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자리 / 서암 큰스님

2013. 6. 27. 20:26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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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자리 / 서암 큰스님

 

 

옛날에는 대의삼장이라고 하는 이는 공부를 많이 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훤히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 사람이 나를 욕하면 나를 욕하는구나, 무슨 근심이 있으면 어떤 근심을 하는구나 하고 그 마음을 환하게 알았습니다.

그런데 혜충국사가 그 사람이 그런 소리로 모든 사람을 어지럽히니 바로 잡아주어야 되겠다싶어서 찾아와서는 '그대가 남의 마음을 훤히 안다고 하니 내 마음도 한 번 알아봐라'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이 점잖은 스님이 마음을 어디에 두느냐면, 올 때 물가에서 말, 소, 개, 당나귀 이런 것들이 어울려 노는 것을 보았으니 그곳에 생각을 던졌습니다. 그러니까 대의삼장이 확연히 마음을 알아냈습니다.

그 다음에는 마음을 저 도리천이나 하늘세계에 던졌더니 대의삼장은 '아이고 스님, 참 훌륭하십니다.'하면서 그 마음도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일체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마음의 고향, 말하자면 희노애락 상념이 떨어진 그 마음자리에다 마음을 딱 둬 버렸습니다.
그러자 대의삼장이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으니 당황합니다.

온갖 신통력으로 저 천상세계를 다 뒤지고 지옥을 다 뒤지고 삼계육도를 다 헤매도 눈 앞에 있는 혜충국사 마음이 있는 자리를 못 찾았던 것이지요.
보통 사람은 상념(想念)의 세계에 마음을 쓰니 그것을 모두 알 수 있지만 빛도 모양도 냄새도 없는 본래 마음자리에 갖다 놓으니 아무리 신통력이 있다 해도 어떻게 상념으로 찾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슬플 때는 슬픈 생각에 마음이 가기 때문에 귀신이 보고 다 알 수 있지만 빛도 모양도 냄새도 없는 본래 자리에 딱 놓아두면 찾을 수가 없는 것이 당연하지요.
혜충국사는 당황하는 대의삼장에게 '반딧불 같은 지혜를 가지고 모든 사람을 현혹하느냐'고 호령을 합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잘못을 깨우친 대의삼장은 이렇게 해서 바른 마음공부에 들어섰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꽃은 어느 누가 봐도 꽃이지만 깨닫지 못한 어리석은 사람이 보는 것하고 눈뜨고 깨달은 사람이 보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것은 마치 근심이 많은 사람은 꽃을 보고 눈물을 짓고, 근심이 없고 마음이 화평한 사람은 꽃을 보고 노래하고 춤을 추는 것과 같은 이치이지요.
그러니까 꽃 자체가 뭐 슬프고 괴로운 게 아닌데, 자기의 색안경, 자기의 경계에 따라서 그렇게 판단하는 것입니다.

대의삼장은 비록 모든 중생의 마음은 다 알지만 본래 마음자리를 밝히지 못한 까닭에 본래 고향에 던져진 마음을 알 도리가 없었던 것이지요.
대부분의 사람은 모태 안에 들어선 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2살 3살 때도 기억 못해요. 아주 영리한 사람이 아니면 모태의 기억을 못하거든요.

그러나 딱 앉아 참선을 하다 보면 어머니 배 안에 있던 기억, 3살 4살 때 까맣게 잊었던 생각도 떠오릅니다. 그것은 보통 때는 보이지 않던 먼지가 아침에 태양빛이 비치면 바글바글하게 다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태양빛이 자석처럼 그 먼지를 끌어온 것은 아니거든요. 다만 밝은 빛이 비추니까 먼지가 보일 뿐이듯 우리가 참선을 하여 마음을 밝히면 지난 시절 까마득히 잊었던 일까지 다 떠올라 생각나게 되는 것이지요.

여기서 한 단계 넘어서면 생각이 가라앉으면서 영적인 능력이 생겨, 가만히 앉아서도 수천 리 밖의 일도 알고 과거 현재 미래를 훤히 알게 되지요. 그러나 그런 것을 아는 것이 참선 공부가 아닙니다. 여기까지는 한 과정일 뿐입니다.

그 단계에 집착하지 않고 넘어가면 참으로 완전히 조용하게 희노애락이 끊어지고 본래 안심입명한 자리를 발견하게 되지요. 공기를 깨끗이 하면 태양빛이 아무리 비추어도 먼지가 안 보이는 경우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태양빛이 먼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밝은 빛이 먼지를 보이게 했을 뿐이기 때문이지요.

세상을 살아가는 데 '내가 세상을 굴리느냐, 세상에 내가 굴림을 당하느냐'하는 그 생활 태도가 범부와 성인의 차이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모든 환경의 지배를 받으면서 누가 웃기면 웃고, 누가 부아를 돋우면 부아를 내고, 이렇게 지배를 받으면서 고통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깨달음의 세계는 어떠한 경계라도 상관이 없는 물들지 않는 자기를 구사한다 그 말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조용히 앉아서 한번 생각해 봅시다. 다만 10분이라도 앉아서 자기 생각을 딱 집중하고 참선하는 생활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하면 그 참선하는 찰나부터 자기의 안정된 마음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1분 동안 하면 1분동안 하는 것만큼, 10분 하면 10분하는 것만큼, 1시간 하면 1시간 하는 것만큼 하기 전과는 자기인생이 다른것이 스스로 느껴집니다.
마치 밥을 한 숟가락 먹으면 한 숟가락 먹은 만큼 배부르고 두 숟가락 먹으면 두 숟가락 먹은 만큼 배부르다가 끝내 한 그릇 다 먹으면 배가 다 부른 것처럼 우리가 어느 단계까지 수행을 쌓아 올릴 때 큰 영향럭이 생겨 어느 순간에 이르면 잠시만 해도 그 이치를 대번 알게 됩니다.

예를 들어 감정이 생긴다든지 무슨 생각이 극도로 달릴 때 잠시라도 가만히 앉아서 마음의 뿌리를 돌이켜 보면 그 불이 사그러집니다.
타는 불에 찬물 끼얹듯이 우리의 그 타는 열병이 시원한 참선의 물로 싹 녹아집니다. 그게 바로 법열이고 희열이지요.

그것은 해 보시면 즉각 느껴집니다. 그렇게 해서 내 인생이 차츰 차츰 달라지는 것이지요. 영리한 이들은 물론 한번에 대번 깨칠 수도 있지만 대개는 오래도록 해서 자꾸 쌓으면 모두 그렇게 깨치게 됩니다.

본래 마음을 밝히고 보면 바른 정법을 알고 그것에 따라 살게 되니, 우리 모두 이 이치에 따라 생활하도록 힘씁시다.

    서암스님의 가르침 [소리없는 소리]중에서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한 사람을 아파하는 것이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한 사람의 생애를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꽃 한송이 필때 우주가 함께 피듯
대양의 무게와 부피가
한 방울의 물,
한조각 소금으로 늘어나듯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의 별, 하나의 지구가
사랑하는 그만큼 늘어나는 것이다.

진실한 사랑은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아니하니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의 우주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 김재진 著《삶이 자꾸 아프다고 말할때》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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