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만(公慢)을 드높이자

2013. 6. 27. 20:23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화엄경·보현행원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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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사회로 가는 길

 

공만(公慢)을 드높이자

 

오늘날 우리나라 구석구석에는 사회 정의의 물결이 세차게 감아 돌아가고 있다. 정부 중앙 관서를 비롯하여 각 행정관서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지역사회, 기업체, 각 종교단체와 모든 사회단체가 총 참여한 운동이다. 그래서 시회 구석 구석에 남아있던 온갖 비리와 부정을 과감하게 차곡차곡 소탕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제까지 이런 운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역대 위정자와 뜻있는 단체와 인사들에 의하여 끊임없이 주장되고 이 운동이 전개되었었지만 별 성과는 보지 못했다. 대개가 일시적인 구호나 운동에 그치고 만 감이 없었단 것이다. 이에 본 란은 이 운동이 큰 성과를 기원하면서, 온 불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책임 있는 정진을 촉구하는 바이다.

 

대개 사회정화 운동은 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인의 의식이 기초가 된다. 그러므로 국민 대다수의 정신적 바탕을 정화하는데 노력하지 않는다면 이 운동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한낱 일시적 운동으로 흘러가고 마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 사업이 참으로 실효를 거두려면 무엇보다 먼저 국민 각자가 자주적인 자신에 눈떠야 하고 그 자신 속에서 끊임없이 청정성을 뚜렷이 확인 하여야 한다.

 

만약 주제적인 자기에 눈뜨지 못하고 육체적 나와 물질적 욕망과 그 충족에만 관심한다면 인간은 영원히 타락의 길을 벗어나지 못하고 사회에는 이기와 비리와 부정이 터져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정화 운동은 구호와 행사와 실천 운동에 못지 않게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의식 정화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불자의 책임이 누구보다 막중하다는 것이다.

 

경의 말씀에 [마음의 청정함을 따라 국토가 청정하다]하였고 또 [일체유심조]라고 하였다. 사회 모든 현상은 우리의 마음이 만드는 것이며, 우리의 마음의 청정 정도에 따라 우리의 환경과 국토가 청정하다는 말씀이다.

 

이 가르침을 불자들은 온 국민에게 전하고 온 국토에 펴야 하겠다. 그리고 마음의 청정을 닦아가는 방법도 널리 전하여야 하겠다. 여기에서 오늘의 사화정화운동은 참된 성과를 올릴 수 있는 것이며 구경의 완성을 기약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는 자주적인 책임의식의 문제다. 원래로 인간은 우주의 중심이며 개아는 자각적 정신이 그 핵심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은 자신에 대한 자각의 정도에 따라서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사회와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개개인이 사회환경을 만드는 주인공이다. 그러므로 사회 정화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자각에 의하여 성취되는 것이며 국가와 사회는 그것을 돕는데 불과한 위치에 있다.

 

거듭 말해서 사회 종화의 결정적 핵심이 개아의식의 정화라는 말이다. 한 사람이 청정할 때 사회가 청정해지고 한 사람이 애국할 때 나라의 부강이 온다. 반대로 내 마음이 부정할 때 사회가 문란해지고 내가 국가에 충성하지 않을 때 나라가 약해진다. 나는 나 한 몸의 중심일 뿐만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중심임을 깨달아야 한다. 자신이 사회와 국가의 중심이다라는 말은 자칫하면 잘못된 아만(我慢)이 아니냐할 것이다. 원래 아만은 망자존대(妄自尊大)를 나타내는 교만이다.

 

그러나 내가 나라에 충성하지 않으면 나라가 흔들린다는 자부심과 긍지는 결코 망발이 아니다. 그것은 개아의 교만이 아니라 자신이 국가의 토대라는 대아적 자각과 책임을 말하는 것이다.

 

일찍이 신소천(申韶天) 노사는이것을 공만(公慢)이라고 하였다. ()이기는 하지만 공변된 만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런 공만은 크면 클수록 개아가 성장하고 이기주의와 고식적 편의주의는 사라지며 사회는 밝고 활기에 차고 국가는 부강해지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사회 구석구석에 물결치고있는 사회정화운동은 이것이 민족번영의 기초작업이다. 참된 안정과 질서의 창조는 여기에서부터 싹이튼다. 온 불자들이 신앙적 열정으로 이 운동에 앞장서야 하겠다.

