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소리 영원하리(광덕스님의 열반송)/성타스님|

2012. 11. 2. 09:38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화엄경·보현행원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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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소리 영원하리(광덕스님의 열반송)/성타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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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덕큰스님 열반송은 반야와 화엄 소식이 함께 내재되어 있습니다. 반야가 주로 '없다'는 소식을 전하는 반면(그러나 참된 반야는 진실 된 有의 소식입니다.이걸 말슴하시는 분이 그렇게 많지 않으시더군요), 화엄은 '없는 속의 있음'을 알려주지요. 큰스님의 열반송이 바로 이 소식입니다.

 

성타스님의 열반송 해석은 제가 보기에 올바르게 해석하시는 것이 아닌 듯합니다. '광덕스님이 살았던 현세는 겁전이요, 그가 열반한 뒤의 세계는 겁후이다'--->이렇게 해석하시면 큰스님 열반송을 크게 그르치는 우를 범할지도 모릅니다.

 

겁전 겁후는 시공의 소멸을 뜻합니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겁전이요 겁후입지요
!별의 눈으로 겁전은 우리가 생기기 전, 겁후는 우리가 생기고 난 세계인데, 반야안으로 보면 이 두 세계가 바로 지금!이란 말입니다. 겁전 소식이 우리를 통해 겁후(?)에 찬란히 나타나는 거에요! 그것이 바로 '세간의 경계가 여래의 경계'라는 화엄경 소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타스님은 불국사 회주로 계시던 분인데, 큰스님을 매우 존경하는 분으로 저는 압니다. 그런데 스님의 글 속에 다소 제가 아는 부분과 다른 부분이 있어 몇 가지 제가 아는 부분을 말씀올립니다.

 

1.큰스님은 출가 동기가 6.25가 아니라 결핵에 걸리시어 요양 목적으로 석달 분의 쌀을 가지고 범어사로 가신 것이 바로 출가로 이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물론 그 전에 부모님, 그리고 어머니처럼 따르던 큰누님마저 어린 나이에 잃으시어 생사의 비통함이 말할 수 없었겠지만요...누생의 근기가 깊으신 분들은, 이런 식으로 '우연히' 출가하시는 분들도 많으십니다.

 

큰스님이 그렇게 범어사에 가셨을 때, 스승이신 동산 옹사께서는 금방 큰스님의 근기를 알아 보셨지요! 그래서 요양하러 온 병약자를, 그 자리에서 바로 선방으로 보내셨다고 합니다. 큰스님 역시, 그 때까지만 하더라도 천주교 교인으로 한번도 겪지 못한 불법의 세계로 바로 들어가셨고요...

 

2.소천선사와 금강경으로 각운동을 하신 것은 수행을 하러 만행을 하신 게 아니라, 제2의 스승이신 소천선사의 각운동을 도와 드리는 의미가 더 컸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3.해인사 주지 사건은 성철큰스님이 광덕큰스님의 고집(
?)에 두 손 드신 것이 아니라, 평소 성철큰스님께서 사제이신 광덕큰스님의 올곧은 성품을 아시기 때문에 큰스님을 공경하는 의미로 당신의 뜻을 거두어 들인 것으로 보시는 게 아마 타당할 겁니다. 두 분 사이에는 '피우고 거둘' 고집이 이미 없습지요...^.^

 

백련암 계신 일부 분들이 성타스님의 이 부분을 보시면, 또 야단(
?)이 날듯..에고..그런게 아닌데...

 

성타스님의 글 중에,'스님의 법문은 항상 대중 속의 생활과 맞닿아 있어 많은 감
흥을 불러 일으켰다'는 대목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광덕큰스님의 사상이 다른 큰스님들과 다소 다른 부분이 바로 이런 부분입니다. 큰스님의 마음엔 언제나 중생의 아픔, 그리고 비원이 가득 차 계셨지요! 그러므로 법문 자체가 대부분이 현실과 맞닫아 있습니다! 당신 공부 경계나 읊조리고 아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닌, 대중들 앞에서는 언제나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들 중심으로 사자후를 설하셨습니다.

 

원글  그의 소리 영원하리(광덕스님의 열반송)/성타스님

 

새로운 인생창조

 

창조적 행동자가 가는 길

 

우리의 몸은 육체이고 우리를 둘러싼 환경 모두는 물질적 환경이다. 우리의 마음을 오고 가는 것은 감각과 감정과 사유의 온갖 현상들이다. 때로는 밝은가 하면 곧 어둡고, 기쁜가 하면 슬픔이 깔린 어둠이 어느새 가득 밀려와 있다. 앞을 가로 막는 절벽을 보는가 하면 절망적인 늪을 느낄 때도 있다.

