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시절 好時節 / 무문혜개(無門慧開) 선사

2013. 2. 21. 21:4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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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절 好時節 / 무문혜개(無門慧開) 선사

 

 

春有百花秋有月(춘유백화추유월)

夏有凉風冬有雪(하유량풍동유설)

若無閑事掛心頭(약무한사괘심두)

便是人間好時節(편시인간호시절)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달이 뜨고,

여름에는 서늘한 바람이 불고 겨울에는 눈이 내리네.

쓸데없는 생각만 마음에 두지 않으면,

이것이 바로 좋은 시절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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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문혜개 선사의 가르침을 광덕 스님이 쉽게 번역한 <무문관(無門關)> 

 

무문혜개 선사의 가르침을 광덕 스님이 일반인들을 위해 가능한 쉽게 번역한 책.

 1981년 휘문출판사에서 발행했던 『세계의 대사상』 권 31에 수록되었던 내용을

다시 새롭게 편집하면서 48개의 화두마다 전각가 고암 정병례 선생이 그림을 새겨

넣었다. 책을 통해 인간과 존재의 해명에 대해 정면으로 제시하고 있고,

선의 교과서 중 핵심 화두만을 골라 실었다. 소상한 역주와 함께 해제를 덧붙여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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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 화상에게 한 중이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조주가 대답하기를 “없느니라.” 하였다.

자! 일러 봐라. 어떤 것이 조사관(祖師關)인가? 단지 이 한 개의 무자(無字), 즉

이것이 종문(宗門)의 첫째 관문이다. 나는 이를 선종무문관(禪宗無門關)이라

부르고자 한다. 만약 이 관문을 뚫고 지나간 자는 다만 친히 조주를 볼 뿐만 아니라,

곧 역대 조사와 더불어 손을 잡고 같이 가고 눈썹을 함께 하여 같은 눈으로 보고,

같은 귀로 들을 것이니 이 어찌 기쁘고 시원스런 일이 아니겠느냐!

다들 이 관문을 뚫어 보지 않으려는가! -본문 중

 

무문혜개(無門慧開) 선사는 이 한 개의 무자(無字), 이것이 종문의 첫째 관문이다.

 이에 이를 이름하여 선종무문관이라고 했다. 사실 이 조주 무자는 이 한 권을

일관하고 있는 중심 사상이며 동시에 무문의 전면목이기도 하다.

 

『무문관(無門關)』은 중국 남송 중기 임제종의 거장 무문혜개 선사가 역대 조사들의

화두 중 핵심이 되는 48개를 가려 뽑아 알기 쉽게 풀이한 선입문서로 그 간결함과

명료함으로 인해 ‘선서(禪書)의 백미’로 꼽히고 있다. 무문관은 선종무문관이라고도

하며 전체가 48칙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칙은 본칙과 이에 대한 논평인 평창,

본인의 견처를 밝힌 송으로 되어 있다.

 

이 책은 광덕 스님이 일반인들을 위해 가능한 쉽게 번역하였으며, 이해를 돕기 위해

소상한 역주와 함께 해제를 덧붙였다. 1981년 휘문출판사에서 발행했던 『세계의 대사상』

권 31에 수록(절판)되었던 내용을 다시 새롭게 편집하면서 48개의 화두마다 전각가

고암 정병례 선생이 그림을 새겨 넣었다. 덕분에 보는 재미와 더불어 화두에 대한 각인을

더욱 새롭게 하고 있다.선(禪)의 가르침은 이론이나 말이 아니다.

‘이것이 꿀이다’ 하고 눈앞에 들이대고 입 안에 넣어 준다. 어느 종교의 교설과도 상관없다.

바로 인간과 존재의 해명이며 정면 제시다. 인간과 역사의 본연 동력이며 궤도이다.

선의 교과서 중 핵심 화두만을 골라 견처를 밝힌 『무문관』에는 무문 자신이 말하듯이

전혀 군말이 없다. 골수를 찌르고 가슴에 파고드는 짤막한 언구 속에 불조의 정혼이 넘쳐

있고 광휘의 생명력이 팽팽하다.

 

 

 

 

 

 
 

 선(禪)과 문자(文字)와의 관계 / 일붕 서경보 큰스님

 

 

 흔히 납자와 신도로부터 禪은 '교외별전 불입문자 직지인심 견성성불 '이라고 하면서도 선종의 서적에서나교종의 서적으로 말하면 교종의 서적못지낳게 많으니 이것은 어찌한 까닭이냐고

 질문을 받는 일이 많다.그래서 선과 문자에 대하여 설법하여

보고자 한다. 선의 본래입장으로 보면  문자를 세우지 않는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불입문자라고 표방하여 문자에 의지하여 종지(宗旨)를 찬양한다거나 전수한다고 이르지 않는 것이다.

