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추구할 복지의 방향

2013. 6. 6. 20:21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화엄경·보현행원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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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사회로 가는 길

 

우리가 추구할 복지의 방향

 

우리는 지난 30년을 전쟁과 분단의 비극을 딛고 일어서서 오직 [가난에서의 탈피]를 향하여 눈을 감고 뛰기만 했다. 그 결과 오늘에 와서는 어느 정도의 경제성장을 보았고 국제사회에서 과분한 찬사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눈을 뜨고 우리 주변에 눈을 돌릴 때 허다한 병리현상이 눈에 들어오는 것을 부인 할 수 없다.

 

우리주변에 싹트고 있는 사화병리 현상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첫째 고도성장을 말하면서도 그 속에 빈곤이 춤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산업성장으로 취업기회도 늘었고 소득도 향상 되었다. 그러나 물가고와 사회적 경제구조 속에 근로자의 실질 소득이 좀처럼 증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사회적 생산소득의 편재현상은 국민의 상대적 빈곤감을 더할 뿐만 아니라 분배의 정의가 크게 문제되고 있다.

 

또 하나는 팽대한 산업 조직 아래서 인간이 스스로 자주성과 창의성을 잃어간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철학이 없는 실리 제1의 무가치한 가치관이 만연하고 사회는 점차 골 빈 군상들에 의하여 향락이 유일한 감정 조절기구가 되어가고 있다. 이런 데서 정신 빈곤은 더욱 심화하고 심성의 황폐는 더욱 심화해가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식자들은 이런 문제에 대하여 복지정책을 제1의 처방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취업의 보장이라든가, 분배의 정의라든가, 산업공해의 방지라든가, 건강과 문화의 확충이라든가, 물가시책. 사회보장 등 여러 방안을 내놓는다.

 

이런 문제들은 경제 발전의 지속을 위해서나 국민 경제 수준의 확대를 위하여도 불가불 해결되지 않으면 안될 절실 성을 가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경제성장의 의미를 올바로 정착시키고 인간사회의 진실 가치를 추구하는 측면에서 더욱 근본적 대책이 요청된다 하겠다.

 

그러나 복지지상의 경제시책이 성공한다 하더라도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고 인간의 존엄한 가치를 유지하는 것은 결코 남이 갖다주거나 밖으로부터의 보장에서만 올 수는 없는 곳이다. 인간 스스로가 인간의 존엄에 대한 확신을 갖고 스스로 존엄한 가치를 지키고 스스로 존엄의 내실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필경 [천국에서 조는 탕아]이상의 것이 될 수 없다는 점은 명약관하하다.

 

경제가 성장하고 복지정책이 성공하여 풍요와 안락이 충족되었다고 하자. 거기에 만약 인간 자체가 육체적 편의와 안일과 향락만을 안다면 그런 인간과 사회는 유지될 수 없는 것이다. 부패와 타락으로 인간은 존재하지 않으며 사회는 붕괴되고 말 것이다.

 

고도성장의 그늘에서 인간 권위를 외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인간의 신성과 존엄의 근거가 무엇인가를 분명히 모르는 그릇된 인간 주장으로서는 필경 인간타락을 막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은 육체 속에 영원을 살며, 물질 속에 진실을 살고, 유한 속에 무한 가치를 추구하는 영원자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궁핍에서나, 안락에서나, 고통 속에서도 물들지 않고 꿋꿋이 밟고 억척스러운 영원한 생명의 미소를 가꾸어 가는 인간 정신을 확립할 것이 절실하다.

[마하반야바라밀]은 이러한 인간과 역사를 가꾸어가는 법문임을 아무리 외쳐도 지나침이 없으리라.

 

 

이와 같애 원하라

 

 

무성한 나뭇잎을 볼 때에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선정과 해탈로써
그늘지고 가리워지이다.



큰 강을 볼 때에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법의 흐름에 함께 하여
성인의 지혜바다에 들어가지이다.



다리 놓인 길을 볼 때에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일체 중생 제도하기를
다리와 같게 하여지이다.



병든 사람을 볼 때에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육신의 공적함을 알고
어기거나 다투는 법을 떠나지이다.



성전을 읽을 때에는 이와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성인의 말씀에 따라
모두 기억하고 잊지 말아지이다.



누워서 잘 때에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의 신체가 안락하고
마음이 흔들리지 말아지이다.

 

 


(화엄경 정행품)

 

 

 

 

찔레꽃 / 무불스님

 

 

5.월의 고향 오솔길 돌아

걸으면

울타리 건너 냇가 논 두렁에

내 누나 적삼 처럼

하이얀 찔래꽃이 향기롭다.

 

누나의 냄새는

늘 찔레꽃 향기였다.

무명 적삼에 길고긴 고운 머리. .

갓 피어난 찔래꽃 향기다.

 

눈 두렁 풀밭으로

새참 이고 덩실덩실 성큼성큼 걸어온다.

 

하얀나비 노랑나비

찔래꽃 향기에 취해 날개를 접는다.

 

천수답에 가둔 흙탕물에 개구리 싸움 벌어지고

민망 하도록 짝짓기를 멈추지 않는다.

심술굳은 나는 찔래꽃을 꺽어 그들에게 심통을 부려본다.

 

누나는 멋적게 나를 향해 나무란다.

그냥 - 그러지 말란다.

 

감나무 꽃을 꾀어서 염주를 만들어

내 목에 걸어준다.

모내기 직전 내 고향풍경은 늘 누나의 향기로 가득하다.

갖 케어 삶아온 자주색 감자의 맛은 잊을 수  없다.

 

고향의 찔래꽃은.

그대로 인데

할머니가 되어버린 누나가 나는 아프다.

나는 누님 이라고 부르기 싫다.

 

청하하고 밝고 고운 누나는

고향처럼 내 가슴에 남은 유일무일한 향기다.

누나는

세월이 가도 변치 않는 찔래꽃 향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