 

한마디로 말할 수 없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는 혹은 웃고 혹은 괴로워하고 혹은 절망을 안고 총총 걸음으로 달려간다. 머물러 있을 수도 없다. 그렇다고 물러 설 수는 더욱 없다. 이것이 범부들의 삶의 마당이 아닌가. 혹은 얻고 성공하고 기뻐하지만 그것은 소용돌이 속에 나타난 한 때의 그림자다. 그렇다고 금방 죽는 것도 아니다. 죽지 않는 것도 아니다. 죽어서 죽는 것도 아니다. 알 수 없는 것이 알 수 없는 길을 가고 있는 것인가도 한다.

 

그런데 우리 불자들에 있어서는 그게 그런 것이 아니다. 부처님의 지혜의 눈으로 밝혀낸 진리생명을 살아 가고 있는 것이다. 비록 겉모습은 아무리 거칠고 추하다 하더라도 현상은 실이 아니다. 현상은 무이고, 그 존재성은 공이다. 일체 현상이 없는 것이며 일체 사물의 현상이니 본성이니 따위는 도무지 무다. 여기서 비로소 위대한 자기, 위대한 생명이 열려 오는 것이다. 허위를 벗고 허무를 넘어서 진실한 불성 생명을 사는 것이다.

 

불자의 삶이란 온갖 장애와 폭풍우 속을 살아가되 실로 그 내면에서는 무한자재, 원만 구족한 불성 생명을 가꾸어 가는 생활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불자들의 온 생애는 실로는 환희의 생활, 건강의 생활, 진실의 생활, 아름다움의 생활일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러므로 불자들의 눈에는 현상대로의 현실이 있는 것이 아니다. 현상 속에 현상이 아닌 부처님의 원만 공덕세계가 순수하게 드러난 것을 본다. 어떤 소망이 있어서 그렇게 되기 위하여 그렇게 보는 수행을 쌓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진실 면목이 법성진여이기 때문이다.

 

순수하게 진리 현실을 관해가면 우리 환경에는 진리의 내실이 그대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불을 밝히면 우리 환경은 저절로 밝아 오는 것과 같다. 그래서 불자들은 공덕을 바라고 부자의 믿음을 사는 것이 아니라, 진리 자체로서 순수하게 살아가는 것 뿐이다. 여기서 성공이 오는 것이다.

 

불자의 수행은 순수한 진리에의 귀일이며 불성은 심에의 복귀이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부처님 공덕으로 장엄하고 그를 둘러싸는 일체사가 부처님의 위신력의 표현임을 안다. 생각하고 움직이고 온갖일을 경륜하는 그 사이에 이루어지는 일체사는 부처님 공덕 충만이요, 자비 위신력 원만임을 보게 된다. 일심으로 부처님을 염하고, [마하반야바라밀]을 염하여 불성 본분을 살아가는 이들 불자에개는 오직 용기와 검사와 환희가 넘치는 것이다.

 

또한 불자가 염하는 세계에는 부처님 공덕의 원만심 밖에 없다. 청정과 아름다움과 원만조화와 건강과 환희가 넘칠 뿐이다. 그것만을 생각하고 염한다. 진리를 염하여 진리를 이루는 것이다.

 

만약에 불행을 생각하고 불행을 인정하고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기에 몰두한다면 그것은 고통을 위한 기도요, 불행을 부르는 작법일 수 밖에 없다. 불자에게는 결코 이런 것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순수 생명이 법성진리이므로 이 진리대로 사는 불자는 대립이 없다. 어떠한 사람이나 어떠한 일을 당하고도 그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그를 자기와 대립하여 고통을 주는 남으로 보지 않는다. 그래서 매사에 은덕과 협동과 감사를 잊지 않는다.  진정 모든 일에 감사하고 예경하는 마음을 잊지 않는 것이다.

 

 

반야의 진실한 가르침을 배우는 불자는 자기에게 주어진 불성 생명이 바로 부처님의 은혜며 공덕장이므로 이미 무한 축복의 생명감과 함께 무량공덕으로 있는 것을 믿는다. 그래서 매사에 착한 일을 생각하고 성공을 생각하고 감사를 생각한다. 실패, 고난, 불행과 같은 어두운 그림자가 스며들 틈이 없다. 끊임없이 만사 성공만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진리생명 완전 원만을 끊임없이 믿고 관하는 것이 진리를 사는 오늘의 창조자인 것이다.

 

불자는 고난의 세계, 장애의 세계를 거침없이 건넌다. 그리하여 스스로와 이웃과 역사 위에 불멸의 광명을 펼치는 창조적 행동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불자, 진리를 사는 자, 반드시 성공한다. 형제 제위의 알찬 결실을 기원한다.  

 

<83.>

 

광덕 큰스님 지음 빛의 목소리 p190 p193 새로운 인생창조에서, 불광출판사

 

 

산사의 아침 - 양점숙

 

 

적막보다 깊은 속을 그 누가 알랴만

눈빛 선한 스님 잔기침으로 달빛 올릴 때

 

풍경은 몇 구절 반야경 온몸으로 읊었다

북소리 밤으로 울고 뽀얀 보랏빛 아침

 

자비의 마음 하나 건져내지 못해

귓가에 목탁소리는 굴렁쇠처럼 앞을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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