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9. 26. 20:22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수행의 길
오늘날 보시법문이 어떻게 지켜지고 있는가
율장이나 아함 경전들을 대하면 부처님 설법의 몇 가지 유형을 볼 수 있다. 그 중에 중요한 하나가 보시하고 계를 가져 천상에 태어난다는 법문이다. 이 보시 법문은 처음 재가 불자에게도 그리하셨듯이 열반에 드시기 직전 까지도 일관하신 법문이다.
이처럼 부처님의 보시 법문은 간곡하시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범부들은 자신의 공허를 충족시키고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느라고 온갖 것을 집착하고 축적한다. 덧없이 흘러가는 공허한 거짓 모습이건만 거기에 탐착하고 애착을 쉬지 못한다. 이래서 속박의 굴레는 더욱 무거워지고 고난의 늪은 깊어지며 미혹의 밤을 보탠다. 그리고 속박의 부자유가 깊어지는 것이니 이른바 지혜 없고 복이 없는 가련한 중생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스러운 자기 실현의 길로 뛰어나오는 방법은 애착과 탐착을 놓는 데 있다. 아깝고 소중하게 여기던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 애착과 탐착에서 벗어나는 길이 보시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것, 값있는 것을 놓아버리며 나아가 거룩한 도를 위하여 기쁘게 놓아 버릴 때 해방이 오는 것이다. 이러기에 보살이 닦는 여섯가지 큰 덕 가운데에 보시를 그 첫째로 하는 이유가 있다.
이러하건만 오늘날의 우리의 보시 수행은 어떠한가.
얼마나 집착을 떼고 애착을 쉬고 나의 소중한 것을 놓았던가. 불법과 중생을 위하여 나의 소중한 재물을 바치고 이웃을 위하여 나의 노력을 바쳤던가.
보시는 보시로 인한 재물로 해서 밖으로 법당이 이루어지고 탑이 이루어지고 경전이 출판된다는 그런 결과에만 관심하여서는 안된다. 나의 소중한 것, 내가 아끼는 것을 불법과 중생에게 바친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다.
[지장보살본원경]에는 사람이 어려운 병에 걸려 백약이 무효하고 죽음이 임박하였을 때 그가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이나 재산을 부처님께 바친다고 그의 가족이 본인에게 말해주면 그 병이 낫는다고 하였다. 가가 소중한 것을 부처님께 바침으로써 가장 소중한 생명을 건지는 공덕이 열리는 것이다.
소중한 것은 뒤로 빼돌리고 하찮은 것이나, 자신의 생활 정도에서는 대단치 않은 정도의 보시를 한다면 거기서 얻는 공덕도 불문가지다.
또 보시를 하더라도 조건을 붙인 보시를 하거나 보시한 후에도 애착을 쉬지 못하고 보시한 물건에 대하여 계속 관심을 갖는다면 그런 보시의 공덕은 가벼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시는 겉으로 나타난 물량이 문제가 아니다. 재력의 정도에 따라서 보시의 표현은 다르지만 표현된 시물의 뒤에 숨은 청정심은 시물의 대소와는 상관없이 사뭇 차등이 있는 것이다. 거부의 백만원이 가난한 사람의 천원과 맞먹을 수 있으며 오히려 백원 보시의 배후에 십만억의 보시를 한 이상의 청정심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들의 보시는 진실이 담긴 최상의 보시이어야 할 것을 배워야 하겠다. 자신의 청정심은 아랑곳 없이 겉으로 나타나는 액수로서 보시공덕을 평가하거나 다른 사람이 보시하는 액수와 비교하여 자신의 보시행을 결정한다는 것은 정말로 우스운 보시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보시의 의미를 완전히 놓치고 있는 것이며 애착심을 은폐하고 사람들의 눈치나 살피며 자신의 헛된 체면이나 유지하자는 속셈이 거기 있는 것이 아닌가.
어두운 눈에 비친 바로는 오늘날 우리 불교계는 보시의 참된 의미가 크게 왜곡되어 있다고 보아진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부처님께서는 분명히 상에 머뭄이 없는 보시를 말씀하시고 그것이 시방허공으로도 비유할 수 없는 최상공덕이라 하시지 않았던가.
가장 소중하다고 느끼는 것은 가장 큰 집착의 상징인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 집착을 흔연히 보시함으로써 청정공덕이 흘러들어올 것이 아닌가. 간탐심은 꽁꽁 부둥켜 안고 있으면서 어떻게 청정공덕이 구족해지겠다는 것인가.
오늘날의 우리의 보시 수행의 반성이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81>
광덕 큰스님 지음 빛의 목소리 p278 – p281 수행의 길에서, 불광출판사
바람 속을 걷는 법 1
바람이 불었다.
나는 비틀거렸고,
함께 걸어주는 이가
그리웠다.
바람 속을 걷는 법 2
바람 불지 않으면 세상살이가 아니다.
그래, 산다는 것은
바람이 잠자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바람이 약해지는 것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 바람 속을 헤쳐나가는 것이다.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볼 것,
바람이 드셀수록 왜 연은 높이 나는지.
바람 속을 걷는 법 3
이른 아침, 냇가에 나가
흔들리는 풀꽃들을 보라.
왜 흔들리는지, 허구 많은 꽃들 중에
하필이면 왜 풀꽃으로 피어났는지
누구도 묻지 않고
다들 제자리에 서 있다.
이름조차 없지만 꽃 필 땐
흐드러지게 핀다. 눈길 한 번 안 주기에
내 멋대로, 내가 바로 세상의 중심
당당하게 핀다.
바람 속을 걷는 법 4
그대여, 그립다는 말을 아십니까.
그 눈물겨운 흔들림을 아십니까.
오늘도 어김없이 집 밖을 나섰습니다.
마땅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걷기라도 해야지 어쩌겠습니까.
함께 걸었던 길을 혼자서 걷는 것은
세상 무엇보다 싫었던 일이지만
그렇게라도 해야지 어쩌겠습니까.
잊었다 생각했다가도 밤이면 속절없이 돋아나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천 근의 무게로 압박해오는
그대여, 하루에도 수십 번씩 당신을
가두고 풀어주는 내 마음감옥을 하시는지요.
잠시 스쳐간 그대로 인해 나는 얼마나 더
흔들려야 하는지, 추억이라 이름붙인 것들은
그것이 다시는 올 수 없는 까닭이겠지만
밤길을 걸으며 나는 일부러 그것들을
차례차례 재현해봅니다. 그렇듯 삶이란 것은,
내가 그리워한 사랑이라는 것은
하나하나 맞이했다가 떠나보내는 세월 같은 것.
떠날 사람은 떠나고 남을 사람만 남아
떠난 사람의 마지막 눈빛을 언제까지나 떠올리다
쓸쓸히 돌아서는 발자국 같은 것.
그대여, 그립다는 말을 아십니까.
그 눈물겨운 흔들림을 아십니까.
*Y-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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