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6. 6. 20:19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불교와 제사 / 월호스님
죽은 이보다는 ‘산 사람’ 공부하는 기회
조상 공덕 기리는 본래 의의는 자신의 삶 돌이켜 다스리는 것
설날에 즈음해서 어떤 분이 제사에 관해 질문을 했다.
사람이 죽으면 환생을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영혼이 이미 어딘가에 가셨을 텐데,
현세에서 제사를 지내는 의미가 무엇인가.
또한 제사음식을 드시러 조상들이 오신다는데,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건가.
마지막으로 현세의 나도 과거의 누군가였을 텐데, 나를 위해 누군가가 제사를
지내는 곳에 간 기억이 없다.
이러한 세 가지 질문에 대해 간단히 답변을 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제사는 죽은 사람을 위해 지낸다기보다 산 사람을 위해 지낸다고 보는 것이
옳다. 말하자면 죽은 사람을 빙자해 산 사람이 공부하는 것이다.
조상의 공덕을 기리면서 스스로의 삶을 돌이켜보는 시간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불교에서는 ‘제사 지낸다’ 는 말보다는 ‘재(齋) 지낸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다. ‘재’는 재계한다는 의미로서,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한다는 뜻이다.
둘째, 제사를 지낼 때 영혼이 온다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예컨대, 성냥불을 켰다 껐을 때 그 불이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간 것인가.
단지 연(緣)따라 왔다가 연(緣)따라 갈 뿐이다. 〈금강경〉에서도 말하지 않는가.
여래(如來)란 좇아온 바 없으며 가는 바가 없으므로 그 이름이 여래라고.
영혼도 연이 닿으면 올 것이고, 연이 닿지 않으면 오지 않는 것이다.
연(緣)이란, 아직 중음신의 형태로 현세에 대한 애착이 남아 있거나, 제사 지내는
이의 지극정성이 통하거나 하는 등등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별 일 없이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거나, 좋은 일이 생기거나,
막혔던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거나 한 적은 없는가. 누군가 나를 위해 공덕을
드린 거라는 생각은 안 드는가.
궁극적으로 영혼에 고정불변의 실체는 없다. 단지 하나의 분별식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분별식은 윤회의 근본이 되며, 궁극적으로 해탈되어져야 할 것이다.
재미있는 예가 있다. 파조타(破墮) 화상이 숭악에 있을 때, 산 중턱에 묘당 하나가
있었는데 영험(靈驗)하였다. 그 묘당 안에 조왕단 하나가 있는데, 원근에서 와
제사를 지내면서 살생을 많이 하였다. 선사가 어느 날 시자를 데리고 묘당에
들어가서 주장자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대는 본래 진흙과 기왓장으로 합쳐 이루어진 것인데
영험은 어디서 왔으며 성스러움은 어디서 생겼는가.”
그리고는 몇 차례 두드리고, 다시 말했다.
“깨졌다. 떨어졌다.(破也 墮也)”
그러자 조왕단은 무너지고 말았다. 조금 있다가 푸른 옷에 높은 관을 쓴 이가
나타나서 절을 하면서 말했다.
“저는 본디 이 묘당에 있는 조왕신입니다. 오랫동안 업보에 끄달려 있다가 이제
화상의 무생법(無生法)을 듣고 해탈을 얻었기에 일부러 와서 사례를 드립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이는 그대가 본래 지니고 있는 본성이다. 내가 억지로 한 말은 아니다.”
그러자 신이 두 번 절하고 사라졌다.
일체 중생의 몸과 마음은 모두 꿈과 같다.
몸뚱이는 사대(四大)로 이루어져 있고, 마음은 육진(六塵)으로 돌아간다.
사대인 지ㆍ수ㆍ화ㆍ풍이 흩어지면 무엇이 ‘나’인가.
“깨졌다! 떨어졌다!”
[불교신문 2201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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