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 대립 마찰을 없애자

2013. 11. 7. 20:17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화엄경·보현행원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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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의 길

 

마음속 대립 마찰을 없애자

 

사람은 개아로써 태어나며 부모님과 가정환경 속에서 자라난다. 그리고 이웃과 많은 사회환경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우며, 주며, 서로 영향하면서 성장한다. 이런 삶의 모습은 인간이 제각기 개아이며 수 많은 개아속에 서로 주고 받으며 행동하고 사는 것을 일게 한다. 이런 인간의 삶을 달리 볼 수도 있다. 개아인 인간이 성장하는 데는 무수한 상대를 보며 상대 속에서 자신을 지켜가며 자신의 안전과 성장을 위해서 서로 대립하고 투쟁하고 때로는 타협하고 때로는 좌절하는 그러한 인간의 삶을 볼 수도 있다.

 

이 모두는 인간이 자신에 대한 반성이 없는 인간현상을 토대로 한 견해이며 해석이다. 우리는 보고 듣고 만져지는 감각현상이 갖다 주는 현상 평가에서 자신을 보지 말고 자기 의식과 생명현상을 통찰한 자기 마음에 들어가 자신을 보아야 한다. 들뜬 겉 마음에 따라서 자신이나 세계를 보지 말고 되도록이면 깊이 반성된 깊은 마음에 서서 자기를 보고 생각을 움직이고 대상을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감각기관이 보는 세계는 다양한 개체의 집결이며, 나와 대립하고 대상이 되는 존재들이다. 들뜬마음 겉마음에 비쳐진 세계의 모습인 것이다. 이 겉마음 현상에 사로잡힌 인식 평가에서 우리의 세계는 복잡한 대립관계의 세계를 보게 된다. 대립에서 이익의 교환이 있고, 투쟁이 있고, 극복이 있고, 자해행위가 따르며, 사회의 혼란과 파괴 불안이 연달아 일어난다.  그것은 그럴 수 밖에 없다. 이웃은 나와 대립된 존재이며 끝까지 나는 나로써 개아 보존과 안정과 충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세상의 온갖 불행은 근원적으로 이런 데서 일어난다. 이것이 만가지 인간불행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인간은 모름지기 깊은 마음에 들어가야 한다. 맑은 본성에 돌아와야 한다. 거기에는 대립이 없다. 끝없는 너그러움, 따뜻한 안온이 있다. 모두가 한 몸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뛰어난 덕성도 능력도 함께 한다. 거기에는 원망도 노여움도 원한도 찾을 길이 없다. 대립이 없는 완전 조화된 생명이 노출되기 때문이다. 이 깊은 마음 이것이 우리 본래의 생명이고 본래 모습의 직접적 다생이 아니던가. 만가지 행복은 바로 여기에서 연유되고 우리 역사의 발전도, 개아의 성숙도 깊은 마음의 확인과 믿음과 그를 이은 행동에서 오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모두가 하나이니 대립이 없다. 서로 돕고 기뻐하며 함께 성장하는 크게 조화된 생명의 기쁨이 있다. 그것은 관념적인 것이 아니다. 존재다. 이 존재가 우리의 현실 환경에 존재를 규정한다. 그러니 평화와 번영과 보람이 거기 있는 것이 아닌가. 참된 인간의 보람과 참된 인간을 위한 사회와 환경과 역사가 열려가는 것이다.

 

여기에서 볼 때 우리의 환경이 불행하고 장애가 있고 조화된 생명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면 먼저 우리들 마음을 돌이켜 봐야 할 것이다. 우선 나 자신 나의 환경에 조화와 행복을 위해서라도 우리의 마음을 돌이켜 봐야 할 것이다.

 

 우리들 마음 속에 대립한 사람은 없는가. 대립된 존재는 없는가. 원망스럽게 생각하는 사건은 없는가. 자신의 불행이나 결점을 찾아보고 그 원인을 타인에게 돌리고 있지는 않은가. 타인의 결점을 고집하고 있지는 않은가. 자신에게서 살펴봐야 할 것이다.

 

이런 것들은 자기 마음 속 대립적 존재며, 대립이 서로 발동된 마음 속의 마찰이다. 대립감정과 마찰 감정이 그 마음에 있는 한 우리의 환경이 조화로울 수 없고, 행복할 수 없다. 끊임 없이 불협화와 대립감정과 투쟁과 분노가 환경을 거칠게 만들어 간다.

