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2. 20:13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화엄경·보현행원품
밝은 사회로 가는 길
부자가 된다는 것
배금주의라는 것이 있다. 곧 돈이면 최고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수단이야 어떻든 돈만 잡으면 그만이라는 것.
이 배금풍조가 온통 세상을 시끄럽게 한다고들 야단이다. 저들에게는 돈 잡는 일이라면 못할 일이 없다. 지위도, 사회의 혼란도, 국가적 손실도 안중에 없다. 심지어 몇 푼의 돈을 얻고자 사람 목숨마저 마구 찍어댄다. 소름 끼칠 일이다.
돈이 모든 행복을 채워줄 수 있다면 돈만 있으면 행복할 것이다. 그런데 실지는 그렇지 않다. 돈 때문에, 재산이 많기 때문에 울고 한숨의 구렁텅이를 헤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선박왕이라 일컫는 희랍의 오나시스는 ‘자기가 뜻하는 것은 무엇이든 손에 넣을 수 있다’고 장담했다지만 역시 행복하지는 못한 모양이다. 돈의 위력으로 잡은 듯 싶던 재크린과는 별거하는 중에 그는 죽어갔다.
부가 행복 자체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부를 물질의 집적이라 보는 한 그런 부는 아무리 쌓아봤자 행복 할 수 없다. 부를 물질로만 아는 사람이 일확천금을 꿈꾸고 돈을 잡는 일이라면 못하는 것이 없게 된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은 행복을 잡은 것이 아니라 불행을 잡은 것이다. 근심 뭉치가 될 수밖에 없다.
부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는 단순한 물질의 무더기가 아니고 실로는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생각의 집착이다. 많은 사람에게 편리와 행복을 주고자 하는 생각이 밖으로 나타나 이루어지는 것이다. 상인은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편의를 제공하고 생산자는 값싼 생산비로 많은 사람에게 유용한 물건을 공급하고 서비스를 제공한다. 남에게 편리와 쾌적과 유용하기를 염원하고 많은 봉사를 한만큼 수익도 늘고 부는 축적된다.
그러므로 부자가 되자면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고 보다 많은 행복을 주고자 노력하는 데서 행복으로 연결될 부는 오게 마련이다.
남을 이롭게 하고 행복을 주는 아이디어가 부자가 되는 길이라면 그런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불심이다. 부처님의 지혜에서 오는 것이며, 우리의 마음 속 허망한 것을 버리고 참된 자기에 돌아가 거기에 부처님의 지혜롭고 자비로운 마음이 드러날 때 우리에게는 보다 많은 행복에의 아이디어가 흘러나오게 마련이다. 부자가 되자. 참된 부자가 된다는 것은 나와 나라와 세계를 번영으로 이끄는 것이다.
<75.>
광덕 큰스님 지음 빛의 목소리 p444 – p445 밝은 사회로 가는 길에서, 불광출판사
부처에서 중생까지 두루 갖춘 얼굴
인타 강대철(因陀 姜大喆)|조각가
내가 처음 광덕스님을 찾아뵌 것은 불과 이태 전의 일이다. 스님의 말씀은 월간 「불광」을 통해, 또는 스님의 저서를 통해 오래 전부터 들으면서 이 시대에 많지 않은 큰스님임을 알고는 있었다. 대중 속에 더불어 사시며 생활 속에서 깨달음의 에너지를 일구어 내도록 하는 스님의 가르침은 어느 큰스님보다 내 가슴에 와 닿았고 초발심 시절엔 특히 스님을 꼭 찾아뵙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스님을 뵙게 되었을 때는 스님은 이미 육체의 옷을 벗을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오랫동안 투병생활을 했음에도 그 모습이 단아하고 맑았다. 소년같이 맑은 눈빛 하며 청결한 얼굴에서 밝은 빛이 비치고 있어 저절로 존경심이 솟구쳤다. 더구나 하잘 것 없는 속인을 불편한 몸을 일으켜 맞아주는 모습에 몸둘 바를 모를 정도로 송구스러웠다. 스님을 찾아뵈면서 내 딴에는 내 자신의 공부 경계를 여쭈어 보고, 스님으로부터 어떤 인정을 받아보고 싶은 욕심까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이 스님을 뵙는 순간 스르르 녹아 없어지는 것이었다.
