오늘의 주제는 신의입니다. 신의. 여기까집니다. 다함께 합장하시죠.
우러러 온 법계에 충만하신 부처님! 저희들이 불변의 황금처럼 저희들의 신의도 불변이기를 원합니다. 불변의 신의로 제 삶을 윤택하게 하옵고, 제 삶을 장식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저와 저의 가족의 사랑이 황금의 빛처럼 불변의 사랑이기를 원합니다. 오늘 일심으로 부처님께 기도하오니, 부처님의 약속의 말씀도 불변의 신의이기를 원합니다. 싸두 싸두 싸두.
혜천스님 - 초기불교전공 흥천사주지
Lina Santos의 열창
01. Amalia Rodrigues - Barco Negro (검은돗배)
06. Bevinda - Ja Esta (이젠 됐어요)(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11. Misia - Fado Quimera 12. Misia - Fado Triste 13. Mariza - Transparente 14. Katia Guerreiro - Esquina De Um Tempo (시간의 모퉁이) 15. Cristina Branco - Ai Vida (아 인생이여)
16. Madredeus - Destino(O Espiacuterito da Paz)
포르투갈 리스본의 바스코 다 가마 교(Vasco da Gama Bridge) 파두(FADO)는 포르투갈의 전통음악이다.
프랑스의 샹송이나 이탈리아의 칸쏘네가 있다면 포르투갈에는 파두가 있는 것이다. '운명' 또는 '숙명(Fatum)'이라는 뜻을 가진 파두(Fado)는 그늘진 역사를 가지고 있는 포르투갈의 민속음악으로 '아말리아 로드리게스(Amalia Rodrigues)'에 의해 국제적인 음악장르로 자리잡게 됐다.
포르투갈 정부는 지난 1999년 10월 6일 아말리아 로드리게스가 79세를 일기로 타계했을 때,
포르투갈은 1640년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과 1974년 무혈 쿠테타로 인한 승리의 영광을 뒤로 한채 고단한 역사와 함께 하고 있다.
그런 침략과 압제의 역사 때문에 포르투갈의 음악 파두에는 슬프고 어두운 그늘이 숨어있다. 그리고 그런 포르투갈의 정서를 가르켜 사우다드(Saudade)라고 하는데, 우다드는 갈망, 동경, 향수, 슬픔과 외로움이 겹겹이 쌓인 포르투갈 특유의 '한'을 의미한다.
파두에서 베어나는 슬픔의 근원을 바로 이 사우다드에서 찾을 수 있고, 파두가 슬픔 운명이 란 뜻을 지닌 'Fatum'이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것도 이와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柏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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