 

가령 석가세존의 일대(一代)에 있어 45년간에 걸친 설법 이라도

선종의 종지로서 말한다면 종지 자체가 아닌것이요,다만 종지를

설명하는데 지나지 않는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종지 자체와는 거리가 멀고 인연이 얕은 것이다.오직 언어 문자만 늘어놓는데

지나지 않는 것이라 하겠다.왜냐하면 진정한 묘처(妙處)는

 

바로 들을줄 아는 사람에 한해서만 비로서 설해야 가치가 있는것이지

들을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우이독경(牛耳讀經)이 되기때문에

진정한 이치는 설할 수가 없는 까닭으로 인연과 비유의 방편으로 설법을 하는 수밖에 별다를 도리가 없다고 말하겠다.

 

만약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묘리(妙理)를 들을 줄 아는 사람있다고

할것 같으면 벌써 입을 벌려 설명을 하지 아니해도 마음이

계합하여 곧 통할수가 있는것이다.아것을 일러 설함이 없이 설하고

듣는게 없이 듣는것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공자(孔子)가 현인(賢人)'온백설'이란 사람이 장하다는 말을 듣고

그를 한번 보기를 원하기에 은백설의 얼굴을 잘 아는 제자들이 명념하였다가 마침 공자가 가는 행차에 은백설이 저쪽에서 옴으로

자로가 공자에게 말하기를'저분이 은백설이 올시다'하고 알려드렸다.그런데도 공자는 수레에서 내려 은백설의 손을 잡고 인사할 생각은 않고 일산만 기울이고 그저 지나쳐 버리고 만다.

 

제자들은 너무 이상하여 공부자(孔夫子)에게 묻되,'공자께서는

그렇게 보기를 원하시던 은백설을 만나고도 아무 말씀 한마디도 않고 지나치셨습니까'하였더니 공자는 답하되,군자는 눈만 마주

부딪쳐도 도가 그 속에 있나니라'하시었으니 이것이 곧

심계즉통(心契卽通)이라는 것이다.이것은 선지(禪旨)뿐만 아니라

세간사의 예를 들어보더라도 똑같은 것이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한 입에 마시는 물맛을 묻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하였으니 갈증이 났을적에 감로수 같은 물을

맛있게 마셨다 할지라도 그 물맛은 남에게 표현해 말할수 없는 것이다.다만 이것은 목마른 사람이 직접 마셔 봐야 알수 있는 일이다.

 

이밖에도 부자(父子)의 애정이라든지 친구의 신의 라든지 부부의 연정 같은것도 직접 사실을 체험해야 알 일이요,자식이 없는 사람이나

친구가 없는 사람이나 홀로 사는 사람들은 알수가 없는 일들이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禪의 종지도 고심정진 (苦心精進)으로

깨달은 사람이라면 설법을 할 필요도 없이 명안종사(明眼宗師)

가 보면 일견에 서로 통하여 마음을 허락하게 되는 것이니

선종지는 깨달음 있는것이다

 

깨달는 것은 자기의 자심을 파악하여 그 본바탕을 꿰뚫어

본다는 것이다.이렇게 깨달은 사람은 자유자재하여

세출세간(世出世間)에 걸림이 없는 것이다 .

 

 

 

   원공법계제중생자타일시성불도 ()...

     

 <불교명저)(서음미디어 발행) 제2권 

 "선이란무엇인가 "에서 발췌

 

 

 

 

 

봄 / 김광섭

                           

                  

 

얼음을 등에 지고 가는 듯

봄은 멀다

 

먼저 든 햇빛에

개나리 보실보실 피어서

처음 노란빛에 정이 들었다

 

차츰 지붕이 겨울 짐을 부릴 때도 되고

집 사이에 쌓은 울타리를 헐 때도 된다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가장 먼 데서부터 시작할 때도 온다

 

그래서 봄은 사랑의 계절
모든 거리(距離)가 풀리면서
멀리 간 것이 다 돌아온다

서운하게 갈라진 것까지도 돌아온다
모든 처음이 그 근원에서 돌아선다

 

나무는 나무로
꽃은 꽃으로
버들강아지는 버들가지로
사람은 사람에게로
산은 산으로
죽은 것과 산 것이 서로 돌아서서
그 근원에서 상견례를 이룬다

 

꽃은 짧은 가을 해에
어디쯤 갔다가
노루꼬리만큼
길어지는 봄 해를 따라

몇천리나 와서
오늘의 어느 주변에서
찬란한 꽃밭을 이루는가

 

다락에서 묵은 빨래뭉치도 풀려서
봄빛을 따라나와
산골짜기에서 겨울 산 뼈를 씻으며
졸졸 흐르는 시냇가로 간다

 

 

 

 

 


 


봄을 기다리며-  첼로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