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나는 불이(佛二) / 혜국스님

2012. 9. 8. 06:26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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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나는 불이(佛二) / 혜국스님


                                   


나는 혼자서만 살수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다른 인간들만의 힘에 의지하여 살수있는 존재도

아닙니다. 인간을 비롯하여 이 우주자연 속에 있는

 

모든것들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가 '나'입니다.



'나'와 우주자연과의 관계는 불이(佛二)입니다.
불이는 둘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주자연이 나의 주인이 되고,

내가 우주자연의 주인이 되는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때문에

불이라고 하는것입니다.



자연 속의 공기를 예로 들어 봅시다. 공기가 없으면 나는

한순간도 살수가 없습니다. 호흡을 통하여 우주자연의 에너지인

공기를 넣어주기 때문에 생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대우주자연 속의 땅{地}, 물{水},태양열에너지{火},

공기{風}라는 네가지 원소{四大}를 빌려 지금의 몸을

이루고 있고,

 

그 큰지수화풍의 원소가 우리를 지탱시켜 줄뿐아니라
먹여 살려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이며, 우주자연은 무엇입니까? 

이 우주자연은 큰 나요, 우주자연은 나를 살려주는 주인이며

고향집입니다. 이렇듯 우주자연이 나의 집일진데, 가는곳마다

내집 아닌 데가 어디에 있으며,

 

내가 주인 아닌 곳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어디에서든지 나는 대우주자연의 주인일 수밖에 없는것입니다.

나아가 저나무 한그루 풀한포기를 볼때도 고마운 마음이

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언제나 나를 위해 맑은 공기를 만들어내고

 있으니 어찌 고맙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실로 우주자연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낼줄아는 사람은 우주자연을

'나'의 주인으로 삼게 되고,우주자연이 주인이 되면 나무한그루,

새한마리, 꽃한송이, 물한방울뿐만 아니라

 

부모, 형제, 이웃사람 한분 한분이 '나'를 위해 있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되니,

가는곳마다 주인 노릇을 하지 않을 수가 없고

 

어디를 가도 우주 자연의

대도(大道)속에 머물러 있게 되는것입니다.



이렇게 내가 이 세상의 주인이 되어 대도를 누릴 수 있게 되면

머무르는 그 자리가 부처님의 국토요,극락세계

아닌곳이 없게됩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대한 불평불만이 '나'속에 꽉차있으면 비록 극락
에 가있다 할지라도 그 극락이 지옥으로 변해버립니다.



그러므로 진정 극락같은 삶을 살고자 한다면 '나'의 욕심과

이기심을 비우고 마음의 문을 열어, 우주 자연과 하나가 되고

서로 서로 주인이 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물론 이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주자연에 대해

자꾸자꾸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고 사랑을 해보십시오.

능히 자연을 감지하고 맑은 깨달음을 얻을수 있을 뿐

아니라, 차츰차츰 우주자연과 불이가 될수있습니다.

 

또 수행 정진하여 마음을 밝히게 되면 저절로 우주자연과

둘이 아닌 자리로 나아가게 됩니다.

             

                           

 

혜국스님의 법문입니다

자연이 있으므로 모든 생명체가있고 생명체가 존재하니
너와 내가 있음이니 이 세상에 귀하지 않은것이 없고
이 세상에 쓸모 없는것이 없음이니 우리 모든중생들이
스스로 맑혀 자신과 주변과 자연을 지킨다면
바로 그자리가 극락정토 일것입니다
 
내주변 인연에게 감사함으로 나를 소중이 할것이요
나를 소중이 함으로 내 주변인연들을 소중이 할것이니
이렇다며 작금에 벌어지는 온갖 추한것들이
사라질것입니다 더러운 살육과, 치정들, 추행들, 욕심들,
내안의 온갖 추한 것 들을 버려야만 주변도 밝아질것입니다
 
원공법계제중생자타일시성불도(),,,

 

 

 

수행자의 길

 


너무 좋아할 것도 너무 싫어할 것도 없다.
너무 좋아해도 괴롭고, 너무 미워해도 괴롭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고, 겪고 있는 모든 괴로움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이 두 가지 분별에서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늙는 괴로움도 젊음을 좋아하는 데서 오고,
병의 괴로움도 건강을 좋아하는 데서 오며,

죽음 또한 삶을 좋아함, 즉 살고자 하는 집착에서 오고,

사랑의 아픔도 사람을 좋아하는 데서 오고,
가난의 괴로움도 부유함을 좋아하는 데서 오고,

이렇듯 모든 괴로움은 좋고 싫은 두 가지 분별로 인해 온다.
좋고 싫은 것만 없다면 괴로울 것도 없고
마음은 고요한 평화에 이른다.

그렇다고 사랑하지도 말고, 미워하지도 말고
그냥 돌처럼 무감각하게 살라는 말이 아니다.

사랑을 하되 집착이 없어야 하고,
미워하더라도 거기에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사랑이든 미움이든 마음이 그 곳에 딱 머물러 집착하게 되면
그 때부터 분별의 괴로움은 시작된다.

사랑이 오면 사랑을 하고, 미움이 오면 미워하되
머무는 바 없이 해야 한다.

인연 따라 마음을 일으키고, 인연 따라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집착만은 놓아야 한다.

이것이 ‘인연은 받아들이고 집착은 놓는’
수행자의 걸림 없는 삶이다.

사랑도 미움도 놓아 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수행자의 길이다.

 


"사람이 죽으면 흙과 더불어 살지만
사는 동안은 사람과 더불어 사는 거겠지요.
사랑은 누구를 기다리며
의자를 비워 두는 일일 것입니다.

누군가 당신을 부르기 전에,
당신이 먼저 그리운 누군가를 불러보세요.
적극적이지 않으면 삶은 더 외로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