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1. 14. 09:48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화엄경·보현행원품
수행의 길
불자는 진실의 증거자가 되자
또 다시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한다. 부처님의 지극하신 대자대비에 감루하고 크신 은혜에 감사드린다.
부처님은 원래가 법신이며 상주신이시다. 그러니 오고 가심이 어디 있겠는가. 법성 진여로서 영원한 현재이신 것이다. 그러시건만 미혹 중생들을 깨닫게 하시고자 간곡하신 방편을 베푸시어 중생 곁에 중생의 모습을 보이시어 중생을 구원하시는 크신 역사를 전개하신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오심이 지극하신 자비실현이라 하는 것이고 출가, 성도, 교화, 열반이 지극하신 법문의 전개라고 하는 것이다.
부처님이 오신지도 올해로 2천 6백 십년이 되는 성 싶다. 하지만 부처님이 어디 시간에 매인 부처님일까 보냐. 영원한 광명, 영원한 생명, 영원한 자비를 다시 생각하며 거듭 감사 드린다. 그리고 크신 법문 열어주시어 죽지 않는 묘약을 받게 되는 환희를 표할 길이 없다. 경에 이르시기를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 인연으로 세간에 나셨으니 중생으로 하여금 불지견을 열어 청정을 얻게하기 위함이라…] 하셨고 또 [일체 여래의 무량 무수 교화 방편도 중생으로 하여금 오직 불지견을 보여 불지견을 깨쳐서 불지견에 들게 함이라….] 거듭 말씀 하셨다. 악몽 같은 미혹에 사로잡힌 중생들이 미혹을 깨뜨려 불멸의 불성이 진실한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고 회복시켜 본래의 청정과 권능을 누리게 하시고자 하심이다. 이를 위하여 수 없는 부처님의 자비법문이 열린 것이다.
이제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그간에 한없이 부어주신 지중하신 은혜를 다시 생각하며, 우리들이 얼마만큼이나 크신 뜻 받들어 청정을 실현하였는가를 돌이켜 보아 진다.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에서 우리의 두 눈을 크게 뜨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생명 존엄]의 가르침과 [일체 중생 일심 동체]의 가르침일 것이다. 이것은 진리의 밝은 눈으로 보신 바 중생과 존재의 여실한 설파다. 그것은 결코 평화 안녕 등을 노린 공리적인 교설이 아닌 [진실의 설파]인 것이다. 오늘 부처님이 오셨다면, 오늘 오신 부처님의 목소리도 역시 이 두 법문으로 요약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부처님은 오늘도 다시 생명존엄 동체대비의 목소리로 우리 곁에 임하실 것이다. 그럴만큼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이 두 법문의 실현이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보신 바 중생 실상은 법성이며 진여며 불성이었다. 무엇보다 앞서있는 제일 원리며 궁극적 가치며 절대 권능이었다. 그리고 또한 무한의 지혜와 덕성이 본래 스스로 구족한 바였다. 오늘날 우리는 얼마 만큼이나 이와 같은 존엄한 인간을 자각하고 존엄한 자기를 실현 했으며 인간 존엄 계발과 그 사회적 보장을 향하여 노력 했는가. 얼마만한 성과를 거두었던가.
다시 물을 것도 없이 오늘의 인간은 지존의 자성 가치를 물량 축적과 감각 충족으로 대치시키고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 앞설 인간 존재가 물량과 환락과 주의 사상과 기계적 기술에 종속되어 있지는 아니한가. 그뿐인가? 경제적. 사회적으로 인간 가치와 존엄이 얼마나 보장되고 있는가? 부처님의 인간 존엄의 목소리는 더욱 크게 울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오늘의 실정이다.
다음에 부처님의 각안(覺眼)이 보신 바로는 중생은 법성이며 결코 나눌 수 없는 일심이며 동체였다. 모든 중생들은 한 몸으로 존재하고 같은 진리 생명으로 존재하였다. 결코 대립될 수 없는 동일신(同一身)이었다. 여기서 대자대비가 체온으로 풍겨 나왔고 대희대사가 심장의 고동으로 울려나오는 것이었다. 서로가 한 몸으로 평등하며 서로가 한 몸으로 함께 돕고 기쁨과 슬픔과 괴로움과 즐거움을 함께하는 존재였다.
그런데도 오늘날의 우리의 상황은 어떠한가. 인간은 육체며 개아며 무수한 상대적 존재다. 서로 이욕의 충족을 향하여 벽을 쌓고 혹은 모여들고 혹은 흩어진다. 혹은 대립하고 혹은 투쟁하고 서로가 패배와 고통을 수확한다.
