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 속의 해탈

2012. 11. 2. 09:23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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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 속의 해탈

 

“옛날에 어떤 사람이 선지식(善知識)에게 묻기를,

‘세계(世界)가 이렇게 뜨거우니 어느 곳으로 피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하니, 그 선지식이 말하기를, ‘펄펄 끓는 가마솥과 이글이글 불타는 화로 속으로 피하라.’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그 사람이 다시 묻기를, ‘이렇게 펄펄 끓는 가마솥과 이글이글 불타는 화로 속에서 어떻게 피하겠습니까?’라고 하니, 선지식이 말하기를,

 ‘모든 고통이 다다를 수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원컨대 거사(居士)께서는 하루하루 가고․머물고․앉고․눕는 가운데 다만 이와 같이 공부하여서 저 선지식의 말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곧 제가 효과를 본 약방문(藥方文)입니다.”

어리석은 중생들은 세속에서 매일 매일 번뇌를 맛보며 살아가고, 그 삶이 다시 업을 낳고 업은 다시 세속에서 번뇌에 가득한 삶을 살아가게 만들지만, 오랜 동안 수행을 닦은 보살이나 깨달음을 얻은 부처는 세속을 벗어난 곳에서 번뇌가 없는 즐겁고 깨끗한 삶을 살아간다고 말한다.

중생이 사는 세상은 욕계․색계․무색계의 세 가지 세계와 여섯 갈래 윤회의 길이지만, 깨달음을 얻어 해탈한 부처는 이 모든 곳을 벗어난다고도 말한다. 그리하여 세간과 출세간을 나누고, 범부와 성인을 나누고, 어리석음과 지혜를 나누고, 속박과 해탈을 나누고, 번뇌와 열반을 나누어서는, 이쪽을 버리고 저쪽을 취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쪽과 저쪽을 나누어서, 한 쪽을 좋아하고 다른 쪽을 싫어하며, 한 쪽을 취하고 다른 쪽을 버리려고 한다면, 영원히 목적한 바를 성취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와 같이 이쪽과 저쪽을 나누는 것은 늘 서로 연기하여 발생하므로, 어느 한 쪽은 버리고 다른 쪽만 취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버리면 모두를 다 버리든지 취하면 모두를 다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이 연기법(緣起法)의 속성이다. 세간 없는 출세간이 있을 수 없으며, 범부 없는 성인이 있을 수 없으며, 어리석음 없는 지혜가 있을 수 없으며, 속박 없는 해탈이 있을 수 없으며, 번뇌 없는 열반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쉽사리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상대법의 속성을 무시하고 분별하여 한 쪽은 취하고 다른 쪽은 버리려고 한다면, 이것은 불가능한 일을 하려는 어리석은 짓이다.

 

요컨대 이것은 공(空)이 곧 색(色)이고, 색이 곧 공으로서 공과 색은 결코 다른 것이 아니라는 ?반야심경?의 가르침과 같은 것이다. 공이 곧 색이고 색이 곧 공이듯이, 진실로 법을 있는 그대로 올바르게 보면, 세간이 곧 출세간이며, 범부가 곧 성인이며, 어리석음이 곧 지혜이며, 속박이 곧 해탈이며, 번뇌가 곧 열반이다.

그러므로 세간도 없고, 출세간도 없고, 범부도 없고, 성인도 없고, 어리석음도 없고, 지혜도 없고,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고, 번뇌도 없고, 열반도 없다.

이러한 여러 가지 상대법들은 다만 분별로 말미암아 의식 위에 나타나는 모습들일 뿐이니, 있다거나 없다고 할 수 없다. 분별에 구속되어 모습에 머물면 그 모습은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분별에서 벗어나 모습에 머물지 않으면 모든 모습은 허망한 꿈과 같은 것이다.

하나의 마음이 이렇게도 느끼고 저렇게도 느끼는 것이다. 마치 동일한 물이 여러 가지 물결로 보이는 것과 같다. 물결만 보면 서로 다양하게 다르지만 그러한 물결들은 모두가 동일한 물의 움직임일 뿐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분별하여 아는 모습만 보면 번뇌가 있고 해탈이 있으며 중생이 있고 부처가 있지만, 그 번뇌와 해탈, 중생과 부처는 사실 하나의 마음일 뿐이다.

이 사실이 분명하다면 번뇌와 해탈이 다르지 않고, 세간과 출세간이 다르지 않고, 중생과 부처가 다르지 않음이 명백하다. 그러므로 뜨거운 번뇌를 피하는 길은 번뇌 밖에 있지 않다. 번뇌 속에서 번뇌에서 벗어나면, 번뇌는 더 이상 번뇌가 아니다.

 

(유시랑(劉侍郞)에 대한 답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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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어머니

 

 

 

어머니의 가을은

종일 흡족하여

여유있고 향기롭습니다

 

신발 한 짝도

저만치 버려둔 채

콩타작 삼매경에

빠졌습니다

 

풍성한 햇살아래

어머니의 마음인양

대봉감도 주렁주렁

달콤하게 익어갑니다

 

객지로 떠나보낸

자식들 생각으로

하루해가 금방

산그늘에 걸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