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0. 26. 11:57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눈먼 스승
“눈먼 자가 사람들에게 잘못 지시하는 것은
모두 고기 눈알을 밝은 구슬로 잘못 알고서 명칭에 머물러 이해한 것이요,
사람들에게 맡아 유지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곧 눈앞의 지각(知覺)에 머물러 이해한 것이요,
사람들에게 쉬고 또 쉬라고 가르치는 것은
곧 생각을 잊은 텅 비고 고요함에 머물러 이해한 것이요,
쉬어서 감각도 지식도 없는 곳에 다다르면 흙이나 나무나 기와나 돌과 같은
것이나 바로 이러한 때에 혼미한 상태가 아니다 라고 하는 것은
묶인 것을 풀어주는 방편의 말을 잘못 이해한 것이요,
사람들에게 인연을 따라 비추고 돌아보되 악한 생각이 앞에 나타나게 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은 정식(情識)에 집착하여 이해한 것이요,
사람들에게 다만 놓고 비워버려서 자연에 맡겨두고 마음을 내거나 생각을
움직임에 관여치 말 것이니 생각은 일어나고 사라지지만 본래 실체(實體)가
없는 것이므로 만약 이것을 진실하다고 여겨 집착한다면 생사심(生死心)이
생긴다라고 가르치는 것은
자연체(自然體)에 머물러 그것을 구경법(究竟法)으로 여겨 이해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여러 병은 도를 배우는 사람의 탓이 아니라, 모두 눈먼 스승이 잘못
가르친 때문입니다.”
?금강경?에 “머무름 없이 그 마음을 낸다.”고 하였듯이, 마음에 계합하려면
머무름이 없어야 한다. 머무름이 있다는 것은 곧 어떤 모양의 식(識)을 분별하여
그 분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온 세계가 오직 하나의 식일 뿐이라면, 따로 머물 곳이 없다. 그러므로 마음은
깨끗하다고 여겨도 안되고 더럽다고 여겨도 안되며, 흘러간다고 여겨도 안되고
머물러 있다고 여겨도 안되며, 이렇다고 해서도 안되고 이렇지 않다고 해서도
안되고 이렇기도 하고 이렇지 않기도 하다고 해서도 안된다.
오직 식일 뿐 다른 둘이 없다. 그러므로 분별에 머물러 둘, 셋이 나누어지면
벌써 망상에 떨어진 것이고, 깨끗한 마음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관(觀)하고 저렇게 유지하며, 이렇게 챙기고 저렇게 놓아버려야
마음을 깨닫게 된다고 가르치는 것은 모두 잘못된 견해와 집착을 풀어주기 위한
방편상의 말일 뿐, 공부인이 진실로 의지할 그런 이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방편이란 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한 가짜돈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방편이 인연이
되어 도(道)에 들면 다행한 일이지만, 방편을 도에 들어가는 참된 길이라고 여겨
붙잡고 의지한다면 방편은 또 하나의 장애가 될 뿐이다.
이처럼 선문에 들어가는 정해진 길이나 문은 없기 때문에 선문(禪門)은 문 없는
문이다. 즉 특정한 수련의 과정을 아무리 오래 거치고 특정한 수행방법에
아무리 익숙해져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선문에 들어가는 것을 보증해주지는
않는다.
이러한 수행이라는 것은 모두 일정한 형식의 조작의 과정으로서 특정한 병통의
치유에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선에의 입문과 직접적 관계를
가질 수는 없는 것이다.
선(禪)이란 마음을 조작하는 일[유위(有爲)]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조금도 더하거나 덜할 수가 없이 완전무결[무위(無爲)]하기 때문이다.
선은 지금 자신의 마음이 이러한 본래의 마음임을 자기도 모르게 확인하는
것이지, 특정한 모습의 분별된 마음을 취하는 것이 아니다.
즉 선은 취사선택(取捨選擇)의 행위를 통하여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진실을 깨닫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진실을 깨닫기만 하면 어리석음은 본래 없다.
따라서 조용한 곳에서 좌선(坐禪)하는 행위도 ‘병을 따라 약을 쓰는 하나의
방편’일 뿐이다. 만약 그것이 곧 선이라거나 선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여긴다면 이것은 수단에 머물러서 목적을 상실하는 어리석은 짓일 따름이다.
선 공부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방편을 얼마나 오랫동안 갈고 닦느냐가 아니라,
선을 향한 얼마나 ‘진실하고 견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문 없는 관문[무문관(無門關)]을 통과하는 길은 눈을 밖으로 향하여 이리저리
살피고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눈에 자신을 맡겨버리는 것이다.
원래 갖추고 태어난 내면의 눈만이 본래부터 그 길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증시랑에 대한 답서⑶) - 無事人
그리움만 쌓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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