이러한 상황은 사회적 현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욕과 아집에 사로잡힌 군중들은 서로 집단화하고 파당을 이루어 대립 알력하고 마찰을 일으키고 투쟁을 일삼는다. 분노와 증오의 불길이 그 사이에서 높이 타오르고 사회 파괴와 인간 불행을 조직적으로 대량 산출한다. 인간은 원래가 한 몸이므로 이런 대립, 갈등, 마찰에서 얻어지는 것이란 오직 자기 파괴와 불행과 새로운 분노의 불길 뿐이다.
평화를 추구하고 번영을 목말라 구하면서도 저들은 스스로 평화를 깨뜨리고 조화를 파괴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면서 그것이 자기 존재의 부정이며 사회 파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을 볼 때 부처님의 동체대비의 법문은 그 어느 때보다도 그 목소리가 높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불자는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사는 자며 부처님 가르침의 진실을 증거하는 자다. 그래서 오늘 날에 있어서 불자는 부처님 법문의 행동자며 전달자며 진실의 증거자여야 하는 것이다. 부처님이 오늘 오셨다는 사실은, 불자들의 믿음과 생활과 사회적 행동을 통해서 그 뜻이 구체적으로 나타나야 한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인간 스스로의 권위에 대한 불각도 문제려니와 조직과 기술을 통한 체제속의 인간 군상은 인간 존재가 근원적으로 퇴색되고 있다는 표시이다. 그러니 어찌 인간 자신에 합장된 지혜와 덕성과 뛰어난 능력의 온전한 발휘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 점은 인간 존엄의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적 성장을 위해서도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우리의 사회는 어떠한가. 날이 갈수록 이익 중심의 집단으로 바뀌어가고 대립 투쟁은 끊일 날이 없다. 근원적으로 서로가 한 뿌리이며 공존의 마당위에 공동의 진리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몰각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각자의 아집과 독선이 뿌리내리고 마찰과 대립은 격화하며 사회 공동성은 금이 가 사회적 생산은 위축되며 겨레 역량의 총화라 할 국력은 손실을 입는다.
오늘날 세계는 일자도의 승리, 즉 상대방을 압도함으로써만 승리는 얻어진다는 편견에 깊이 빠져 있다. 어찌하여 서로를 존중하여 양자가 함꼐 승리하는 진실한 승리, 명예로운 승리를 도모하지 못하는가. 도대체 좌수로 우수를 찍고 우수로 좌수를 끊어서 얻어지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일실에 있어 온 몸 각 부분은 그것이 자신이며 건강의 요인이며 행복의 귀결체가 아니겠는가. 신체 각 부분이 건강한데서 일신의 건강 행복이 있듯 우리 사회의 온 서원이 존중되고 자유롭고 활달하게 협동하는 데서 사회의 건강도 발전도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평범한 상식이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망각되고 있다는 사실은 실로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상황 앞에 오늘 우리는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한다. 우리 불자들은 모름지기 인간 옹호의 목소리를 드높이고 각계에 만연되어 있는 인간 물질 사상을 소제하고 인간 존엄을 스스로 지키도록 깨우쳐야 한다. 동시에 인간 존엄과 그 능력 계발을 억압하는 사회적 독소들을 뿌리뽑아 나아가는데 용감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겨레는 한 몸이며, 인간은 동체며 개아는 일심이라는 대화합 운동을 전개하여야 할 것이다. 사회 계층간의 대립과 마찰은 인간 존재를 근본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므로 필경 파멸과 불행 밖에 얻을 것이 없는 것을 깨우쳐 주어야 한다. 서로 존중하고 서로 협동하여 존엄한 인간, 신성한 겨레, 영광의 조국, 평화의 세계를 향하여 모두가 환성을 지르고 매진하는 길을 열어가야 할 것이다.
언필칭 불교를 호국의 종교, 구세의 종교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땅위에 성스러운 빛을 편지도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종교라고 말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주변을 덮고 있는 미혹의 어둠을 타파하지 아니 하고 어떻게 그 거창한 이름을 계승할 수 있다는 말인가.
오늘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다시 [진실의 증거자]로서의 책임을 다할 것을 다짐하여야 할 것이다.
<86>
광덕 큰스님 지음 빛의 목소리 p305 – p310 수행의 길에서, 불광출판사
내가 사랑하는 사람 / 정호승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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