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信 大行을 다짐한다

2013. 9. 12. 17:3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화엄경·보현행원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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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의 길

 

大信 大行을 다짐한다

 

이번 48 [佛光]은 창간 제 5년차에 들어선다.

처음 불광의 깃발을 들었을 때 나름대로의 사명을 안고 있었다. 인간에게서 떠나고만 존엄한 가치, 인간에게 등을 돌린 평화와 행복, 인간이 긍정하고 꿋꿋이 서야 할 대지의 상실이런 현실을 눈앞에 두고 인간복지를 이룩할 꿈의 추구를 소리쳤다.

 

그런지 만 4년이 지나고 다시 한걸음을 내어딛는 지금이다. 그 사이에 무엇을 하였는가를 돌이켜 보니 오직 부끄러울 뿐이다.

이러한 우리의 염원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자신의 생명 속에서 보며 그 뜻을 역사의 현장에서 이룩하고자 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과 문자와 이론과 사유에서 파악하지 아니하고, 부처님의 깨달으신 눈에 드러난 인간 생명의 진실을 믿으며, 이 진실한 공덕이 우리의 사회와 국토와 모든 형제 위에 가득히 퍼져 있는 것을 믿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개현코자 하는데 기본방향을 두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상황, 범부적인 안목에 잡혀오는 이른 바 현실이라는 허위를 박차고, 반야 대지에 현전된 진여실사의 빛나는 지혜와 감동과 환희를 내 생명의 것으로 쓰기에 힘썼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인간과 사회에 대한 모든 피상적 관찰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오직 영겁불멸의 법성생명을 전면 긍정하고 그것을 권위적으로 개현할 것을 믿음으로 삼았었다. 이것이 부처님의 깨달음을 순수하게 만든다는 의미에서 순수불교라고 하였던 것이나 그동안을 돌이켜보니 그동안 이 신앙만은 일관성 있게 지켜왔던 것을 자부한다.

 

5차년의 첫걸음을 내어딛으면서 우리는 스스로 자성하는 바가 있다.

 

 그 첫째는 우리의 믿음이 지식적 철학적 교학적 믿음이 아니었더냐 하는 점이다. 원래 부처님의 법은 관념이나 사유로 형용할 수 없는 절대성을 지닌다.

그런데도 합리의 논리구조를 통하여 긍정과 결단이 습성화된 우리는 불법에 대한 믿음도 지칫하면 이런 이론이나 사유의 논리로써 도달하고자 하는 과오를 범한다. 그래서는 이 조그만 마른 상념위에 어떻게 무한실성(無限實性)이 담아진다는 말인가. 그렇기 때문에 메마를 지식신앙에는 권능적인 힘도, 파도 같은 용기도 환희도 없는 것이다.

 

둘째로는 자비의 정진이다. 이웃을 사랑하고 사회를 사랑하고 국토를 사랑하고 우주를 사랑하며 자기를 사랑하는 뜨거운 자비를 과연 용기있게 펼쳐 냈는가에 자문(自問)이 간다. 형제와 이웃과 조국을 위하여 뜨겁게 자기를 불태우는 가운데서 자비가 있고 정진이 있고 지혜가 있고 국토의 성숙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우리는 자칫하면 고식과 안이와 겁약의 껍질 속에 웅크리려 하지 않았던가. 조국과 형제 속에 생명을 뿌리한 우리는 순수하게 자비와 지혜를 실천하고 끊임없이 궁행하는 데서 내 생명의 광휘가 있는 것을 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아침에 한마디 자성의 날로서 불보살님과 회우제현에게 감사에 대신한다.

 

<78>

 

 광덕 큰스님 지음 빛의 목소리 p269 – p271 수행의 길에서, 불광출판사

 

"미안해. 친구야!"


손가락 지문이 다 다르듯이
사람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독특하다.
이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없다. 그러니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사람은 이러해야
한다는 식으로 내 관점에 끼워
맞추려 해서는 안 된다.   
- 밀턴 에릭슨 -

- 송봉모의《미움이 그친 바로 그 순간》중에서 - 

 

 

 

 

* 최근에 저는 친구에게
제 관점에 맞추며 얼굴에 핏대를 세운 적이 있습니다.
그 친구에게도 독특한 사고와 시선으로 이루어진
관점이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그때, 제 관점만 고집하던 저를 바라보며

묵묵히 미소만 짓던 친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친구에게 사과를 해야겠습니다.
"미안해. 친구야!" 

 

  

가을노래 모음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