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人에 이르는 길

2013. 2. 8. 12:08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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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有二十難 - 사람에게는 스무 가지의 어려움이 있다(- 도인에 이르는 길)

   

貧窮(빈궁)布施難(보시난)이요

첫째, 가난하고 곤궁하면서 보시하기가 어려운 것이요

 

豪貴(호귀)學道難(학도난)이요

둘째, 부호로 부귀하면서 불도(불교의 도리와 이치)를 배우기 어려운 것이다.

 

棄命必死難(기명필사난)이며

制命不死難(제명불사난)이요

셋째, 목숨을 버려야 할 때에 반드시 죽기가 어렵고

천명을 제압하고 죽지 않기가 어렵다.

 

得睹佛經難(득도불경난)이요

넷째, 부처님의 경전을 보는 기회를 얻기도 어려운 것이다.

 

生値佛世難(생치불세난)이요

다섯째, 부처님이 세상에 계실 때에 태어나 부처님을 만나기가 어려운 것이다.

 

忍色忍欲難(인색인욕난)이요

여섯째, 색정을 참아내고 욕망을 참아내기가 어려운 것이다.

 

見好不求難(견호불구난)이요

일곱째, 좋은 것을 보고서 구하려고(가지려고) 하지 않기가 어려운 것이다.

 

被辱(피욕)不瞋難(부진난)이요

여덟째, 모욕을 당하더라도 성을 내지 않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有勢(유세)不臨難(불임난)이요

아홉째, 세력이 있으면서 군림하지 않기가 어려운 것이다.

 

觸事(촉사)無心難(무심난)이요

열째, 일에 부딪히면서 무심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廣學博究難(광학박구난)이요

열한째, 널리 배우고 두루 연구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除滅我慢難(제멸아만난)이요

열두째, 아만을 제거하여 없애기가 어려운 것이다.

 

不輕未學難(불경미학난)이요

열셋째, 배우지 못한 사람을 가볍게 여기지 않기가 어려운 것이다.

 

心行平等難(심행평등난)이요

열넷째, 마음으로 평등을 실행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不說是非難(불설시비난)이요

열다섯째,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기가 어려운 것이다.

 

會善知識難(회선지식난)이요

열여섯째, 선지식을 만나기가 어려운 것이다.

 

見性學道難(견성학도난)이요

열일곱째, 성품(自性) 보는 도리를 배우는 것이(선정) 어려운 것이다.

 

隨化度人難(수화도인난)이요

열여덟째, 사람들을 교화하고 제도하는 것을 수순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睹境不動難(도경부동난)이요

열아홉째, 경계에 흔들리지 않기가 어려운 것이다.

 

善解方便難(선해방편난)이니라

스무번째, 훌륭한 방편을 (완전히)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사람이라면 겪게 마련인 20가지의 어려움을 조목조목 열거하면서

설명하고자 하는 본래 의도는 바로,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난행을

능행하는 불보살의 자세로 가난하더라도 보시하여야만 하며,

 

부유하고 부귀한 부호더라도 불도(부처님의 도리, 불교의 이치)를 배워야만 하고,

를 위하고 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목숨을 미련 없이 내던지는

각오가 있어야 하며,부처님의 경전을 독송하는 것에 정성을 기울여야 하고,

 

부처님의 국토에 태어나기를 발원해야 하며, 분위기와 호기심에 흔들려서

색정이나 욕망이 일어나더라도 참고 억눌러야 하며, 좋은 물건을 보고 갖고 싶다는

욕심이 일어나더라도 훔쳐서라도 갖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야 하고,

 

모욕이나 비난을 입거나 당하더라도 성을 내거나 분노를 일으키지 말아야 하며,

무슨 일을 하거나 경계에 부딪힐 때에는 분별심을 내지 말아야 하고,

80세 노인이라도 배우고 본받을 것이 있다면 8살 아이한테라도 배운다는 마음과

자세로 배움에 관해서 개방되고 열린 의식으로 임해야 하며,

 

자기가 잘났다는 아만이나 모든 일에서 자기중심적인 에고를 제거해 버려야 하고,

배우지 못하거나 학식에 얕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가벼이 여기거나 경만하지

말아야 하며, 마음에서부터 항상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해야 하고,

내가 옳고 네가 그르다는 등의 시비를 가리거나 따지지 말아야 하며,

 

훌륭한 사람들을 가까이 하도록 힘써야 하고, 자신의 성품을 볼 수 있도록 수행에

힘써야 하며, 형편에 맞춰 교화하여 사람들을 제도하여야 하고,

어떤 경계를 만나더라도 동요하지 말아야 하며, 방편을 잘 이해하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