이것은 사회와 나를 밝히는 동시에 자아의 청정과 불국토를 실현하는 고귀한 작업인 것이다.

 

 

<80.>

 

광덕 큰스님 지음 빛의 목소리 p468 – p471 밝은 사회로 가는 길에서, 불광출판사

 

 

 

      

 

 

 

 

 

 

 

 

 

 

여기 한 장의 묵화(墨畵)가 있다. 일필휘지(一筆揮之)로 그려진 메기 한 마리. 세상사에 초연한 듯 무표정한 얼굴에서 언뜻 근심이 엿보인다. 별다른 움직임도 없건만 응집된 기(氣)와 강한 생명력이 물씬하다. 붓에 모든 신경을 집중시키기 위해 잠시 멈춘 숨을, 그대로 그림에 불어넣은 이는 누구인가. 그림 옆에 짤막하게 적혀있는 ‘작가노트’에서 주인공을 짐작해보자.

 

“장마철에 모든 나무들이 약간씩은 우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빗소리를 듣게 되지요. 사실 행복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이미 정하고 갈구하는 것이 아닐까요. 단지 노력 여하에 따라 오는 속도만 달라질 뿐.” 비 맞은 나무의 모습을 우울하다 느끼는 ‘감수성’,

 

세상일에 달관한 ‘도인’처럼 담담한 어조. 몇몇 눈치 빠른 독자는 이쯤에서 답을 알아차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하나로 묶어 내린 긴 머리, 콧수염, 흰색 옷을 고수하며 외양에서부터 도인의 이미지를 물씬 풍기는 작가 이외수가 그림을 그린장본인이다. 자신만의 독특한 필력으로, 세상을 글에 담아내던 그가 그림으로 영역을 옮겨왔다. 선화집 <숨결>(솔과학.2006)을 통해서다  

 

시인 배문성은 책의 서문에서 “이외수의 작가 정신이 한 점 일갈로 요약된다면 바로 그의 그림을 통해서일 것”이라며 “그는 많은 장편소설로 자신의 세계를 말해 왔지만 기실 그가 그 많은 글에서 하고자 했던 말도 바로 이 한 마리 메기의 짧은 순간에 다 담길지 않을까 싶을 정도”라고 말한다.  

 

 

 

 

 

 

 

무엇이 불만인지 고개를 돌려버린 ‘까칠한’ 표정의 새와 ‘야리야리한’ 줄기가 불면 날아갈까,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코스모스. 꾸밈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그림 속 사물들은 이외수의 소설과 맞닿아 있다. 그의 처녀작 <꿈꾸는 식물>(해냄. 2005)을 떠올려보라. 문학평론가 김현이 “너무나 심하게 나를 고문한다”고 평한 작품은 엉덩이에 난 종기처럼 독자가 감추고 싶은 치부를 까발리고, 낱낱이 파헤쳤다. 있는 그대로를 가감없이 보여주기는 글이나 그림이나 마찬가지인 셈. 하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그림이 좀 더 따뜻하고 여유롭다. 검은 먹칠에 자리를 내주고 남은 하얀 화선지의 ‘여백’이 독자에게 평온함을 안겨주는 것. 이외수의 그림은 그가 써온 소설처럼 아프지만, 그보단 ‘행복한 통증’이다.

 

 

 

 

 

 

배문성 시인은 "그림은 손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그리는 것이다. 한 숨의 호흡과 한 번의 붓질이 가해질 때마다 마음과 붓과 먹과 종이가 하나로 합쳐져서 하나의 형태를 낳는다."라고 이외수님이 보여주는 한 찰나의 경지를 설명하고 있다. 

 

 

 

 

 

 

작가노트 1

 

그대 가슴에서 지워진 사랑,

지나간 날들은 모두 전생이지요.

 

 

 

 

 

작가노트 3

 

나는 이제 도시의 치열한 생존법을 모두 버리고

빗소리 속에 기억을 해체한다.

아무리 치밀하게 계산을 해보아도

인생은 결국 본전이다.

누군가 못 견디게 사랑했던 기억도

오늘은 자욱한 빗소리로 흩어지고 있을 뿐.

 

 

 

 

 

작가노트 10

 

방문을 열었다.

널직한 오동나무 이파리에

넉넉한 햇빛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훤히 보인다.

늙으니까 좋구나.