 

 마음 속 마찰의 원인은 무엇일까? 첫째는 미혹하여 그릇된 생각에 따를 것이며, 둘째는 대립적 상대를 인정하고 그의 잘못을 발견하며, 셋째는 그것을 자신의 대립적 존재로 보는 것이다. 우리의 깊은 의식은 우주의식에 통해 있다. 우리의 상대적 감정이 그대로 상대에게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립 마찰은 더욱 현실성을 띄며 각박해 간다.

 

우리 생활에서 불행의 요인들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깊은 마음인 참 생명을 어기고 이웃과 환경과 대립한 때문이며, 마음 속에 마찰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 생활을 조화롭고 평화롭고 풍요롭게 하는 방법도 당연히 나온다.

 

무엇보다 마찰하는 마음을 해소시키는 것이다. 깨달음이 있든 없든 모든 대상에게서 진정 적대의사를 버려야 한다. 둘째는 저를 위하여 기도하고 저에게 베풀어야 한다. 물건이든 돈이든 그에게 이로움이 되는 일을 행하여야 한다. 셋째는 대립된 자, 미운 존재에게 감사하여야 한다. 미운 존재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마음 상태이므로 감사하여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미운 자를 해소시켜야 한다. 넷째는 대립된 상대가 부처님 공덕을 간직하고 내 앞에 서 있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존중하고 나에게 항상 전진의 계기를 주고 있다고 감사해야 한다. 미워할 곳이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마음을 바꾸어 사랑해야 할 것이다. 미워한다는 것은 내 마음 속에 깃든 어둠이며 가시다. 사랑의 밝음으로 어둠을 없애고 가시를 뽑아내야 한다.

 

돌이켜 볼 때 우리의 생명은 활활 타오르는 진리의 태양이다. 온 우주가 그러하고 온 중생이 그러하고 우주가 있기도 전에, 우주가 없어진 이후도 또한 그러하다.

 

부처님의 법성 생명인 것이다. 대립할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면 모두가 기쁘게 뜨겁게 화합하여 왕성한 창조를 이룩할 모두가 아닌가. 그런데도 우리들은 이러한 자기생명본분을 까맣게 잊고 보고들은 것에 매달리고 분별하고 집착하여 대립 투쟁하고, 고통의 환경을 만들어 간다.

 

그렇다면 이러한 비 진리적 현실의 극복은 단 한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끊임 없이 [마하반야바라밀]을 염하라. 마하반야바라밀의 무한공덕을 관하라. 그리고 바라밀행을 왕성히 전개하라. 이것 뿐이다.

 

 깊어가는 신록, 생명의 부피는 더욱 강하게 쌓여간다. 뜨거운 태양 지루한 더위도 찾아왔다. 인고의 정진이 견고한 성숙을 가져오는 이 여름, 우리 모두 대 정진을 기약하자.

 

<84>

 

광덕 큰스님 지음 빛의 목소리 p300 p304 수행의 길에서, 불광출판사

 

 

 

내 묘지 앞에서 울지 마세요

나는 그곳에 없습니다

 

난 잠들어 있지 않습니다

난 천 개의 바람, 천의 숨결로 흩날립니다

 

나는 빛이 되고, 비가 되었습니다

나는 피어나는 꽃속에 있습니다

 

나는 곡식 익어가는 들판이고

당신의 하늘을 맴도는 새...

 

내 묘지 앞에서 울지 마세요

나는 그곳에 없습니다

 

 

 

 

1989년 스물네살의 영국군 병사 스테판 커밍스가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의

폭탄테러에 목숨을 잃었다.

스테판은 “무슨 일이 생기면 열어보세요”라며 한 통의 편지를 남겼는데

그의 아버지가 아들의 장례식이있던 날 편지와 詩 한편을 낭독하였고,

이 사실을 영국 BBC에서 다시 방영하여 전국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몇 년 뒤 미국의 9,11테러 추모 1주기에 부친을 잃은 11살의 소녀가 詩

“천개의 바람이 되어”를 낭독하여 듣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다.

영화감독 하워드 훅스의 장례식에서 영화배우 존 웨인도 이 詩를 낭독하였고,

여배우 마릴린 몬로의 25주기에서도 이 詩가 낭독되었다.