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자(自恣)를 여법히 행하자

2013. 10. 3. 19:18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화엄경·보현행원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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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의 길

 

자자(自恣)를 여법히 행하자

 

 부처님께서눈 정법이 오래 머물게 하는 것을 교단통솔의 가장 귀한 요건으로 삼으셨다. 정법이 오래 가자면 교단이 청정하게 화합하여야 한다. 교단을 통해서 불법은 역사속에 펴 나가는 것이므로, 정법이 오래 머무르는 요건의 핵심은 교단의 청정화합에 둘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청정화합에서 교단은 풍성한 법보를 온 중생에게 끼쳐준다.

 

 부처님께서는 교단 통솔의 방법으로 사람을 세우지 않으셨다. 어떤 사람을 지목하여 이 사람이 교단을 통솔한다고 규정하지 않으시고 교단은 법으로써 통솔됨을 말씀하셨다.

 

 교단에 대한 역사와 사회의 요청이 강할수록 우리들은 교단의 화합과, 법을 체득한 본분납자에 대한 소망이 더욱 절실해진다. 음력 7 15일은 하안거 해제의 날이지만 이날은 바로 자자(自恣)의 날이다. 부처님의 자자의 가르침이 새삼 교단청정과 정법구주(正法久住)에 있음을 발견한다.

 

 7울 보름, 둥근 달이 동천에 떠 오르면 많은 비구들이 모여들어 자자를 한다. 부처님도 상좌바구도 그밖의 모든 비구들도 모인다. 그리고 나서 밤 이슥하도록 달빛 아래 경건한 법요가 진행되는 것이다.

 

 [대덕이여, 들으소서. 다들 모였으면 자자를 시작합니다]로 개회 선언이 있고, 그 다음에 차례로 상좌비구부터 자자를 한다. 상좌비구가 편단우견(偏袒右肩)하고 호궤합장(合掌)하고 말문을 연다.

 [장로들이시여, 말씀하여 주소서. 저에 관하여 허물되는 것이 있었으면 말씀하여 주소서, 불쌍히 여기시어 말씀하소서. 마땅히 참회하겠습니다.]

 

 이렇게 차례로 진행되는 자자, 이 얼마나거룩한 풍경인가.

 자자는 원래 만족, 또는 기쁨의 뜻이다. 안거 마치는 날, 비구가 자기의 허물을 말하게 하여, 참회하여 청정하게 되면 스스로 기쁨이 나는데서 온 말이다. 지난 석달동안 도를 닦으면서 비록 정성을 다 한다하나 미혹한 사람은 자기의 허물을 보지 못할 때가 있는 것이다. 이점을 대덕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유스럽게 가르침을 받게 하여 만족을 얻는 것이다. 스스로의 허물을 드러내놓고 청정대중의 가르침에 따르는 이 법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렇게 행함으로써 한 사람 한 사람 교단 성원이 청정하고, 이렇게 함으로써 교단의 법도가 견고하여 화합이 영원하고 그 안에 정법이 오래 머무는 것이다.

 

 자자는 오늘날 총림이나 회중에서 행해지고 있다. 그러나 얼마나 진실한 만족과 기쁨이 나는 자자가 행해지고 있는지는 반성해 볼 일이다. 또 이 자자는 비구는 모두가 참회하여야 할 성격의 것이다. 비록 병자라도 병상에 실려 자자에 참여하는 법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한국불교의 자자는 법이 분명히 해이해졌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자자에 참여하는 비구는 소수에 지나지 않고 대다수는 잘해야 하안거 해제로 끝나고 있지 않은가.

 

 모름지기 자자를 성실히 수행하여야 한다. 대중이 적은 곳에서는 몇몇 사찰 대중이 함께 모여서라도 여법한 자자를 행하여야겠다. 자자를 통해서 믿음과 안목이 바르게 되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청정승풍과 교단기강과 교단의 아름다운 유풍을 키워가기 위해서도 절실한 바가 있다.

 

 교단의 법으로는 자자로 법랍을 계산한다. 따라서 자자일을 세모라 하고 그다음은 신년이 되는 셈이다. 올해 경신년 자자가 온 교단에서 여법히 행하여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래서 이 세모의 법도가 충실한 세모이기를 바란다. 우리 한국볼교 교단은 자자를 여법히 부흥시킴으로써 백가지 병폐가 바르게 될 것이다. 거듭 자자의 여법한 행을 바라마지 않는다.

 

 

<80>

 

 광덕 큰스님 지음 빛의 목소리 p275 – p277 수행의 길에서, 불광출판사


 

         

         

        
        [1]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보살상 앞에서 나는 합장하고 송주하였다.
        일주문을 벗어나려다 말고
        나는 고개를 돌려 관세음보살상을 다시 보았다.
        그곳에서 누군가 손을 흔들고 있었는데
        얼핏 보면 생떽쥐베리가 쓴
        '어린 왕자' 의 모습 같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법정스님이 어린 왕자의 환영으로 부활했단 말인가."
        
        - 최인호 문학 50주년 기념 산문집 '최인호의 인생'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는다' 에서 -
        [2] "내 정신의 아버지가 가톨릭이라면
        내 영혼의 어머니는 불교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불교적 가톨릭 신자' 라고 자신을 부르고 싶다."
        
        [3] "소위 친구라는 미명 하에 저희들끼리
        떼 지어서 술 마시고, 서로의 인연으로 사교를 하여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우정이라 말할 수 있는가.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벗을 사귀거나 남에게 봉사한다.
        오늘 당장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 그런 벗은 만나기 어렵다.
        자신의 이익 만을 아는 사람은 추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부처님의 다음과 같은 경구를 좋아한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은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나의 기쁨은 누군가의 슬픔에 빚을 지고 있다' 고
        말하며 머리를 깎고 정말로 스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는 최인호 著 '산중일기' 에서 -
        [4] "인생은 낯선 곳에서 머무르는 여인숙에서의 하룻밤"
        
        - 최인호 著 '길없는 길' 에서 -
        [5] "적당히 채워라. 어떤 그릇에 물을 채우려 할 때
        지나치게 채우고자 하면 곧 넘치고 말 것이다.
        모든 불행은 스스로 만족함을 모르는 데서 비롯된다."
        - 최인호 著 '상도(商道)' 에서 -
        [6] "무엇보다도 먼저 네 마음의 문을 열어놓지 않으면
        아무도 네가 말하는 것을 듣지 못한단다."
        - 최인호 著 '달콤한 인생' 에서 -
        [7] "나는 암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암은 지금껏 내가 알고 있던 모든 지식과
        내가 보는 모든 사물과 내가 듣는 모든 소리와
        내가 느끼는 모든 감각과 내가 지금까지 믿어왔던 하느님과
        진리라고 생각해왔던 모든 학문이 실은 거짓이며,
        겉으로 꾸미는 의상이며, 우상이고,
        성 바오로의 말처럼 사라져가는 환상이며,
        존재하지도 않는 헛꽃임을 깨우쳐주었다."
        - 최인호 著 '낯익은 타인의 도시' 에서 -

         

         

        최인호 님! 극락왕생을 기원합니다 觀世音菩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