스님은 내가 여쭌 몇 가지 질문에 조용하고 또박또박하게 설명해 주었다.
“우리 육체는 우주 삼라만상의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는 정교한 구조물이기 때문에 수행하는 이들의 집중상태에 따라 여러 현상이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그것이 어떤 형상일 수도 있고, 어떤 빛으로 보일 수도 있고, 소리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육체가 가지고 있는 안.이.비.설.신.의 모든 기관을 통해 입력되고 잠재되어 있는 것들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때 나는 명상을 한답시고 명상 중에 나타나는 여러 현상에 꽤나 집착하고 있었다. 스님은 이런 나의 착각을 정확하게 지적해 주었다.
“그런 현상이 나타나면 수행자들은 자칫 자신에게 속기 쉽습니다. 어떤 현상이든 그것이 아무리 그럴 듯하고 가슴 깊이 와 닿는다고 해도 허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타나는 현상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지금 말하고 듣고 있는 이 순간, 당신은 이미 완성된 존재입니다. 다른 곳에서 찾지 마십시오. 그냥 매일매일 일상에 충실하면서 자신을 지켜보십시오.”
이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스님께서 산속의 법당을 택하지 않고 세속에 법당을 세운 뜻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속의 일상에 몸담고 있으면서 이 시대의 중생들에게 가장 적절한 방편을 베풀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큰 지혜는 깊은 산속에 있는 것도 아니고, 잘 지은 절간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또 서슬퍼런 선방의 수행자들 앉아 있는 모습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당신이 예술가이니 충실하게 작품을 만들면서 자신을 지켜보십시오. 그리고 모든 것들과 더불어 화합하십시오. 조화를 이루십시오. 그리고 기쁘면 즐거워하고 슬프면 슬퍼하십시오. 조화를 이루십시오. 그렇게 육감을 통해 느끼고 표현하는 자신을 끊임없이 지켜보십시오. 관세음보살님도, 부처님도 모두 일상 속에서 당신을 큰 지혜로 인도해 주실 겁니다.”
조각가인 내게 어떤 형상을 만든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특히 특정한 인물상을 조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그 인물이 가지고 있는 인격을 표현해 내야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동안 나는 많은 사람의 모습을 조각했다. 명예를 얻은 사람의 얼굴, 커다란 부를 성취한 사람의 얼굴, 그 시대 영웅의 얼굴, 성자의 얼굴 등 큰 업적을 남긴 능력 있는 이들의 얼굴을 내 손으로 빚어냈다. 그런 얼굴들을 만들면서 깨닫게 된 것이, 그들 각자의 얼굴엔 그들의 삶 전부가 담겨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정신세계든 물질세계든 모든 것이 얼굴에 담겨 있는 것이다.
여러 사람들의 얼굴 모습을 만들면서 내게 생겨난 욕심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참으로 지혜롭고 자비롭고 그러면서 가장 인간적인 모습까지 갖춘 얼굴을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광덕스님을 만나는 순간, ‘아, 바로 이 모습이구나. 이 모습 속에 부처에서부터 중생의 모습까지도 담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 인간의 얼굴 속에 이렇게도 많은 것이 담길 수 있구나’하는 감탄도 우러나왔다.
작업실 뜨락에 나와 오월의 신록을 바라본다. 온 천지가 어느새 푸르름으로 가득하고 맑은 하늘의 봄볕을 머금어 눈이 부시다. 새소리도 들리고 물소리도 들린다.
가만히 귀 기울여 보면 그 빛과 소리 속에서 광덕스님의 모습이 보이고 법어가 함께 들려온다.
광덕스님 시봉일기 7권 사부대중의 구세송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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