 

 

 

 


 

 

 

 

작가노트 13

 

아무리 이름난 산이라도 맹수가 살면 아직 명당이 아니다.

산은 자신의 몸을 헐어 많은 생명을 키운 다음에야 명당을 만들어 낸다.

설령 그대의 공부가 수미산 높이와 버금간다 하여도 끊임없이 자신을 낮추어

온갖 생명이 어울려 살 수 있는 평지가 되게 하라.

 

 

 

 

 

작가노트 15

 

할미꽃이여

나도 허리굽은 그 나이까지 꽃이 되고 싶구나.

 

 

 

 

 


 

 

 

 

 

작가노트 16

 

겨울 새벽까지 깨어 있으면 언제나 빌어먹을 놈의 외로움 때문에 뼈가 시리다, 라고 썼다가

바깥에 앙상한 뼈를 드러낸 채 묵묵히 겨울을 견디고 있는 나무들을 생각면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시계바늘은 움직이고 있지만 시간을 흐르지 않는다.

이제 세속을 잊어야겠다.

내가 간직했던 사랑과 증오들도 모두 반납해야겠다.

 

 

 

 

 

작가노트 18

 

외로움은 소통이 되지 않을 때 생기는 것입니다
진정한 소통은
길을 통해서가 아니라 속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모든 외로움은 자신이 만들어 내지요
치료약도 자신이 가지고 있습니다.

 


 

 

 

 

 

 

작가노트 19

 

그래 기억나지 않는 것들은

기억하려고 애쓰지 말자.

늙는다고 생각하면 왠지 쓸쓸하지만

이제는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 하나만 기억하고

나머지는 기억하지 않아도 좋을 나이가 되었나보다.

건망증.

 

 

 


 

 

 

작가노트 27

 

모든 언덕은 그리움을 되살아나게 합니다.

거기개망초가 어지럽게 피어 있고

이따금 한 무더기 바람이라도 지나가면

잊혀진 이름들이 떠오르지요.

 

 

 

 

 

작가노트 28

 

갑자기 세상이 텅 비어버린 느낌 속에서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은 충동이 내 의식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그 누군가라는 사람이 도대체 누구지?

 

 

 

 


 

 

 

작가노트 32

 

참으로 거칠고 먼 길을 홀로 걸어와

옷자락을 스치는 그대여

내 몸은 비록 늙고 병들어 기력 없으되

아직 날밤은 새울 수가 있나니

오늘 같은 날에는

그대와 비포장도로에 같이 퍼대고 앉아

흐르는 달이나 곁눈으로 쳐다보면서

밤 새도록 문학과 인생을 음미하고 싶소이다.

 

 

 

 

 

작가노트 33

 

비는 시간을 적십니다.

비에 젖은 시간은 대부분 미래로 흐르지 않고 과거로 흐릅니다.

추억은 언제나 과거에 머물러 있습니다.

비가 내리면 당신은 어디부터 젖는지요.

젖어서는 무엇을 추억하게 되는지요.

 

 

 

 

 


 

 

작가노트 34

 

장마철에 모든 나무들이 약간씩 우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빗소리를 듣게 되지요.

사실 행복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이미 정하고 갈구하는 것이 아닐까요.

단지 노력 여하에 따라 오는 속도만 달라질 뿐.

 

 

 

작가노트 38

 

코스모스는 같은 땅 같은 하늘 아래 같은 꽃이름으로 피어서

어떤 꽃은 빨간색으로 흔들리고

어떤 꽃은 하얀색으로 흔들리고

어떤 꽃은 분홍색으로 흔들립니다.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보시라는 뜻이겠지요.

 

 

 

 

 


 

 

 

 

작가노트 41

 

내가 말이나 글로 전하는 것들은

그렇게 알라고 전하는 것들이 아니라

그렇게 하라고 전하는 것들이다.

아는 만큼 보이느 것들은 아직 진정한 내것이 아니다.

하는 만큼 열리는 것들이 진정한 내것이다.

 

 

 

작가노트 48

 

내 마음이 꽃이라는 이름과 조화할 수 없을 때
꽃은 꽃이라는 이름의 아픔이 되고
내 마음이 강물과 조화할 수 없을 때
강물은 강물이라는 이름의 아픔이 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내 마음이 사랑과 조화할 수 없을 때

사랑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아픔이 된다.

 

 

 

 

 


 

 

 

 

 

 

Yuhki kuramoto, Paris in Wi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