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17. 23:48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화엄경·보현행원품
영원하신 부처님
부처님과 가까이 있는자
우리는 삼귀의를 소리 높이 제창하고 혹은 염불하고 독경하며 혹은 부처님께 백배 천 배 예경도 드린다. 그리고 스스로 ‘내가 불자로다’, 드높은 긍지로 지낸다. 과연 우리들은 불자로서 참으로 부처님과 가까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스스로 불자로 자처하면서 실로는 부처님과는 먼 거리에서 헤매고 있지는 않는가?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의 옷자락을 붙잡고 뒤를 따르며 나의 발자국을 밟으며 걷더라도 만약 그가 욕망 때문에 격정을 일으키고 성내는 마음을 그 속에 품으며 삿된 생각에 사로 잡히고 방일하여 깨달음이 없어 미혹해 있다면 그는 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자이다…., 그는 법을 보지 못하며 법을 보지 못한 자는 나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살피건대 부처님을 멀리하는 요건 4가지를 생각할 수 잇다. 첫째는 격한 탐욕에 사로잡혀 욕심으로 취할 줄만 아는 탐욕스럽고 인색한 삶이다. 둘째는 불꽃 같은 성내는 마음을 안에 품고 미움과 분노와 공격적 성향이다. 셋째는 견해가 바르지 못하여 정법을 믿지 아니하고 원망 질투하는 삶이다. 넷째는 방종한 삶이고…
우리의 생활을 돌이켜 보아 위의 네 가지를 살펴야 할 것이다. 우리들은 자칫 타성에 젖어 현실 생활에서 부득이 하다느니, 이 정도는 무관하다느니, 때로는 본래 상이 없는 것이라 걸림이 없다느니, 온갖 말로 합리화하여 자신의 삼독심에 관대 하거나 무심하지는 않은가 살필 것이다. 그러고서는 참선하고 염불하고 예경한다 하더라도 분명히 [여래와 멀리 있는 자]임에 틀림 없다.
그러면 어떠한 자가 부처님과 가까이 한 자일까? 부처님은 말씀 하셨다.
[비록 나를 떠나 백유순 밖에 멀리 있더라도 만약 그가 과격한 욕망에 불타지 않고 성내는 생각을 품지 않으며 삿된 견해에 사로 잡히지 않고 방일하지 않으며 항상 깨달아 도심이 견고하며 능히 마음이 한 경계에 머무는 자는 그는 나와 가까이 있는 자다. 이는 법을 보는 사람이며, 법을 보는 자는 나를 보기 때문이다.]
탐욕을 부리지 않고 욕심이 담박하여 온 이웃에 너그럽고 보시와 헌신으로 돕는 자. 그가 부처님과 가까이 한 자임을 알겠다. 성내지 않고 자비하며 너그럽고 사랑스러운 말로 대하는 것이 부처님과 가까이 하는 둘째 요건이고 정법을 바로 믿고 인과를 믿으며 모든 일이 인연으로 이루어짐을 알아서 사심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부처님과 가까이 하는 셋째이고 부지런히 정진함이 넷째임을 알 수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위 세가지는 마음을 평정하게 쓰는 것이며 네 번 째는 진실을 부지런히 닦고 익히는 것이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이와 같이 닦는 자에게 법을 보는 자라 하였고, 그는 곧 여래를 보는 자라 하였다. 어째서 그러셨을까?
그는 탐진치 삼독에 물들지 않고 항상 선법을 수습하는 자며, 도심이 견고한 자며 그 마음이 청정한 [한 경계]에 머물러 있는 까닭이다.
[도심이 견고하고 마음이 한 경계에 머무는 것]이야말로 부처님과 가까이 하는 결정 정인(正因)이고 그 밖에 수행은 조인(助因)임을 알 수 있다. 부처님은 곧 법이었던 것이다.
때는 부처님 멸도 하신 지 2천 6백년 가까이 된다. 거리 로는 부다가야와 몇만 킬로미터를 떨어져 있어 불전불후에 태어난 것을 한탄할 때도 있다. 그러나 부처님 말씀에 의할진대 부처님은 실로 멀리 있지 아니하다. 언제나 부처님과 지극히 가까운 위치에 있는 우리임을 다시 알게 된다.
[부처님과 가까이 하는 자, 그자는 법을 본 자이다]라 하였으니 우리들은 이 한 말씀에서 참으로 큰 위안을 받는 것이다. 부처님과 가까이 하고 다시 함께 하기 위하여 우리는 몇 가지 새로운 각오를 해 보는 것이다.
우리 부처님은 법이시다. 법을 깨달아 영원히 깨달음으로 살자. 그러하지 못하더라도 가르침을 견고히 믿고 힘써 부지런히 닦자. 결코 방일하지 말자. 설사 법을 보지 못하고 큰 정진을 일으키지 못하더라도 항상 보시하고 기뻐하고 자비로서 관대하고, 인과를 믿어 법문을 기억하며 탐욕 사견을 멀리하자. 대자대비 무한 공덕, 무애 위신력이신 부처님과 함께 하여 끝없는 평화 번영을 이 땅에 가꿀 것을 서원하자.
<83.>
광덕 큰스님 지음 빛의 목소리 p63 – p66 영원하신 부처님에서, 불광출판사
친구여, 그래도 그대가 있어 나는 좋다 ...
그저 통속한 세상
애절한 사연도 아니고
가슴이 아파본 적이 있는가..
하늘을 보며 눈이 시려
울어 본 적이 있는가..
쓰디 쓴 커피 알맹이가
온몸에 퍼져가는 오후 한낮
그렇게 가슴 하나가
시꺼멓게 우는 날이 있다.
차 한 잔으로도
달랠 수 없는 이런 날에는
친구여~ 그대가 있어 다행이다.
하기사, 따지고 보면
이유가 없는 것도 아니겠지.
저 밑바닥 풀리지 않는
응어리 하나가 있어
이리도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누구하나 아픔 하나쯤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조금은 농후하게
조금은 엷게
다 그런 거지.
다 그렇게 흘러 가겠지만
흐르다 어디선가 멈추어 서면
문득문득 눈물이 날 때가 있다.
친구여!
그래도 그대가 있어 나는 좋다.
차 한잔 같이 마시며
울 친구가 있어 나는 다행이다.
친구여...
친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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